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가르침과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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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3-30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법천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법경 정사(밀교연구소장/ 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0 10:01 조회 2,943회본문
경전의 가르침과 일상생활
법경 정사(밀교연구소장/
법천사 주교/ 철학박사)
경전의 말씀은 일상(日常) 가운데 있다
대승장엄보왕경』은 불교 총지종의 소의경전이다. 이 경은『관세음보살의 본심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의 공덕을 설하고 있는 경전이다. 전 4권으로 이루어진 경전 가운데 항상 나를 일깨우는 경문의 구절이 하나 있다. 읽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쭈삣서고 정신이 번쩍 든다. 경전(經典)은 이렇게 설하고 있다. 『만약 상주(常住)하는 곳의 재물과 기름, 삼베(麻), 쌀, 콩 등을 훔쳐 사용한 자는 아귀취(餓鬼趣)에 떨어져서 머리카락이 엉클어지고 몸의 털은 모두 일어서고, 배는 산(山)과 같이 크고, 그 목구멍은 바늘구멍 같으며, 불타고 말라서 단지 해골만이 남는데, 그 사람은 이러한 고통스러운 과보(果報)를 받게 된다. …중략…
만약 승단(僧團)과 스승을 경만(輕慢)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마땅히 빈천(貧賤)한 집에 태어날 것이며, 태어나는 곳에 따라서는 불구(不具)의 몸으로 곱추나 앉은뱅이가 될 것이다. 이러한 몸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는 곳에서는 병(病)도 많아 야위어 손발이 구부러지고 절룩거리며, 앉은뱅이가 되어 고름피가 그 몸에 흘러내려서 육신의 살은 떨어질 것이다. 백 천 만 년 동안 이 고통스러운 과보(果報)를 받을 것이다. 만약 상주(常住)하는 곳의 땅을 도둑 질하여 사용하는 자는 대호규지옥 (大號叫地獄) 중에 떨어져서, 입은 쇳덩어리[鐵丸]를 물고, 입술과 치아 (齒牙)는 끊어지고 부러지며, 목구멍은 모두 타서 문드러져 헐며, 심장(心臟)과 간장(肝臟), 장(腸)과 위(胃)는 타서 녹고 온몸이 불로 찌지는 것과 같이 된다. …중략…
업력(業力)으로 다시 태어나더라도, 불구덩이에 던져져서 죽지도 않고 전전(輾轉)하기를 거듭한다. 또 다른 지옥에 들어가서 삼겁(三劫) 이 경과하면, 그 사람은 다시 남섬부주 (南贍部洲)의 빈천한 집안에 태어나서 그 몸은 장님이 된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과보(果報)를 받으니, 삼가 조심하여 상주지(常住地) 나 재물(財物)을 도둑질 하여 사용해 서는 아니 된다. 만약 계(戒)를 얻거나, 공덕(功德)을 얻거나, 지혜(智慧)를 얻고자 한다면, 상주지(常住地)나 재물(財物)을 훔쳐서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마치 불구덩이에 상주(常住)하는 것과 같고, 독약(毒藥)에 상주(常住)하는 것과 같다. 중담(重擔)의 독약(毒藥)과 같은 것은 능히 치료하여 구제(救濟)할 수 있지만, 만약 상주지(常住地) 의 물건을 훔쳐 사용하는 자는 능히 구제할 수가 없다.』 얼마나 무서운 과보인가.
부처님의 물건을 훔쳐서도 아니 되겠지만, 절대 함부로 가져가서도 아니 된다. 또한 아껴 쓰지 않고 낭비해서도 안된다. 위의 경전의 내용이 너무 지나치게 과장되고 허황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과법을 믿는 우리 불자로서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얘기다. 종교인, 신앙심 등을 내걸지 않더라도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특히 공사(公私) 에 있어 분명한 자세, 부정(不正)에 대한 단호한 태도야 말로 수행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요 종교인의 기본자세라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계율을 잘 지키려고 하거든 마땅히 오근 (五根)을 스스로 제어하고 방일하여 오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비유하면 소치는 사람이 채찍을 들고 소가 남의 밭의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오근을 제멋대로 내버려두면 오욕에는 끝이 없으므로 스스로 억제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사나운 말을 재갈로써 제지하지 않으면 사람을 끌고 깊은 함정에 떨어지게 하는 것과 같다.”『유교경』에 나오는 말씀이다. 오욕에 빠지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공사(公私)를 구분하는 것이 수행이다
요즈음 지도자들의 비리로 나라가 시끄럽다. 경전에서 언급한 악업들을 죄의식 없이 막행으로 지었으니 그 과보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시끄러움과 과보는 공사(公私)를 구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스스로 근신하지 못한 악업의 결과다. 어디 정치판만 그러한가.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행태는 사회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공중(公衆)의 물건을 자신의 물건처럼 갖다 쓰거나 말없이 가져가는 것은 다반사다. 이는 투도(偸盜)나 다름없다. 불자라면, 남의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공중의 물건을 자기 것인양 가져가서도 안되며 필요 이상으로 가져가서도 아니 된다. 그것은 욕심과 탐심이다. 중생의 탐심이란 물건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다.
부정(不正)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다운 웰빙이다
매사에 자신 스스로 공사를 분명히 구분하고 자신의 부정(不正)에 스스로 철퇴를 내려야만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 앞에서 떳떳한 수행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삶을 우리는 정행(淨行)이라 한다. 정행은 깨끗한 삶이다. 청정지계(淸淨持戒)에서 가능한 일이다. 청정지계의 깨끗한 삶이 바로 바른 삶이다. 그것이 곧 웰빙이다. 웰빙은 유기농 채소와 건강식을 즐겨 먹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건강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과 정신이 맑고 건강해야 참다운 웰빙이다. 그러므로 바르지 못한 자신을 채찍질 하고, 십선(十善)을 다하며, 선업을 지어 인격을 완성해나가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악업을 짓지 않는 실천법이다. 위의 경문(經文)은 나의 생활법문 (生活法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경전의 가르침은 항상 일상(日常)에 있는 것이다.수행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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