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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인생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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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2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0-11-05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신행/설화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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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박묘정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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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3 08:33 조회 2,6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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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인생의 아름다움
개인의 소장품을 국가가 지원해야

며칠 전 내가 봉사하고 있는 문화자원봉 '사자회에서 강릉으로 문화답사를 갔다.

우리들이 하는 봉사가 박물관이나 미술 관, 전시관, 공연장. 등 이어서 강의도 듣고 답사도 하며 재충전 할 기회를 많이 가지 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는 강릉에 있는 ‘선교장’과 ‘참소리축음기- 에디슨과학박 물관’을 답사했다.

선교장은 강릉 명문으로 알려진 ‘이내번’ 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하여 대대로 후손들 이 거처하는 집으로, ‘열화당’ ‘안채’ ‘동 별당’ ‘활래정’ 등 모두 4채가 있다. 우리 나라 전통 고택으로 가장 잘 보존된 집이 다. 1800년대 초반 전성기 시절에는 1년에 - 3만석을 수확하는 조선 재벌집이었다고 한 다. 하인만 해도 100여명이었다고 한다.

이 집의 사랑채인 ‘열화당과 활래정을 지 은 대 지주 이 후  는 “재산 을 일으키는데 있어 올바른 도리에 따르면 일어나고 도리에 거스르면 망한다.” “사람 이 돈을 나누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나 눌 것이다.” “하늘이 나 눈다면 먼저 화를 내릴 것이니 사람이 나누어 야 할 것이다.”

이 가르침은 우리 불교에서 먼저 희사 하고 어려운 사람 도와 주라고 하는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오늘 난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돌아 볼 기회를 가졌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 어려운 사람을 만 났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 주려고 했는가? 내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이 곳에서 난 사 람이 살아가야 할 도리를 다시 한번 가슴 에 새겼다. 이 집에는 현재 후손들이 살고 있어서 더 살아있는 박물관 느낌이 난다. 마침 외국 학생들이 집을 둘러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 심으로 가슴 뿌듯했다.

선교장을 뒤로 하고 ‘참소리축음기 .에 디 슨과학박물관으로’ 향했다.

손성목 관장이 40여 년간 60여 개국에서 

축음기를 모아 1992년에 문을 연 세계 최대 규모의 오디오 박물관으로 17개국에서 만 든 축음기 4000여 점 가운데 -1400여 점의 축음기와 음반 15만장, 코리고 8000여 점의 음악 관련 도서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어 100년 소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디슨박물관보다도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 진품들이 더 많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다.

에디슨 발명품관에는 에디슨의 3대 발명 품인 축음기. 전구, 영사기를 비롯한 에디 슨 발명품 8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총400 여 평의 규모에 4개의 독립 전시관과 100여 평 규모의 전용 음악 감상실이 있다. 이곳 에 전시된 기기들은 지금도 생생한 음악을 선사한다. ‘ 아메리칸 로노그래피’ 같은 것 은 전세계에 하나뿐인 기기가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 도 있고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인 유성기 1호도 여기에 전시되어 있다.

전시품의 방대한 양에 비해서 전시 공간 이 턱없이 부족하여 너무 촘촘히 전시되어 갑갑함을 느꼈다. 귀중한 문화재가 좁은 공 간에 진열 되어 있는 것이 안타깝다 못해 분노를 느끼게 했다.

관장님이 이 많은 것을 수집하게 된 동기 는 6살 때 (1948년) 아버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콜롬비아 포터불축음기’ 였다고 한 다. 전쟁이 터지자 8살 어린 나이에도 할머 니와 함께 이 축음기 하나만을 들고 피난 을 내려 왔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수집의 길로 들어 섰다고 한다.

이 박물관에도 전시 설명을 해 주는 도슨 트가 있었다. 자원 봉사자는 아니고 이곳의 직원이 직접 기기를 조작하며 설명해 줘서 이해가 잘 되었다. 아주 간결하면서도 핵심 을 꼭꼭 집어줘서 전문가다웠다.

전시품목이 한 개인의 수집에 의한 것이 란. 사실과 그 종류와 숫자에만도 우리 모두 를 놀라게 했다. 무엇 이 그로 하여금 이 어 려운 길을 그의 길로

이끌었을까? 수집 과정에서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고 수집품 한가지를 손에 넣 기 위해 먼 해외를 수 차례 건너가 끈질기 게 설득하고 막대한 돈을 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음악은 나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스 승이고 애인이다.’ 라는 집념으로 40여 년 긴 세월을 축음기를 수집하면서 그 중 20 여 년을 박물관 운영에 바친 외길 인생을 걸어 오면서 현재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다.

진열 되지 않은 7동의 컨테이너 박스 안 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영사기도 영화 박물관으로 탄생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 당에는 오랜 옛날 자동차도 잘 전시 되어 있다.

개인의 수집품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조차 없는 귀중한 문화 유산인데 유 지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막대 한 금액이 드는 이 일을 개인에게만 부담을 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이 문화유산은 한 개인이 수집한 것이지만 이미 한 개인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물관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주고 온 국민의 문화유산으로 잘 보전 되기 위해 국가나 시 차원의 전폭 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 오는 길, '해 지는 버스 차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관장님의 가족들 은 어떤 사람들일까? 지금까지 어떻게 지 냈을까? 그 가족들의 이해가 없었으면 이 런 위대한 일을 해 낼 수 있었을까? 그 가 족들에게도 찬사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 박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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