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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한일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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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27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06-12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기고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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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총지종 중앙교육원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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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3 03:55 조회 1,1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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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한일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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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사에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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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일본인들의 삶 속에 깃든 불교

10만여 개의 사찰과 9000만의 불자

지난 5월 25일부터 29일까지 제31 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가 일본 교스 청수사에서 필자토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1977 、년 .한일불교문화교류협회가 결성되어 서울에서 처음으로 대회가 개최된 이 래 해마다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가며 공동 개최해 왔다. 중간에 3년 정도 의 공백이 있었지만 해마다 적당한 때를 택하여 양국을 오가며 서로의 우의를 다져온 지 어언 30년이 넘었 다.

이번 대회는 일본 교토에서의 환영 만찬을 시작으로 천태종 본산인 비예 산 연력사 에서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법회와 함께 학술발 표가 있었으며 이어서 교토와 나라, 오사카의 유명 사찰을 중심으로 불교 유적지를 관람하며 우의를 다지는 순 서로 진행된 행사였다.

25일 아침 9시 15분에 출발한 비행 기는 1시간 40분을 날아 11시가 되어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간사이 공항은 1994년 완공된 건축물 로서 수심 18미터의 바다 가운데에 인공 섬을 만들어 그 위에 세워진 공 항이다.

일본은 국제공항으로서 도쿄의 나 리타 공항이외에도 나고야, 후쿠오카, 삿포로 등 여러 곳에 국제공항을 가 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천 이외에 대구, 청주 등 지방에 몇 군데 국제공 항이라는 이름은 걸고 있지만 인천 공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국제공 항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있 다. 균형 있는 국토발전으로 지방에 위치한 국제공항을 활성화하여 지역 발전과 지역주민의 편의를 위한 노력 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사카의 날씨는 의외로 쌀쌀하다. 공항을 나와서 곧바로 점심을 먹고 교토로 이동하여 호텔에 체크인 한 후에 저녁 만찬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길래 숙소인 교토도큐호텔 바로 옆에 있는 본원사 를 방문했 다. 본원사는 신란 스님을 개산 조로 하는 정토진종  본원 사파의 본산이다. 통칭 서본원사라고 한다. 일본말로는 니시혼간지라고 하 는데 동쪽에는 정토종 대곡 파

의 본사인 히카시혼간지라고 부르는 동본원사가 있다. 본원사는 원래 신 란스님의 묘가 있는 교토의 오다니  라는 곳에서 창건되었는데 이 후 오사카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1591년 풍신수길이 지금의 이곳에 땅 을 내주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원사는 옮겨온 후 점차 정비되어

고 하며 본당인 아미타당과 신란스님 을 모신 어영당 을 중심 건물 로 하는 세계최대급의 목조건물로서 우리나라 목조건물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웅장한 가람이다. 1994년에는 이 건물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었다고 한다. 사찰의 바로 옆에는 불교대학으로 유명한 용곡대학 도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에 이 렇게 큰 가람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 고 절과 대학이 이웃해 있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저녁에는 교토 시내에 있는 브라이 튼호텔에서 일본측이 주최하는 환영 만찬이 있었다. 판에 박힌 인사말과 축사, 건배제의가 있고 나서, 공연으 로는 게이샤가 두 명씩 나와 이상한 춤을 췄다. 불교적인 뭘 표현한다고 했는데 정서적으로 우리와 영 동떨어 져서 그렇게 감정이 와 닿질 않았지 만 열심히 봐주었다. 불교와 게이 샤...?

일본은 100년 전쯤 명치유신이 있 고 나서 새롭게 국가를 건설하는 과 정에서 많은 인구가 필요했고 그에 따라 줄가승들에 대한 여러 가지 압 력이 행사되어 결혼이 장려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육식과 음주, 흡연 등도 승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 지게 되어 오늘 처럼 불교도의 만찬 행사에 맥주와 게이샤가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승려들이 대처를 하고 음주와 흡연을 함에도 불구하고 천하 게 보이지 않는 것은 왠일일까? 아마 도 나름대로의 품위 있는 매너와 불 교적 소양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다가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그런 행위들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봐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었다. 겉으로는 목에 힘을 주고 뒤로 는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일부 타락 한 승직자보다는 오히려 그런 솔직한 모습이 더 수행자 같다는 생각이 들 었다. 대처니 타락한 불교니 하는 것 은 우리나라 측의 평가이고 일본불교 는 그러한 모습 가운데에서도 대승불 교의 정신을 착실하게 전개하고 있 다. 일본은 절이 10만 개소, 인구 1억

산된다.

