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선정은 지와 관이 균형을 이루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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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1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8-03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교리 / 건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중앙교육원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1:04 조회 2,615회본문
이상적인 선정은 지와 관이 균형을 이루어야
지혜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개발해야
선정의 목적은 의식을 멈추고 나 무나 돌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다. 즉 무의식의 생물체와 같이 되어서 는 안된다는 것이다. 의식이라는 것 이 멈추려고 한다고 멈추어지는 것 도 아니지만 극도의 자기 최면 하에서 는 의식이 멈 춘 것처럼 보 일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도 잠시 표면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 손바닥에 못을 박 거나 혀에 철사를 꽂는 등 끔찍한 고통이 가해져도 본인은 잠시 그러 한 상태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 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가 인간 생 활을 개척해 나가는 데에 있어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자 기 몰입, 자기최면의 상태에서 잠시 고통을 잊어버린다고 하여도 그 과 정이 끝나면 엄연한 현실이 다시 눈 앞에 버티고 서 있게 된다.
그러한 현실을 지혜로써 타개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정은 어디까지나 지혜를 개발하여 눈앞의 괴로움은 물론 그 어떤 괴로움도 영원히 멸하 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 다. 주위를 둘러보면, 명상을 하면서 목석과 같이 되는 것을 궁극의 목적 으로 삼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지혜 의 개발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이러한 선정은 마취제를 맞는 것과 크게 차 이가 없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선정은 선정에 들어 있을 동안에는 한없는 안락감을 누리지만 정의 상태를 벗어나면 괴로움이 가 득 찬 현실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 런 식의 선정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지혜의 개발은커녕 오히려 사회 부 적응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때로는 이런 사람들이 불교의 간 판을 내걸고 기괴한 행동으로 불교 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지혜의 개발을 전제하지 않 는 자아도취적인 선정은 문제가 많 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외도들의 선 정은 이런 자기최면적인 황홀 상태 에 드는 것을 명상의 궁극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많다.
멸수상정은 아라한과와 같은 경지
불교에서는 아홉단계의 선정을 설 정 구차제정의 멸진정은 법상의 차 원에서 색계사선의 근본정과 무색계 정의 네 가지 선정을 팔등지(八等 至)라고도 하고 사선팔정(四禪八定) 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더하여 멸진 정(滅盡定)이라는 것이 있다. 팔정에다가 멸진정을 더하여 구차 제정(九次第定)이라고 한다. 멸진정은 자세하게는 멸수상정(滅 受想定)이라고 하는데, 아나함이나 아라한과 같은 뛰어난 성자만이 이 를 수 있는 경지라고 한다. 다른 팔 정은 외도들이나 범부들도 노력에 의하여 이를 수 있지만, 멸진정은 불교의 성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 지이기 때문에 불교특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멸진정은 수(受)나 상(想) 등의 일체의 심작용을 멸한 무념무상에 의하여 심신의 안락에 머무르기 위 하여 들어가는 정이라고 한다. 멸진 정은 일체의 심작용을 멸했기 때문 에 겉으로 보기에는 움직임이 없어 죽은 상태와 같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멸 하실 때에“비구들이여, 제행무상이니 게 으르지 말고 노력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남기시고 색계초선에서 시작 하여 무색계의 사선을 거쳐 마지막 에 멸진정에 머무르시자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줄 알았다. 그러나 천안제일 아나룻다는 부처 님께서는 아직 입멸하신 것이 아니 고 멸진정에 들어가셨다고 알려준 다. 그리고나서 부처님께서는 다시 멸진정에서 나오셔서 비상비비상처 를 거쳐 색계초선까지 이르셨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가 지와 관이 균등 하다는 색계 제사선에서 마침내 열 반하셨다고 경전에서는 말하고 있 다. 이런 것을 보면 멸진정은 심작용 이 멈추어 어떠한 동요도 없지만 미 세한 생명활동은 남아 있는 상태라 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멸진정은 선정의 힘에 의 하여 심신의 활동을 멈춘 채로 언제 까지나 살아있을 수 있다는 믿음에 의하여 시설된 것으로 외도들의 무 상정(無想定)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 로 보여진다. 따라서 멸진정은 단지 법상(法相)의 차원에서 시설된 것으 로 비상비비상처정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일여래 부처님께서 지권인 수 인을 하고 있다.
지와 관이 균형을 이루는 색계 사선이 이상적 선정
아무튼 이처럼 선정의 깊이에 따 라 구차제정의 단계가 있지만 가장 이상적인 선정은 지와 관이 균형을 이루는 색계사선, 그 중에서도 제사 선이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바 람직한 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 서 경전에서도 지와 관을 함께 닦아 야 한다고 하고 있다. 《잡아함경》에 보면 아난다가 코살 라국에 있을 때 여러 상좌비구들에 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만일 비구가 수행하기 좋은 한적 한 장소나 나무 아래, 또는 조용한 방에서 사유하려면 어떤 방법으로 면밀히 사유하여야 합니까?” 그러자 상좌비구들이 이렇게 대답 했다. “아난 존자여, 지와 관으로써 사 유하여야 합니다.” 그러자 아난다가 다시 물었다. “지를 몸에 익을 때까지 닦은 뒤 에는 무엇이 이루어지고, 관을 몸에 익을 때까지 닦은 뒤에는 무엇이 이루 어집니까?” 그러자 다시 상좌비구들이 대답했다. “아난 존자여, 지를 몸에 익을 때 까지 닦으면 결국 관이 이루어지고, 관을 몸에 익을 때까지 닦으면 결국 지가 이루어집니다. 이른바 불제자 는 지와 관을 함께 닦아 모든 해탈 의 경계를 얻습니다.” 아난다가 다른 비구들에게도 똑 같이 물었더니, 모두가 지와 관을 함께 닦아 해탈을 이룬다고 대답했 다.
아난다가 나중에 이 이야기를 부처님께 사뢰었더니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말한 상좌비구들은 모두 다 해탈을 얻은 훌륭한 아라한이라고 칭찬하셨다. 이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를 통하여 관을 닦고 관을 통하 여 지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지와 관을 함께 닦아야 해탈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지와 관이 균형을 이 루지 못한 선정법은 해탈을 얻기 위한 지혜를 개발하는 데에는 적합 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 서 지와 관이 균형을 이루는 색계 사선이 가장 이상적인 선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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