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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룡사 교도들, 중국의 황산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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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9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6-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단 통신원 소식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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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양재범 필자법명 - 필자소속 벽룡사 필자호칭 - 필자정보 벽룡사 양재범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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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3:39 조회 2,3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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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룡사 교도들, 중국의 황산에 오르다
중국 황산 산행기

5월16일 3박4일로 벽룡사 교도들이 황산 산행을 떠나는 날이다. 모두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처럼 설레는 마음으 로 웃음꽃이 피었다. 벽룡사산악회 황산등정원만과 일기 청정 불공을 하고 우리들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배웅나오신 각자님과 보살님 남겨두고 뒤돌아서는데 문주란의“공항의 이별”가사가 마음한 구석을 스쳐지나간 다. 12시발 중국 남방 항공기로 중국상해를 향해 하늘 높 이 날으기 시작했다. 구름을 발밑에다 두고 눈앞에는 푸 른, 청정하늘만 보였다. 불가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의 최정상 비로자나 궁 전이 바로 여긴가 보다. 우리 중생들은 어떻게 노력해야 부처님의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늘 높이 우주 전체 가 바로 비로자나궁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신비하고 경 의로운 생각이 절로든다. 오후 2시 상해공항에 도착하였 다. 

공황직원의 미숙인지 우리는 까다로운 절차를 받으며 지금까지 즐거운 여행이 조금 짜증으로 변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드시 우리도 참 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대륙에 왔으니 기다림의 아름다움 을 배워보라는 당체법문을 보여주시는 것 같았다. 드디어 검정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현지 가이드를 만나 안내 를 받으며 차에 올랐다. 버스 전면 유리 앞에는 벽룡사푯 말이 달려있었다. 중국대륙에 총지종 벽룡사를 널리 홍보하고 다녀야겠 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했다. 상해는 서울의 강남에 해당이 된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것 세 가지는 다민족 인 구(56민족), 자전거, 가짜란다. 그리고 평생못하고 죽는 것은 중국땅을 다 밟아 보지 못하는 것이요, 평생을 공부 해도 다 익힐 수 없는 복잡한 한자요, 먹을것을 다 먹어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생활상과 거대한 중 국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있는것 같다. 오후3시에 황산을 향해 줄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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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들은 중국관불을 통해 견문을 넓혔다.


도심을 벗어나자 우리나라 시골 같은 집들과 나무들이 평화스럽게 서있었 다. 황산가는 길에 항주에 먼저 들려서 세계3대 송정가무 쇼를 관람하기로 했다. 송정은 송나라의 민속촌으로 옛모 습을 재현하여 보여주고 있었다. 주변은 큰 부처님상과 주변에 약사보살님, 보현보살님, 지장보살님을 모셔 놓고 있었다. 모두 참배드리고 토굴속 부처님을 친견하였다. 우리나라 부처님과 사뭇 다르게 표현되어 있어 중국특색 도 느낄수 있었다. 단체 기념사진을 한두 장 찍고 7시에 송정가무쇼관람을 하였다. 웅장한 스케일의 무대조명과 스토리 가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한국관광 객을 위해 아리랑도 들려 주었다. 외국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라 했던가. 아리랑 가락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대한민국 국민임이 이렇게 가슴벅찰 줄이야. 가무쇼 감동의 여운을 가슴에 안고 황산을 향했다. 30분정도 달려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밤 12시가까이 되 어 숙소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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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을 뒤로하여 선 벽룡사교도들.


5월17일 화요일 둘째날 


5시30분에 일어나 아침정송과 아침식 사를 하고 8시30분에 출발. 

어제는 도로 변에 들판이 많았는데 오늘은 산들이 많아 눈의 피로도 가시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중국은 공산당이 8천명이 며 대부분 군인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8억명의 청년이 15억명의 중국인의 생활을 책임 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군인이 최고 대우를 받으 므로, 지원이 쇄도하고 있다고,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것 같다. 1949년 모택동 문화혁명때 국민들에게 토지를 분배, 임 대해주었다 고한다. 1980년도 천안문 사태때 등소평이 개 혁, 개방정책을 쓰면서 능력에 따라 빈부격차가 벌어졌 다. 2004년도부터 농민에게는 세금이 면제되고, 토지의 개인소유가 인정되어 매매가 성행하였다고 한다. 중국은 군인, 경찰, 보안관 순으로 생활이 안정되고 있다 고 한다. 중국의 5대 명산인 황산은 1979년도 등소평의 지시로 개발이 이루어 졌다. 케이블카는 총연장 6.5km의 상당히 길게 연결되었다. 황산은 날씨가 안좋아 7~80%는 자세히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 러나 오늘은 비로자나부처님의 가피로 날씨가 청 명하여 자세히 전체를 구경할 수 있었다. 비나 구름 때문에 전체를 구경할 수 있는 날이 몇일 안된다며 가이드도 화창한 날씨로 이런 멋 진장관을 보는 것은 정말보기 드물다며 감탄했 다. 