불교교단에서 세운 4년제 대학만 해도 구마자와 , 다이쇼 . 릿쇼 . 오다니 , 임제 . 용곡 ,화원 . 동명 대학 등 10여개가 넘고, 2년제 단기 대학은 이보다 훨씬 많다. 불교학자의 숫자 도〈인도불교학회〉회원만 2500명이 넘는다. 오늘날 세 계불교학계에서 일본이 차 지하는 비중은 가히 절대적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다가 여러 종파들이 해외에도 진출하여 일본불 교를 알리고 있다. 이러한 일본불교를 기독교가 득세 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 면 1600년의 불교역사를 가 졌다는 우리는 그저 부끄러 울 따름이고 우리 재가종단 에서도 불교포교를 위하여

노력해야겠다.

일본 불교의 모태 비예산 연력사

수많은 종파가 비예산을 모태로

둘째 날은 히예잔 엔락쿠지 로 향했다. 쿄토의 북동쪽에 우뚝 솟은 히에잔. 앞에는 일본 최대 의 호수인 비와꼬 가 놓여 있 다. 히예잔은 남북 200,동서 60에 걸쳐 있으며 850미터의 주봉을 중심 으로 수많은 절들이 자리를 잡고 있 다. 사실 히예잔 안에 연력사라는 절 은 없다. 이 산 전체가 연력사로 통칭 된다.

연력사의 개조는 전교대사 최징 으로서 그는 767년에 이 산의 기슭에서 태어났다. 14세에 출 가하여 19세 때에 동대사 에 서 계를 받고 비예산에 들어가 선을 닦으며 화엄을 공부했다. 804년에 유 학승으로서 당에 건너가 천태종의 교 의를 배운 최징은 귀국 후 천태종을 개창했다.

연력사도 두 번의 법난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오다 노부나 가에 의해서 1500명의 승- 려가 도륙당하고 절이 전소된 것이었 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도 불씨를 꺼 트리지 않고 1200년 동안 간직해왔다 는데 지금도 연력사의 근본중당에 “불멸의 법등”으로 심지 불 을 밝히고 있다. 연력사는 깨산 이래 1200년 동안 수 많은 명승을 배출했다. 그 중에서도 법연 , 친란  ,영서 ,도원  , 일련  등은 모 두 일본불교의 산맥을 이룬 종조들이다. 일본불교는 고 야산의 진언종을 제외하면 비예산 출신의 이러한 조사 들이 이룬 종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력사에서 평화기원법회 와 학술발표를 끝으로 공식 일정은 끝나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숙박도 연력사에서 했다. 우리가 자던 방에서 비파호가 보였는데 경치가 상당히 좋 았다. 절 주변의 아름드리나무도 부 러웠다. 히노끼라는 일본 삼나무들이 주위에 울창했는데 이렇게 큰 나무들 때문에 일본 절들은 크게 지을 수 있 었을것이다. 소

아름다운 절 금각사와 은각사

연간 300만 참배객이 찾는 청수사

셋째 날은 다시 교토로 가서 긴카 쿠지와 킨카쿠지를 방 문했타. 교토에 여러 번 와봤지만 일 정에는 들어있었어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절이었 는데 막상 와보니 절이라기보다는 별 장의 분위기가 났다.

은각사는 임제종 상국사파에 속하 는 사찰로 원래의 이름은 히가시야마 지쇼지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알고 보니 1482년에 무로마치 [꿰 막부의 아시카가 요시마사라는 장군이 금각사를 모방하여 지은 것으 로 자신의 은둔생활을 위하여 별장 겸 지은 절이다. 정원의 꾸밈새가 일 본선종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꽤 아름답다. 바쁜 일정과 수학여행 온 학생들 때문에 한적함을 즐기지도 못하고 밀려 나왔다.

