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4면 8방에 맑은 바람 흐르게

페이지 정보

호수 127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06-12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3 04:00 조회 1,104회

본문

4면 8방에 맑은 바람 흐르게

선불 교  절집 안은 90일의 여름안거  가 시작된다. 이를 결제 라 고 부른다. 석 달 동안 산문 밖의 출입 을 삼가고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토록 만 든 특별기간이기도 하다. 함걸 선사는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4면 8방에 맑은 바람이 흐르도 록 만들어라”고 하여 외적인 고요함과 내적인 치열함이 함께하는 결제를 주문 했다.

하안거 역사는 2600여 년 동 안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져 오 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작은 사소한 것이었다. 그건 인도 지방의 우기  라는 독특한 기후 때문이다. 당시에는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그늘’ 조차 도 오래 머물게 되면 혹여 그것에 대한 미련과 애착심이 생길까 봐 같은 나무 밑에서 3일 이상 머물지 않았던 시절이 었다. 그런 철저한 무소유와 무주 를 실천했지만 석 달 동 안 내리는 폭우 앞에선 어찌할 수가 없 었다. 거친 비를 피해 자연스럽게 넓은 동굴 안이나 큰 지붕 밑으로 모여들었 다.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상대적으로 ‘편안한 머물기 ’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본래 떠돌이

였지만 할 수 없이 한시적인 붙박이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중국 - 한국 . 일본 등 동양 삼국은 함 께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림 이라 고 불렀다. 대중이 풀과 나무처럼 빽빽 하게 서 있는 까닭에 내키는 대로 어지 럽게 자라지 못하도록 서로 붙들어 주는 공간인 까닭이다. 쑥대머리(머리털이 마 구 흐트러져 있는 모양)란 말에서 보듯 쑥은 제멋대로 자라는 식물의 대명사다. 설사 그러 쑥이라고 할지라도 곧게 자라 ‘ 는 마음 속에 있으면 애써 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는 것은 전쟁터뿐 아니라 수도원의 법착 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중이 공부시켜 준다는 말이 나왔다. 그냥 함께 살면서 따라 하기만 해도 크게 잘못될 일이 없 기 때문이다.

‘크게 잘못될 일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그날 행 사에 초청된 강사는 차분하게 주제를 잘 이끌어가는가 싶더니 한순간 그만 키워 드를 놓쳐버렸는지 말이 끊겼다. 어색한 고요가 잠시 이어졌다. 그 난감한 표정 을 향해 뒷자리에서 누군가 ‘뭐라뭐라’ 하면서 말머리를 쳐주었다. 그랬더니 ” 아! 맞아요” 하면서 이내 다시 말문이 열렸다

한참 후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청중 을 돌아보며 농담을 던졌다.

“아까 저를 도와준 사람이 누군지 모 르죠? (뜸을 들인 후) 우리 집사람이에 요.”

그러자 모두 작은 소리로 웃었다.

“집사람 시키는 대로 하면 크게 잘못 될 일이 없습니다.”

다시 큰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백번 맞는 말이다. 이것이 같이 사는 사람의 힘인 것이다. 가정 역시 작은 총 림인 까닭이다.

머묾이라는 결제와 떠남이라는 해제  는 수행승의 몸과 마음을 조화롭 게 만들었다. 머물 때는 모두가 푸른 산 처럼 꿋꿋한 자태로 살았지만 떠날 때는 한결같이 자유로운 흰구름이 될 수 있었 다. 때로는 하늘 높이 우뚝 서기도 했고, 때로는 깊이깊이 바다 밑에 잠기기도 했 다. 그 잠김을 통해 속살이 여물어야 다 시 솟아오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 이다. 긴장과 느슨함으로 맺힌 것이 있 으면 풀었고, 마냥 풀어진 것이 있으면 다시 야무지게 묶었다. 물이 흐르기만 한다면 피곤함이 묻어날 것이고 그렇다 고 해서 고여 있기만 한다면 답답함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흐를 곳에서 는 흘러야 하고 머물 곳에는 머물러야 하는 것이 물의 순리인 것처럼 인간사 역시 그랬다.

머물고 있으면서도 늘 떠날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매듭지으며 살았고, 반대로 늘 떠돌아다니면서도 영원히 머물 사람 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순간순간 살 수 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붙박이와 떠돌이 의 자격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동과 머묾이 적절한 조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동은 이동대로, 머묾은 머묾대로 같이 빛나게 된다.

하지만 혜원  스님은 30년 동안 그림자조차 여산  선사는 개원 사 에서 30년을 머물렀랴. 그렇 지만 그 머묾을 어느 누구도 정체나 도 태로 보지 않았다. 같은 장소지만 그 안 에서 해제와 결제를 거듭했을 것이고, 매 순간순간 머묾 속에서도 떠남을 반복 하도록 스스로를 경계하고 훈련시킨 까 닭이다.

알고 보면 사바세계 전체가 80년 평생 을 머물러야 하는 거대한 총림이요 또 수도원이다. 서로 의지하며 또 참지 않 고서는 함께 살 수 없는 땅이기 때문이 다. 더불어 살기 위해선 붙박이건 떠돌 이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의 자세 가 필요했다. 그것은 나와 남에 대한 부 끄러움을 아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 까닭에 법연  선사는 이런 소박한 구절을 남겼다.

“20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공부해 보 니 이제 겨우 내 부끄러운 줄 알겠다.”

-원철 스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