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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니 즐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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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24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03-25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종단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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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2 09:58 조회 1,1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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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니 즐거운가"

조선시대의 청백리 이원익은 난세의 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허름한 초가집에서 노비와 평민들로 더불어 가난하게 살 았다. 사람들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그를 가리켜「키 작은 정 승」이라고 불렀다. 그가 영의정으로 있을 당시 광해군이 대비 를 몰아내려했다. 그러나 이원익은 이를 완강히 반대하다 여 주로 귀향을 가게 됐다. 그는 여주향리의 집에 기식하면서 돗 자리 짜는 일로 나날을 보냈다. 솜씨는 능숙하지 못했으나 정 성들여 짠 돗자리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루는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와 안쓰러워 물었다.

“이 보게, 자네'심정은 이해하지만 돗자리 짜는 모습은 정말 못 봐 주겠네. 정 마음 붙일데가 없으면 책을 읽거나 시를 쓰 게. 무엇 때문에 이련 무의미한 일을 하면서 여생을 마치려고 하는가?” 친구의 걱정에. 이원익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사람아, 무의미한 일이라니. 나는 돗자릴 짜면서 세상을 공부하고 있네. 한 땀 한 땀을 짜고 있으면 온갖 잡념이 사라 진다네. 또 여기에 앉을 사람들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면 나 또한 기쁘다네. 게다가 내가 노력한 만큼 큰 결실이 있으니 이 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나?”‘

그 뒤 인조가 광해군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르자 제일 먼저 우의정으로 제수하였다. 이원익은 세 명의 임금에게 총애를 받으며 영의정을 다섯 번이나 지냈다. 그러면서도 항상 가난 한 사람들 돕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는 일화가 있다. 또 중국 청나라에는 김성탄.학자가-있었다. 이 분은 장마비로 열흘간 초옥에 갇혀 있으면서 서른 세가지 인생의 즐거움을 적었다.

저녁 먹은 후 할' 일이 없어 무심코 옛 문갑을 뒤져 본다. 거기엔 옛날 그에게서 돈을 빌려간 수십장의 차용문서가 나온 다. 채무자 가운데는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 아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문서 다발에 불을 붙여 타오르는 연 기가 멀리 사라져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어찌 아니 즐거울 수 있으랴.

10년간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 하나가 찾아왔다. 예와 다름 없이 빈털터리 친구다. 친구를 다락에 앉혀 놓고 아내에게 “소통파의 아내처럼 뭘 좀 사올수 없냐”하고 귀띰을 한다. 이 에 서슴없이 비녀를 팔아 친구를 대접하고 돈이 남으니 그 어 찌 아니 즐거우랴. .. -

가난한 서생이 지묵값이 없어 찾아 왔다가 말을 못꺼내고 머뭇거린다. 이를 낌새채고 뒤란에 데리고 가 “얼마가 필요한 가”고 물어 비녀 판값을 떼어준다. 친구에게 “바쁘겠지만 차 한잔 하고 가는게 어떤가”하고 붙잡으니 아아 그 아니 즐겁지 아니하랴. 너나 없이 남의 것을 빼앗는데서 낙을 삼지만 김성 탄의 33낙 은 이처럼 남에게 주는 것으로 닥을 삼고 있다. 이는 참으로 인생의 경지를 넘어선 낙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옛?우라 할머니들은 남에게 무엇이든 주는 것으로 낙을 삼 는 습속이 있었다. 이를테면 놀고 있는 남의 집 아이를 불러 들여 해진 바지를 기워준다든지, 남의 집에 갔다가 흩허친 신 발을 가지러히,해 놓고 온다든지, 먹다 남은 건건이를 바가지 에 담아!다리밑에''노숙하는.날탕패들에게 갖다주었다/할머니 들은 그토록 가사해으면서.' 주는 재미로 각박하지 않게 지냈 다. 무언가 주는 것으로 낙을삼았던 그네들 인생의 즐거움이 끈끈하게 묻어나오고 있었음이 엿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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