금각사는 교토시의 북쪽에 자리 잡 고 있는데 정식 이름은 킨카쿠 로쿠 온지이다. 부처님의 사리 를 모신 사리전이 온통 금으로 뒤덮 인 금각이라서 금각사라고 부르는데 원래의 금각사는 1397년에 세워졌지 만 1950년에 불타버리고 1955년에 다 시 복원된 건물이다. 당시에 어떤 사 람이 황혼의 금각사를 바라보니 너무 나 아름다워 그 아름다운 광경을 혼 자만 간직하고 싶어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나중에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 가도〈금각사〉라는 소설을 써서 금각 사가 불태워진 것에 대하여 온갖 미 사여구를 갖다 붙였지만 사실은 단순 히 미친 사람이 불을 질러버린 것이 었다. 우리 남대문을 불 질렀던 사람 처럼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뭐가 열 이' 받았던지 그 아름다운 건물을 다 태워버린 것이었다. 여기나 거기나 가끔은 이런 미친 사람들이 있어 목

조건물은 항상 위험하다. 하지만 어 쩌랴.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허물어 지기 마련이고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이지만 미친 사람들 때문에 아름다움 이 좀 더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쨌든 번쩍거리는 금각을 배경으 로 서둘러 기념사진을 몇장 찍고 수 학여행 온 학생들에 떠밀려 종종 걸 음을 치면서 나왔다.

오후에는 지은원 을 방문했 다. 이 절은 정토종을 연 법연상인 이 대곡선방 을 열 고 포교를 하던 곳이며 법연이 다른 종파의 박해를 받아 시코쿠로 유배 갔다가 돌아 온 직후 입멸한 곳이다. 이후 이 절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 미 히데요시, 도꾸카와 막부의 비호 를 받고 크게 성장했다. 그 결과 지금 의 대가람을 형성할 수 있었 다고 한다. 큰 절이 모두 회 랑으로 연결되어 신발을 벗 고 다녀야 하며 비를 맞지 않고도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갈 수 있도록 지어져 있는 것이 특색이었다. 여기서도 서둘러 기념사진 몇 장 찍고 는 그 유명한 키요미즈데라 라고 불리는 청수사090) 로 이동했다. 주차장에서 내 려 사람들이 붐비는 전통 상 가와 기념품 가게를 지나 좁 은 골목을 올라가면 청수사 가 나온다. 청수사 주지 아 들 오니시  상이 정문 에서 아는 체 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사람은 영어 도 잘하고 키도 크고 잘 생 겼다. 일본에서는 승려가 결 혼후보감 1순위라고 하던데 청수사처 럼 큰 절의 주지 아들에다 키 크고 미남이면 신부감이 줄을 설 것이다.

청수사는 교토시의 동쪽 오토와야 마 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은 원과는 크게 멀지 않다. 이곳은 교토 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명소의 하 나인데 연간 참배객이 300만 명이 넘 는다고 한다. 오늘도 대인파가 몰려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청수사라는 이 름은 근처 언덕에서 경내로 흐르는 폭포에 연유하여 이름이 지어졌다. 이 절은 헤이안 시대 초기인 780년에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지면서 창건되었 는데 798년에 확장되면서 북관음사로 불리다가 이윽고 청수사로 불렸다. 한 때는 진언종 사찰이기도 했는데 불이 나서 타버리고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인가 손자가 1633년 에 재건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기둥 과 서까래에 붉은 칠을 한 높이 31미 터의 산주노토 가 나타난다. 이 탑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안 에는 대일여래가 모셔져 있다고 한 다. 청수사의 또 하나의 명물은 혼도 라고 하는 본당인데 못을 쓰지 않고 지었다고 일본인들은 자랑한다. 우리 나라 목조건물도 못을 안쓴다는 걸 잘 몰랐던가 보다. 본당에는 십일면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경내에는 수목장을 한 곳도 있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다. 청수사에 흐르 는 물을 오토와노타키 라고 하는데 예로부터 마시면 병을 치료하 고 장수한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청수사에서는 교토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많이 찍는데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특히 많아서 좋은 자리 차지하고 한 컷 찍으려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 다. 청수사의 구경거리는 비단 가람 뿐만 아니라 청수사 앞 골목이 단연 볼거리이다.

일본의 온갖 전통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찻집, 도자기, 음식점 등이 많 아 일본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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