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길잡이, 보살행의 실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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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2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8-05-30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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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20 12:05 조회 3,807회본문
법상인 전수의 總持法藏
스승들의 고민은 한 가지입니다. 바로 교도 들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 이는 모든 성직자 들이 가지는 영원한 숙제입니다.
어느 사원에서 만난 보살님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불공이 끝날 때마다 고민을 털어 놓는 보살님의 집안 사정은 총체적 난국이었습 니다. 아들은 술주정이 심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집을 나간 지 꽤 되었습니다. 아들은 돈도 벌지 않고 매일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하면 언어폭력을 넘어서 칼을 빼들고 설치기 까지 했습니다. 손자 손녀를 키우기 위해 드는 돈 을 벌기 위해 보살님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 구하고 파출부 생활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술주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 고, 보살님의 힘으로는 제지를 하기도, 감당을 하 기도 버거웠습니다. 식탁 아래나 옷장 안에 숨어 있어도 아들은 기어이 보살님을 찾아내어 밀치 락달치락 힘을 써댔기 때문에, 많은 밤을 주택 옥 상에 숨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들이 곯아떨 어진 게 확인되고 나서야 살금살금 내려와 겨우 새우잠을 청하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노쇠한 보살님의 깊은 고민을 어떻게 풀 고, 해탈에 접어들게 만들 수 있는지 앞이 깜깜했 습니다.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보살님이 불공을 앞두고 있거나 불공을 하고 있으면 아들의 술주 정이 훨씬 더 심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취한 걸 음이 제대로 걷지 못해 넘어지고 자빠져서 진흙 범벅이 된 차림으로 들어오면서도 현관문을 걷 어차며 “나무삿다남!”하고 소리를 빽 지릅니다. 보살님은 자신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고함이라 고 여겨졌답니다. 그러면서 보살님에게 차마 입 에 담지 못할 상스럽고 거친 욕설을 쏟아냅니다.
어느 날, 저는 보살님의 손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혹시 이 모든 상황이 다 보살님이 지어서 온 거라는 것을 알고 계세요?” 보살님은, 모든 업보는 자신이 지어서 오는 거 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고 슬픈 얼굴로 대답했습 니다. 하지만 몇 십 년을 불공해도 나아지지 않는 걸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또 우셨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오랫동안 불공해도 해탈이 되 지 않았다면, 한 번 더 속는 셈치고 제가 시키는 대로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일단은 그간 하고 있던 조상불공을 모두 중지 시켰습니다. 대신 조상 참회를 집중적으로 해달 라고 말했습니다.
불공을 하지 않더라도, 모든 희 사금을 재난소멸과 참회하는 데 보시하고, 마음 을 비우도록 노력하라고 말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었습니다. “전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칼까 지 들고 설치는 일은 없어졌어요.” “그러면 옥상에 가서 숨어 있다가 내려오는 일 도 없어졌어요?” “네. 이제 옥상까지 가는 일은 없죠.” 날이 추워졌기 때문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저는 지금처럼 참회에 집중해서 불공 을 하자고 보살님을 격려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아들의 술 먹는 빈도 가 줄어들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어 느 날엔가는 생활비에 보태라며 돈도 좀 주었다 고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차도가 보이자 보살님 은 저의 말에 신뢰를 가지고 열심히 잘 따라주었 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살님이 울면서 할 말이 있다 고 하였습니다. 손녀가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데 먹거리도 가져다줄 겸 갔다가 집이 깔끔하지 못해 잔소리를 좀 하였더니 소리를 지르면서 보 살님을 밖으로 떠밀며 난리를 쳤다는 겁니다. 손녀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보살님은 차 편도 없어서 밤샘영업을 하는 큰 마트에서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다가 첫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 이라고 했습니다. “손녀의 모습이 누구의 모습일까요?” 저는 물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보살님이 답했습니다. “우리 아들 같네요.” “맞습니다. 아들 참회를 더 합시다.” 그 날부터 보살님은 더욱 더 정성을 다하여 참 회에 매진했습니다. 보살님의 진실한 참회가 거 듭될수록 집안분위기는 시나브로 바뀌어서 마 침내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참회가 얼마나 중요한 것 인지 새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참회 하나로 업의 완전한 소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회 를 바탕으로 그동안 해오던 안 좋은 습관들을 바꾸고, 또 스스로가 바뀌기 위해 실천을 병행 해야 합니다.
말이 쉽지 이를 제대로 실행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자식들의 해탈을 위 해서는 나 자신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업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마련입니 다. 업의 소멸 역시 쉽게 단박에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도 왔다가, 아픔도 왔다가, 시련 도 왔다가 하면서 업이 소멸이 되는데, 이 일련 의 과정을 인내하는 것 역시 하나의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강조합니다. 365일 서원당에 앉아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회가 필요하고, 생각과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을 때, 변화를 체감하게 됩니다. 내면의 혁신 없이 바 깥을 향해 원망을 하고 구원을 요청해봤자 텅 빈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업이 두터운 보살님은 참회의 기간이 상대적 으로 길고 고단할 수 있는 반면, 업이 얇은 보살 님은 참회의 시간도 짧고 업보의 그림도 빨리 보 인다는 것입니다. 저의 설법에는 실천이라는 단어가 매번 등장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세뇌 효과가 됩니다. 보살 님을 향한 메시지도 되겠지만, 저 자신을 겨냥하 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보살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스승의 임무, 잘못된 길에 들어선 보살을 바 른길로 이끌어 주는 것도 스승의 임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승 자신의 실천 이 최우선과제가 되어 본인부터 바른 모습을 보여야 하겠지요. 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가 업 을 적게 짓기 위해서는 늘 노력을 해야 합니다. 행여나 상대에게 업을 짓게 될지도 모르는 것들은 입에도 담지 말고 생각으로라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스승이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실천을 하고 전파를 하면, 보살들 역시 따 라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승의 역할은 인도자에 불과합니다. 결정적으로 해탈을 할 수 있느냐, 없 느냐는 보살의 실천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실 천 방법을 일러줄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언 제 어디서나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는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업이라는 것은 혼자 발 버둥을 친다고 사라지는 게 결코 아닙니다. 스스 로 깨닫고 실천하면 달라집니다. 모두 실천을 기 억하고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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