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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곧 현실, 불교적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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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6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3-03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영화/신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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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김은주(자유기고가)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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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3 07:53 조회 1,6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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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곧 현실, 불교적 세계관
배창호의 <꿈>과 춘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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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감독의 영화 <꿈>은 춘 원의 소설 <꿈>을 원작으로 했습 니다. 둘 다 <삼국유사>의‘조신 이야기’에서 비롯된‘인생무상’ 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이 사상 을 바탕으로 현실이 악몽이라는 현실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현실은 꿈속과 다르지 않다는 불교적 세계관을 제대로 보여주 는 편입니다. 허나 두 장르는 꿈 속 인물의 형상화에서는 많은 차이점을 보 입니다. 소설 속 인물이 욕망을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라면, 영화 속 인물은 욕망을 초월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꿈에서 깨어나는 상황의 차별성을 통해서 뚜렷해 지는데, 이런 차이점을 관찰하면 서 두 장르를 지켜보면 더욱 재 미있습니다. 영화<꿈>(1990)은 보는 이의 감각을 만족시키려는 목적으로 더 많은 자극을 원했습니다. 

그 래서 소설에는 보이지 않는 소 재인 아편중독이라던가, 매춘이 라던가, 나병이라던가, 하는 인 간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소재들을 끌어왔으며, 이런 장치 들을 통해 주인공들을 끝없는 나락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법납이 10년이나 된 승려에게 불사음을 비롯한 불살생 등 가 장 중요한 5계를 파계하게 함은 물론 평범한 사람조차도 접근하 기 어려운 비참하고 비굴한 상 황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절망의 상황에서 주인공 조신은 철저한 파멸이 아닌 승화를 선 택했습니다. 절망의 늪에서 그는 다시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 시 작합니다. 

처음 그가 출발했던 지점까지 올라갔습니다. 아내에게 매춘을 강요하면서 밥을 빌어먹고 아편에 미쳐있던 그가 서서히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아무 것도 욕심 내지 않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었던 처음처럼, 그는 백발의 노인이 돼 다시 부처님 앞에 엎 드립니다. ‘탕자 돌아오다’라는 말에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그리 고 그는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 다. 조신이 꿈에서 깨어나기 전의 처지, 이 처지는 소설과 사뭇 다 른데 이 차이점이 영화와 소설 을 가르는 분기점이 됐습니다. 

영화에서 조신은 참회와 회한 후 한층 성숙된 단계에서 꿈에 서 깨어나게 되는데 이 설정은, 금강경의 세계관에 가까웠습니 다. 금강경에서도 꿈 에서 깨어날 것을 말하는데, 그 방법 은 나와 너를 구별 하지 않을 만큼 성 숙된 단계, 형상을 넘어서는 단계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 단계가 돼야 자신 의 진정한 자아인 불성과 만날 수 있 고, 현실이라고 믿 었던 가짜에서 벗 어날 수 있다고 했 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달례가 떠난 후 조 신은 달례를 찾아 전국을 떠돌다가 달례의 죽음을 전 해 듣습니다. 달례의 죽음이라는 상황은, 조신을 채우고 있던 달 례에 대한 욕망, 즉 세상사에 대 한 욕망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고 봅니다. 욕망이 사라진 후 그 는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면서 수행에 전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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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야 부처님 앞으로 다가오게 되 고, 마침내 꿈에서 깨어나게 되 는 것입니다. 반면에 소설 속 조신이 꿈에 서 깨어나는 상황은 악몽의 절 정에서였습니다. 손바닥을 불 가 까이 접근했다가 불의 뜨거움에 깜짝 놀라서‘앗 뜨거’하는 심정 처럼 꿈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악몽의 가장 절박한 순간에 깨 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한때는 자신의 동료였으나 지 금에 와서는 자신의 삶에 위협 적인 존재가 돼버린 평목이라는 스님을 살 해한 후 살인에 대한 죄의식과 비밀이 들통 나지 않을까, 하는 두 려움 속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죄상이 드러나 게 되고, 사형의 순간 이 다가옵니다. 소설 속 조신은 바로 이 사 형의 순간에 꿈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왜 악몽의 절정에서 꿈에서 깨게 했을까 요? 여기에는 아마도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데, 이 답은 악몽 을 깬 후 악몽을 끔찍 하게 여기고 현실에 안도하는 주인공의 태도에서 찾 을 수가 있습니다. 

꿈꾸기 전 조신은 승려의 신 분으로는 어울리지 않게 달례와 연분을 맺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떼를 스는 철이 덜 든 승려였습 니다. 그런데 꿈에서 깨 후 조신 은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열심 히 수행만하는 승려가 됐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겨나게 됐을 까요? 이런 변화는 조신이 꿈속 경 험을 통해 살얼음 같은 현실의 속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봅 니다. 욕망이 바로 악몽이고, 악 몽이 바로 우리가 처한 현실이 라는 인식입니다. 늘 쫓기는 기 분, 이게 바로 우리고 발 딛고 있는 현실이라는 걸 조신이 깨 닫게 됐던 것입니다. 현실에는 우리가 마음을 둘만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마침내 이해 하게 된 것이지요. 이런 각성은 이 소설의 원작 자인 춘원의 개인 경험과 어울 려 진정성을 갖게 됐습니다. 

<꿈 >의 원작자인 춘원은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불교에 심취해 있 었고, 또한 그의 처지가 소설에 서 근간으로 하고 있는‘인생무 상’을 표현하기에 적당했습니다. 한때는 우리나라 최고의 저술가 로 명성을 날렸지만 해방 후 매 국노로 지탄 받으며 산사에 은 둔해있는 처지에서 이 소설을 썼던 것입니다. 춘원의 <꿈>과 배창호의 <꿈>, 이들 두 장르는 불교사상을 설명 하는 데 있어서는 각기 다른 방 식으로 충실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이 현실의 악몽성을 극적인 방법으로 보여주었다면 영화는 악몽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가르 쳐주었는데, 둘 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악몽이라는, 금강경 의 가르침을 표현하는 데는 탁월 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세상과 인간 을 여호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고 간단하게 표현하고, 또 그 얘 기는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그런 데 불교에서는 현실을 꿈속이라 고 설정하고 있습니다.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우 리 각자의 꿈속이라고 보는 것이 지요. 

즉 내 꿈을 나 자신이 만 드는 것입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일 수 도 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 에게는 황당한 말로 들릴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불 교의 세계관이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꿈>영화를 소설과 비 교해서 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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