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 중 먼저 보시바라밀 설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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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27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06-12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경전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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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3 03:36 조회 1,853회본문
그동안 몇 회 동안 보살의 실천 덕목인 육 바라밀행 중 보시 , 그 중에서도 재시 를 위주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왜 육바라밀 중 가장 먼저 보시바라밀을 설하였 는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육바라밀의 순서를 보면 먼저 보시바라밀 을 시작으로 해서 다음 지계 , 인욕 , 정진, 선정 , 지혜 바라밀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 여섯 바라밀 중 하필 보시바 라밀을 첫머리에 두었을까요? 그 이유를 경 전에서 찾아 봅시다.
우리 총지종의 소의경전인 대승이취육바 라밀다경 권 제4에 ‘보시바라밀을 먼저 설한 이유’ 란 대목에 보면 “무슨 까닭으로 보시바 라밀을 먼저 설합니까”라는 자씨 보살의 질 문에 부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보시는 육바라밀 중에서 가장 수습하기 가 쉬운 까닭에 먼저 설하는 것이다. 비유하 면 세간에서 하는 모든 일과 같이 만약 하기 쉬운 것은 마땅히 이것을 먼저 해야 하는 것 이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육도의 저 언 덕은 보시를 문으로 하고 사섭(보시, 애어, 이행, 동사)의 행을 머리로 삼는 것이니 마치 대지에 일체의 만물이 의지하여 생장하는 것 과 같은 것이다. 이런 뜻으로 먼저 보시바라 밀다를 설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매사에는 반드시 선후와 본말 이 있는 법이니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의 차서 를 이행해야 진리의 이법 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우바새계경〉에 보면,
“재물이 없는 사람이 나는 재물이 없어서 보시를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한 모금의 물 과 한 포기의 풀도 없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극히 가난한 사람이 한 끼의 밥을 먹 은 뒤에 그 밥그릇을 씻은 물을 보시하여도 복을 얻을 것이며 가령 찐 보릿가루 찌꺼기 를 개미에게 보시하여도 무량한 복을 얻는 것이다”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시란 재물의 다소와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시할 마음이 있느냐 없 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비록 국왕이나 거 부, 장자라도 능히 보시를 하지 못하는 것입 니다. 예나 지금이나 보면 물론 큰 부자가 보 시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평범한 사 람들이나 가난하고 이름없는 서민들이 큰 보 시와 지극하고 진실된 보시를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삼계 중 욕계에 속 하므로 다생겁을 통해 오로지 욕심에 끌려 탐업을 쌓기만 했기에 주기를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시바라밀의 참뜻을 깨달 아 끊임없이 보시심을 기르며 수습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총지종에서는 교도가 발심입교하면 맨먼저 매일 정송과 더불어 절량희사법과 정 시, 차시법을 꼭 실천하도록 권하고 있습니 다. 왜냐하면 보살도란 복과 지혜를 같이 닦 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간의 우리 불교계의 수행 인들의 상당수가 복 따로 지혜 따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수행이 많았습니다. 복지 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어느 것 한 쪽 이라도 없거나 크기가 같지 못하면 온전한 제 기늟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긱’기 근기대로 복지쌍수 로 한 쪽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되게 닦아야 함은 자명한 이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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