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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8곳 불교센터 보유한 명문 랍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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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24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03-25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해외불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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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2 10:56 조회 1,1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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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해외불교탐방 (회)

유럽 8곳 불교센터 보유한 명문 랍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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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쉰트 박사(오른쪽에서 두번째) 내외(맨 왼쪽이 부인)



우리가 랍텐 센터들을 방문하게 된 것 은 그쉰트 박사 내 외의 초청에 응한 결과이다. 그쉰트 박사 내외는 총지종에서 매년 주관하고 있 는 국제재가불교지도자대회에 2007년 대회부터 3회를 연이어 참가한 분들이다. 대회에는 세계 각지에서

재가 지도자들이 참가하였는데, 

이 부부는 특히 열성적으로 참가하였으 며, 총지종과 한국에 대해서 매우 많 은 호감을 가졌다. 이들 부부는 대회 기간 중 항상 새벽 불공에 제일 먼저 참석하는 등 수행 체험 프로그램에 가장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참가하였 다. 이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독일에 서 한국을 3년 연속 방문한 자체만으 로도 그들이 얼마나 열성적인가를 알 수 있다. 더욱이 독일인인 그들인 그 들은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먼 거리에서 온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쉰트 박사는 독일의 뮌헨 대학 공학부에서 교수로 오랜 기간 재직하 다가 몇 년 전 은퇴한 후 지금은 부 인과 함께 불교 공부와 불교 센터 운 영에 몰두하고 있다. 박사는 70년대 초반부터 불교 공부를 하였으니 30년 넘게 불교 공부를 한 셈이다. 뿐만 아 니라 육식을 하지 않는 등 계행에도 

철저한 분이다. 이론과 실천이 완비 된 훌륭한 수행자인 것이다. 그의 부 인 역시 박사와 함께 공부와 수행에 열심이었다.

그쉰트 박사 내외는 벌써부터 우리 에게 여러 차례 초청 편지를 보내왔 으나, 그 동안 내 개인적 일정으로 시 '간을 내지 

못하고 감사하다는 뜻만 표했었다. 유럽의 불교를 둘 러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종단 내외의 사 정 때 문에 선 쥬 뜻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 다. 그런데 아예 유럽에 서의 일정까 지 잡아 놓고 호 계속. 초청 의 사를 표시하시기 에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 간을 낼 수 있을지 자신의없어 확답을 미룬 채 그러도록 노렵해 보겠다고만 답변하다가 박사 내외가 잡아 놓은 일정 일을 약 한 달 보름 을 남겨 두고 가겠다는 답변을 했다.

박사 내외는 우리가 가겠다는 답변 을 받고서는 매우 기뻐하면서, 우리 들의 방문을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뜻을 이 메일로 전해 왔다. 단순한 예의의 표 시가 아니라 진심어린 표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진심어린 태도가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사 람인지 조금은 아는지라 한 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였다. 그들은 대회에다. 이미 피곤한 몸으로 우리는 북경 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여섯 시간을 공항에서 기 다려야 했다.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 하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었 다. 북경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식사 때 받았다가 남겨 둔 찹쌀떡으로 허 기를 채우고는, 밤이 늦어 휑한 공항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대기실 의자에 웅크리고서 두어 시간 눈을 붙인 다 음 날 새벽 2시 반에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다시 10시간의 비행 끝에 다음날 새벽 5시 30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 항에 닿았다. 시차 관계로 이틀 밤을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보낸 셈이었 다. 20시간이 넘는’시갼콰 이틀 밤이 규 나 경과하는 힘든여정이었지만, 공항에 내렸을 때는 그다지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미국에 비해 훨씬 간 『 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마중 나온 사람들이 기다리는 출입구를 향했다. 입국 수속은 간단했으나 출입구를 찾 아 가는 길은 간단하지 않았다. 공항 역사가 오래되다보니 옛 건물과 새 건물을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공항 내 동선이 매우 복잡하였다. 나가는 방향을 확인한 다음 화장실에 들러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였다. 밤새워 비행기를 타고 나면 몰골이 말이 아 니고 입에서는 냄새가 나기 마련이었 다. 짐을 찾고 출입구로 나갔는데, 마 중 나오기로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 다. 어찌 된 영문인가 두리번거리다 보니 또 다른 출입구가 있을 수 있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 사람에게 물으니 40미터 쯤 왼 편에 또 다른 출입구가 있다고 하였다. 그쪽 출입 구 쪽으로 스무 걸음 정도 옮기니 비 교적 덩치가 큰 점퍼 차림의 남자가 우리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두리 번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홀가라고 소개하였다. 반가웠지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바로 그를 따라 철 도역을 향했다. 매우 붐비는 장 소라 길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상 황이 아니었다.

철도역은 공항과 연결되어 있 었는데, 역시 찾아가는 길은 상 당히 복잡하였다. 에스컬레이터 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 고, 또 이번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바로 플랫폼이었 다. 기차표는 서울에서 사서 갔 으므로 따로 매표소를 방문할 필 요가 없었다. 또 플랫폼으로 들 어가는 데는 개찰구도 없었다. 플랫폼에 도착해서 홀가 씨가 플 랫폼 안내판에 붙어 있는 다음 열차 시각을 확인하였다. 약 30 분이 남아 있었다. 비로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을 만 치'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 다.

흘가 씨는 매우 지적인 사람이 었다. 그는 의사로 오랜 동안 바 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근무하다 가 2년 전에 은퇴하였다고 하였다. 공항에서 환자 수공과 관련된 일이 나, 응급환자를 돌보는 일 등을 하였 던 것이다. 은퇴 후에는 그쉰트 박사 처럼 역시 불교 공부와 수행에 전념 하고 있다고 하였다. 프랑크푸르트에 서 매주 자신과 뜻을 함께 하는 사람 들이 불교와 티벳어를 공부하고 있다 고 하였다,그쉰트 박사와는 약 10년 전에 불가리아에 불교 센터를 지을 당시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유럽인들이 어떤 식으로 불교 공부를 하고 또 불교 센 터들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홀가 씨는 스리랑카와 인도에 환자 수송 겸 순례 여행을 한 적은 있으나 한국에는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하였 다. 매년 10월 개최되는 국제재가불 교지도자대회 때 힌국에 오라고 하니 고마워하였다. 대화를 통해 흘가 씨 가 어떤 사람인가를 대략 알만 할 쯤 되니 기차가 플랫폼에 곧 도착할 것 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미지의 우리들을 위해서 공항까지 나온 그를 기억해 두어야 된다는 생각에서 우리 는 서둘러 기념촬영을 하고 작별 인 사를 하고 기차에 올랐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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