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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 역사 지닌 베트남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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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22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01-24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해외불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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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2 08:44 조회 1,2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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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해외불교탐방 (2회)

2천년 역사 지닌 베트남 불교

국민 85% 불교신자

인도차이나 반도 동부에 위치한 베트남은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거쳐왔다. 중국과의 접경으로 역사적 으로 많은 영향을 받아왔고 근현대사에 있어서 외세 의 침략과 독립운동 이후 남북전쟁 등 굉장히 유사한 점이 많다. 종교에 있어서도 불교신자가 80% 이상을 차지하며 비슷한 문화색채를 나타내고 있다. 다른 동 남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베트남의 불교는 소승불교가 아닌 대승불교이다. 이는 오랜 중국의 지배하에서 받 은 영향으로 이러한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비슷한 양 식이 나타난다.

베트남 불교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베트남의 지 정학적 위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육지 와 바다를 잇는 반도국이면서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환경에 의해 일찍부터 많은 민족이 교차할 수 있는 지역이 되었다. 이것은 베트남의 다민족, 다종족적인 특징을 잘 표현하는 것이 -되면서 고?중?대를 거쳐 근?현대에호%까치즈동하시아와 서구열강틀의-군 사, 경제,정치, 문화의 각축장이 되는 이유였다. 이와같이 지리적인 특징에 의하여 베트남의 문화는 크게 북부의 중국문화와 남부의 인도문화로 나눠지며, 불 교도 북부의 대승불교와 남부의 상좌불교로 구분된 다.

베트남은 중국과 1,4000 에 걸친 접경국가로 기원 전 179년을 기점으로 기원후 938년까지 1,0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고 1406년에서 1428년까지 명의 지 배를 받았다. 베트남 북부는 중국과의 접경지역인 점 과 장기간의 지배 및 종주관계에서 비롯된 이유 외에 도 보다 발달된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려는 베트남의 능동적 자세에 의해 중국의 문화와 영향을 깊이 받았 다. 반면 베트남 '남부는 북부처럼 정비되고 안정된 장기적인 국가형태를 이루지 못했던 까닭에 비록 인 도와 서역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것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북부에 병합되면서 단순히 소수민족의 문화로 전락되었다.

후한 말 불교 전래

베트남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중국의 지배가 시작 된 1세기경부터였고, 이후 불교는 베트남의 가장 중 심적인 종교였다, 인도차이나반도 동부에 위치한 베 트남은 참족이 먼저와서 살고 있었으나, 기원전 4세 기경에 절강성에 있던 월 나라의 멸망과 함께 월 의 여러 부족의 남방으로 이동하여 참족을 밀어내고 통킹 지방에 정주하면서 역사를 시작했다. 월남이란 말은 중국에서붙인 말로 월 의 한 파 라는 뜻 이다. 월남은 나중에 안남 으로 불리기도 했다. 정치사적으로 토킹지방은 기원전 3세기경 말에 광동  서 성립된 월왕조 의 보월국 에, 소속되었으나, 기원전 111년 한무제 의 토벌 을 당하여 월남 이 한 에 병합됨과 함께 베 트남 또한 한의 지배를 받게 됐다. 중국의 베트남 지 배는 10세기까지 1천년동안 계속됐으며, 그 사이 중 국.문화가 이곳에 깊숙히 침투, 정착되었다.

불교는 중국의 영향, 특히 한나라 말기 때부터 당 나라 중엽 때까지는 북부 베트남에 대승불교가 보급 되었으며. 남부 베트남에는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아 태국이나 캄보디아로부터 상좌부 불교가 전해졌다. 이처럼 대소승의 불교를 고루 받아들인 예는 동남아 에서는 드문 일이다.

베트남에 불교를 최초로 전한 사람은 후한 말 모자  라는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당시어지러웠던 전란을 피해 통킹  지방으로 이주해 와 불교를 전파했다.

1975년 4월 30일 패망하기 직전 베트남 인구는 1천 600만명 (월맹은 2천 160만명), 그중 40%이상은 불교 도였다. 카톨릭은 170만명 밖에 안 되었다. 카톨릭은 제 2차 세계대전 전까지 프랑스의 통치아래 보호를 받아 성장했다. 이로 말미암아 전통종교였던 불교는 도교 . 유교와 함께 뿌리가 뽑혔다. 프랑스 식민주의 자는 각사원의 승려-수를 제한했고, 새로운 불사 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대항해 베트남 불교도 는 1920년부터 불교재흥을 시도하여, 1931년에는 최 초로 사이공에서 불교연구위원회를 창설했다. 유사한 위원회들이 1932년에는 후에에서,1934년에는 하노이 에서 창립됐다. 불교단체는 일본이 베트남을 장악했 던 2차대전 동안 말없이 잔존해오다가, 1945년 승려 그룹이 식민주의를 대항하는 불교조직 을 만들었다. 이 조직은 프랑스로부터 독 립을 쟁취하려던 목적이 달성된 1954년에 해체됐는 데, 대부분의 불교도는 반프랑스 조직의 맴버였다. 전 후 베트남불교의 부흥은 1951년 5월 50명의 승려와 평신도가 참석한 국민 불교회의가 후에에서 개최됨으 로써 시작됐다. 이 모임은 승단 을 재조직했고, 불교의식을 성문화했으며, 불교청년그룹 조 직과 성인교육센터를 설립했다.

베트남 불교도들은 또한1950년 콜롬보에서 창립된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45년 제네바협정에 따라 도선을1경계로부부와 남부가 분리되고, 고딘디엠이 남부에서 정권을 잡게 되자 베트남불교는 새로운 시련을 맞게 되었다. 디엠 정부가 가톨릭과 불교를 차별대우하기 시작한 것이 다. 이로써 불교는 식민치하에서는 프랑스에 적대하 기 위해, 그리고 나중에는 호지명 의 공산주 의에 대항키 위해 결합했던 가톨릭과 결별하고 격렬 한 반정부노선을 걷게 되었다. 이같은 강경노선은 군 사쿠데타에 의해 티우, 키와 같은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해서도 계속됐다. 그들은 계속해서 불교를 억압 하는 정책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비해 반정 부지도자 트리 쾅스님은 “베트남에서 카톨릭은 100 년, 공산주의는 50년, 민주주의는 20년밖에 안됐지만, 불교는 2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 지적하 면서, 불교탄압은 곧 민주주의 세력의 탄압이라고 정 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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