케이블카로 산에 오른후 동해와 북해, 천해 (광명정)의 기암절벽의 웅장한 모습을 골고루 구 경할 수 있었다. 황산은 연화봉이 1,840m로 가장 높고 광명정이 1,806m로 두 번째로 높았다. 연화 봉에서 본 멋진 풍경을 가슴에 가득 담아 가고 싶었다. 자연이 주는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에 가슴이 벅 찼다. 1700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올라갈때 마주치는 많은 한국관광객들로 여기가 황산이 아니라 설악산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정도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500년된 예쁜소나무 한그루와 열 쇠꾸러미가 30미터가 넘겨 이어진 길이었다. 부부나 연인 들이 여기에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버리고 가면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어 많이 찾는 데이트 코스로 가장 많이 기념촬영을 하는 곳 이란다. 즐겁고 행복한 황산등산을 오후2시에 끝내고 내려와 기다리던 점심식사후 약간의 쇼핑과 청나라시대 고문화 거리(우리나라인사동)을 관광했다. 저녁식사후 내일 서호 유람선관광을 위해 항주로 향했다. 밤12시가 되어 항주숙 소에 도착했다. 

4박5일일정을 3박4일에 소화할려니 너무 바쁘고 힘이 들어 피로가 느껴졌지만 황산의 웅장함과 감 동, 즐거움이 아직도 가슴에 꽉차있어 쉽게 잠이 오지 않 는다. 



5월18일 수요일 셋째날 


셋째날 황산을 뒤로하고 항주 서호 유람선 관광을 갔다. 항주 시대는 고층건물들이 많았다. 길 거리와 도로변에는 출근을 위하 여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와, 오 토바이,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10시 서호 도착후 유람선 선착장으로 갔다. 서호는 소동파가 3만명을 동원 하여 땅을 파서 만든 인공호수라 고 한다. 대륙인들의 기질을 엿 볼수 있었다. 유람선으로 한바퀴 돌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 많은 관광객들이 서호물에 모든 근심, 걱정과 번뇌망상을 모두버 리고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물 위에는 유람선을 비롯한 노젓는배, 통통배등 많은 배들이 세월의 시름을 잊은채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주변숲은 울창하여 많은 관광객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수심은 2.5미터라고 한다. 

한시간정도 유람 선관광을 끝내고 상해를 향했다. 16시 상해 도착후 상해 의 중심가인 중경로(서울명동)와 옛거리 쇼핑을 했다. 상 해 고층건물를 보니 중국 제1도시의 위상을 보는듯했다. 저녁식사후 상해 야경을 보기 위해 황포강 유람선관광 을 하였다. 상해의 야경은 휘향찬란했다. 정말 아름다움 의 극치였다. 우리일행은 부부가 3팀, 개인적으로 6명이 왔다. 항상 여행할때는 아내가 곁에 있었는데 이번은 그 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고 싶었던 황산인데 함 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진의 우수 가사에‘맺지못 할 인연일랑 생각을 말자... 잊으려 애를 쓰도 잊지 못할 그대 모습 그려볼때 밤비에 덧없이 흐느끼는 내마음...’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은 어쩔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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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시내에서 기념사진. 전차에 여수 EXPO선전문구가 보인다.


이런 아쉬움 을 달래며 내일이면 고향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잠 을 청했다. 이번 3박 4일간의 중국 황산산행과 여행을 하며 느낀점 은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모습과 상해의 발전한 변모를 보면서 서양문화와, 자본주의 문화를 받아들여 이제 미국과 함께 양대강국으 로 서서히 부각되어가는 모습이 느껴졌다. 이번 여행으로 각자 느낀점들이 많았을 것이다. 입국 후 사원봉고 안에서 산행 후평을 하는 가운데 어 느 각자님의 말씀‘내가 70평생을 잘못살았어’하며 눈물 을 훔치시던 모습을 보면서 한집안의 가장으로써 아들로, 남편으로 자식위해 충실히 살아오신 인생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또 한분의 각자님은 공항까지 보살님 배웅하 러 나오셨다. 물론 여행경비에 썬그라스까지 사주셨다고 한다. 

‘스승님! 요즘이 내생에 제일 행복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사무애의 원융세상이고 이 감동의 순간이야 말로 즉신성불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두 분께 앞으로 더욱 행복함이 항상하시기를 기원해 본다. 이번 산행과 여행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혼자만이 아니라 여러사람들이 함께 어울렸을 때 더 아 름다운 관계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힘들때 손을 잡아주고 따뜻한 격려 한마디가 서 로에게 감로수가 된다는 사실을..... 현지가이드에게 배운 중국어 두마디가 생각난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쩐더신쿨러” 

정말 죄송합니다. “쩐더뚜이부치”. 

끝으로 이번산행을 주선한 산악회 이종호회장님, 업무 상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꼼꼼하게 준비해주신 손강의총 무님부부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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