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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苑淨) 대성사(大聖師)에 대한 회고(回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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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5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2-09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경전 서브카테고리 종조탄신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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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3 08:43 조회 1,39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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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苑淨) 대성사(大聖師)에 대한 회고(回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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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대성사의 20대 모습


대성사 원정종조(苑淨宗祖)님의 속성은 일 직(一直) 손씨(孫氏)이고, 휘(諱)는 정우(禎 佑), 법호(法號)는 원정(苑淨)이다. 1907년 1 월 29일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에서 탄생하셨다. 타고난 성품이 영특 민첩하고 불요불굴의 의지와 정의감, 뛰어난 기지와 고매하신 인격 을 소유하신 큰 그릇이다. 영남의 훌륭한 가 문에서 태어났으며, 놀라운 기억력과 천재성 을 지닌 종조님은 어린나이에 사서(四書)를 두루 익히셨고, 탁월한 문장력과 주역(周易) 과 노장(老莊)에도 조예가 깊었다. 

일찍이 개화의 물결을 타고 현대의 고등교 욱을 마치고, 다시 관계와 교육계에 종사하였 으나, 불교에 뜻을 세우신 후 한반도와 만주, 중국 등 두루 다니며 불경의 수 집과 연구에 몰두하였다. 피비린 내 나는 6.25사변을 보고 동족끼 리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 혹함과 도탄에 빠진 중생들의 고 통을 목격하시고, 호국불교(護國 佛敎)를 통해 나라를 구하고 중 생을 구제해야겠다는 대자비(大 慈悲)의 서원을 세웠다. 큰 서원을 세우고 정진하는데 성사께 이심전심으로 홀연히 한 대덕이 다가왔는데 그 분이 진각 종(眞覺宗)의 종조인 회당조사 (悔堂祖師)이다. 그 분도 같은 뜻 을 품고 진각종을 개교하였으나,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불교에 조예가 깊고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대덕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두 거성은 손을 잡고 진각종을 발판으로 삼아 밀교중흥(密敎 中興)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밀교의 비법만 이 이 나라를 구하고 이 민족을 실의와 좌절 로부터 건져 낼 수 있다는 확신과 염력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회당성사의 폭 넓은 도량과 중후한 인품에 맞추어 원성대성사의 신묘한 지혜와 박식한 교학을 바탕으로 종단은 나날이 발전했다. 원 정대성사는 탁월한 기획과 저술로 현대 밀교 의 뚜렷한 지침을 설정했고, 종명도 확실하지 않던 종단에 종명을 부여함은 물론 종단의 기본교리가 되는 각종 교전을 편찬하여 이나 라 밀교의 주출돌을 놓았다. 

그러나 1963년 10월 16일 회당조사가 열반에 들었다. 이에 원정대성사는 종단의 총인직을 맡아 8여년동 안 진각종을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총본산을 대구에서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으로 옮겼으며 종조전을 건립하고 찬덕비를 세웠다. 원정대성사는 잊혀졌던 조선시대의 밀교비 법, 경궤(經軌), 다라니와 수법(修法)등을 발 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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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종을 선포하고 있는 원정대성사


또한 일본 밀교와 교류도 활발히 전개되었고, 인도, 중국, 티벳트의 밀 교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사는 정성을 다 바쳐 가꾸어온 종단의 교 상(敎相)과 사상(事相) 가운데 불합리하고 불명확한 점을 고착되기 전에, 여생이 끝나기 전에 하루 속히 보완해야겠다고 불철주야로 준비를 해 왔다. 1971년 마침내 이 숙원의 대업에 착수하였 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중요한 작업은 실패 로 끝나고 말았다. 성사를 따르고자 하는 대 부분의 승직자와 교도들의 열망에도 불구하 고 밀교에 생소한 일부 사람들의 무지에 의 한 종교 외적인 곡해로 뜻밖의 사태가 벌어 졌다. 대성사는 종단에 대하여 교각살우(矯角 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할 수 없다고 개탄하 시고, 그해 12월 총인직을 비롯한 모든 직책 에서 사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회당선사의 영 전에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진각종을 떠났다. 그리고 종단의 동요를 막기 위하여 종적을 감추었다. 

하지만 중생구제의 큰 서원을 세웠던 성사 는 1972년 1월1일 상도동 은거에서 정순(正 純)하고 완벽한 밀교종(密敎宗)의 창종을 위 한 정법체득(正法體得)의 백일정진에 들었다. 백일정진이 끝나는 4월 7일밤 백수노인 으로 부터 금관을 받았으며, 이튿날 꿈에 노인으로 부터“대승장엄보왕경(大乘蔣嚴寶王經)과 준 제관음법(准提觀音法)으로 교화하라”는 계시 를 받았다. 성사께서는 이것이 관세음보살께 서“중생의 고난을 없애 고 그들의 바람을 만족시 켜 주라”는 가르침을 널 리 나타내 보이신 것을 활연히 깨닫고 곧바로 교 상확립(敎相確立)에 착수 했다. 그 해 8월 21일 정통밀 교의 마니보주(摩尼寶珠) 를 비장한채 상봉동으로 거주를 옮기면서 은거생 활을 마감했다. 

그동안 성사의 행방을 찾아 동분 서주하던 수많은 스승들 과 교도들이 합심 단결하여 입교개종(入敎開 宗)을 재촉하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1972년 12월 24일 상봉동에서 서울 선교부를 개설하여 개종불사겸 창종식을 거 행하였고, 종명을 불교총지종(佛敎總指宗)으 로 정하여 만천하에 선포하였다. 우리나라 최 초의 정통밀교가 주옥같은 진언과 정확한 인 계(印契), 엄격한 의궤(儀軌)와 사종수법(四 種修法)을 비롯하여 이론적인 조리가 정연한 교상과 사상을 갖추고 세상에 그 모습을 드 러냈다. 종단의 종령으로서 종단을 영도하며, 총지 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불과 창종 8 년만에 국내 유수의 종단반열에 올랐다. 그러 나 1980년 9월8일 종조님은 74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었다. 정통밀교 총지종은 원정대성 사의 가지신력으로 온 누리에 호국불교의 대 비원(大悲願)과 함께 나날이 충실하게 뻗어 나고 있다. 


(출저 : 정통밀교 불교 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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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교도대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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