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윤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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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3-30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정진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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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0 09:51 조회 2,864회본문
불교의 윤리관
건화사 주교 법상 정사
윤리학 측면에서 바라볼 때 어떤 부분이 좋다 또는 나쁘다 혹은 어떠 한 부분을 행하는 것이 옳다 또는 그 르다고 판단을 내릴 때 여기에서 말 하는 어떤 부분이라는 대상은 개인 의 행하는 것이거나 사회가 만들어 놓은 형태 등이다. 이와 같이 도덕적 으로 판단을 내리는 기준이 되는 인 간의 행위를 “업(業)”이라고 한다. 업이라는 의미는 카르마(karma)의 산스크리트 어원은 ‘kṛ’에서의 ‘하다’ 라는 말인데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 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다’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의도적인 행위로 인해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업도 내면의 ‘의도(cetanā,思)’, 그 런 의도를 가지고 활동하는 ‘행위’, 그 행위로 인해 생기는 결과인 ‘영향력’ 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행위만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내 면의 심리상태까지 포함하는 복합적 인 개념이다. 그러나 내면의 의도를 동반하지 않 은 활동은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업 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동 물의 움직이는 행위일 뿐이다. 따라서 불교적 측면에서 윤리적 판 단의 대상은 반드시 마음의 작용인 의도를 동반한 활동을 말하며, 이것 이야말로 업의 본질이다.
업의 본질이 발동하여 행해지는 업 은 반드시 ‘영향력’을 미쳐 그에 따른 인과응보를 받는다. 다시 말해 의도를 지니고 행하는 행위가 자신의 선악업에 따라 생사 인과가 서로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 업이다. 『중아함경』에 “만일 일부러 짓는 업이 있으면, 나는 반드시 그 갚음을 받되 현세에서 받거나 후세에서 받 는다고 말한다. 만일 일부러 지은 업이 아니면, 나 는 이는 반드시 그 갚음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중에는 몸으로 일부러 짓는 삼 업(三業)이 있다.
불교적 측면에서 윤리적 판단의 대상은 반드시 마음의 작용인
의도를 동반한 활동을 말하며, 이것이야말로 업의 본질이다.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 를 주고 괴로움의 갚음을 받게 한다. 입에는 사업(四業)이 있고, 뜻에는 삼업(三業)이 있다.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 를 주고 괴로움의 갚음을 받게 한다.” 라고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설 법하였다.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설법한 업에 는 몸(kaya)으로 짓는 신업, 입(vaca) 로 짓는 구업, 뜻(manas)으로 짓는 의 업 크게 3가지로 구분이 된다. 또 다 시 몸으로 짓는 신업에는 세 가지의 업이 있다.
중생에서부터 곤충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목숨을 죽이는 살생, 남의 소유하고 있는 물건을 훔치는 투도, 어떤 대상으로부터 보호 받고 있는 여자를 범하는 사음(邪淫)이다. 이것을 몸이 고의적으로 짓는 세 가지의 업 행위로 선하지 않아 괴로 움의 결과를 받게 되는 것이다. 입(vaca)로 짓는 구업에는 네 가지 의 업이 있다. 자신의 목적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 하는 망언, 이간 시키는 말을 하는 양설, 욕설 또는 악 한 말을 하는 악구, 꾸며대는 말로 부 적절한 말, 거짓말,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기어이다.
이것을 입이 고의적으로 짓는 네 가지의 업 행위로 선하지 않아 괴로 움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뜻(manas)으로 짓는 의업에는 세 가지의 업이 있다. 남의 재물이나 내가 필요한 생활도 구를 살피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고자 하는 마음인 탐사, 중생을 미워 하고 성내는 마음인 질에, 삿된 견해, 개인적인 소견, 업과 과보를 믿지 않 는 마음인 사견이다. 이것을 마음이 고의적으로 짓는 세 가지의 업 행위로 선하지 않아 괴로 움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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