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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사건을소재로한<추격자> 악마에게도 불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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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37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4-06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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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김은주 (자유기고가)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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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6:01 조회 1,7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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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영화에서 불교보기 (9회)

유영철사건을소재로한<추격자> 악마에게도 불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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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게도 불성이 있을까?’ 부유층 노인과 윤락업에 종사하는 여성 등 모두 21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여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유영철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 <추 격자>를 보다가 문득 떠오른 의문입 니다. 물론 이 질문이 우문이라는 건 압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삼 라만상 모든 존재에 불성이 있다고 2천5백 년 전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 다. 부처님께서는‘일체중생 개유불성 (一切衆生皆有佛性)’을 통해서 유영 철도 영화의 주인공도 분명 불성을 갖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이니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를 보면서 부처님의 말씀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이유 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부처님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괴물은 뼛속까지 괴물이고 살인자는 절대로 인간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 고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영화와 부처님의 말씀은 충돌하는 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악마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한다면, 영화는 악마는 영원히 악마일 뿐이 라고, 악마가 착해지는 일 같은 건 일어날 수 없다고, 부처님과 완전히 상반된 의견을 갖고 있기에 영화를 보면서 혼란을 겪은 것입니다. 나홍진감독의 <추격자>(2008)에는 영민(하정우)이라는 살인자가 나옵 니다. 그가 경찰서에서 자백할 때 보 인 모습은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었 습니다. 사람을 13명 죽였다고 자백 할 때 보인 태도는, 마치 무용담을 털어놓는 아이의 모습처럼 자랑스러 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엄청난 일 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털어놓 았습니다. 이 말은 결국 그가 13명의 사람을 죽였지만 그의 엄청난 과거가 그에 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는 뜻 이고, 이는 결국 그가 사람 죽이는 일을 파리 한 마리 때려잡는 것처럼 하찮게 생각한다는 뜻이지요. 그러 니까 영민의 의식 속에는 사람의 목 숨에 대한 존귀함이 없다는 것입니 다.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닌 것이지 요. 영민의 문제는, 사람은 죽이면 안 된다, 는 도덕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런 걸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 다하더라도 인간의 고유한 특성 중의 하나인 자비심만 있어도 결코 이런 일 은 저지르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 에게는 자비심이 없었습니다. 


▶ 자비심은 인간이 갖고 있는 고 귀한 특성 영민이 주로 죽인 사람은 출장 안 마소(보도방) 여종업원들이었습니 다. 영민은 그녀들의 머리에 정을 박 아서 죽였습니다. 사람들이 고통스 러워하는 모습에서, 살려달라고 애 원하는 모습 속에서 만족을 얻은 것 입니다. 상대방의 고통과 두려움을 지켜보면서 연민을 느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처럼 메마르고 삭막 한 영민의 마음은, 엉뚱하게도 상대 의 고통을 통해서 만족을 얻은 것입 니다. 자비심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고귀한 특성인데, 이런 것이 없다는 것은, 그가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정 신은 동물에 더 가깝다는 뜻으로 해 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영화에는 이런 종류의 인면 수심의 인간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 니다. 사이코패스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양들의 침묵>을 필두로 타 란티노 감독의 출세작 <저수지의 개 들>의 미스터 브론드, 코엔형제의 최 고작 <파고>의 유괴범 게이어 등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사람을 죽 였습니다.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 면서 사람을 해하는 미스터 브론드 의 살인 목적은, 살인이 그저 유흥에 가까웠고, 게이어 또한 텔레비전 보 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 게 사람을 죽였습니다. <추격자>의 영민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만족의 도구로서 사람의 목숨이 이용됐던 것입니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그는 만족을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사용했던 것 입니다. 그런데 만족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많은 댓가를 요구하기에, 그 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죽여야 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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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민은 생명존중의 도덕의식이 없어 지금까지 <추격자>의 영민을 통해 서 일반적인 악마의 특성을 살펴보 면, 생명존중이라는 도덕의식이 없 고, 인간의 특성인 자비심이 없는 것 까지는 거의 동물에 유사하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특 성인 아집에 사로잡혀서 오직 본능 적 쾌락을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동물과도 비교가 안 되는 모습 이지요. 적어도 동물은 생존을 위해 서 살생을 하지 쾌락을 위해서 살생 을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악마에 가까운 영민을 불성 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기는 참 어렵 습니다. 그가 개과천선하는 일은 꿈 에서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삼라만상 모 든 존재는 불성을 갖고 있다고 했는 데, 그렇다면 영민에게서 어떻게 불 성을 발견해야 하는 걸까요? 이는 바위에서 나무의 특성을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아주 어렵고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는데,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한다면 영민처럼 취미로 사람을 죽이는, 악마와 다름없는 종류의 인 간들에게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걸 다음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 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 또한 희망을 주는 동시에 절망을 내포하 고 있습니다. 악마에게도 희망이 있 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부처님이 출현해야 가능하기에 또한 편으로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해결책이기 도 합니다. 


▶ 부처님은 앙굴리마라 같은 악 인에게도 깨달음주어 부처님 시대에도 사람을 99명이나 죽인 희대의 살인마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어머니까지 죽이 려했던 이 살인마의 이름은 앙굴리마라입 니다. <추격자>의 영 민이 죽인 사람 21명 이니 그는 영민을 능 가하는 살인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손 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고, 그의 눈빛은 살기로 번득였고, 광 기에 사로잡힌 앙굴리 마라를 피해 사람들은 밖으로 마음 놓고 나 다닐 수가 없을 정도 로 그의 존재는 위협 적이었습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살 인자와 부처님의 만남 은 꽤 극적이었습니 다. 살인자는 99명의 사람을 죽이고 마지막 한 명을 더 죽여 100 명의 사람을 죽임으로써 그가 원하 는 것을 얻으려고 마지막 희생자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잡기 위해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도 천천히 걸어 가고 있는 부처님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멈추 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처님 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 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멈추었다. 그 런데 너는 멈추지를 못하고 있구나.” 이상했습니다. 계속 앞으로 가면서 멈추었다고 하고, 오히려 자신더러 멈추라고 하는 사문이 참으로 괴상 하게 여겨졌습니다. 이어서 부처님 은 앙굴리마라에게 다음 설법을 해 주었습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탐진치를 멈 추었다. 그런데 너는 아직도 탐욕과 살기에 사로잡혀 있다.” 깨달은 이의 이 말은 앙굴리마라 에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즉 자신 의 현 상태를 직시하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참회한 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 음을 따라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살 기에 가득한 그 마음을 쉬게 되니까 죄 또한 사라져버린 것입니다(죄무 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罪無自 性從心起心若滅時罪亦亡). <천수경> 에서는 이런 경지를 참된 참회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앙굴리마라는 진 심으로 참회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부처님과의 만남 을 통해서 앙굴리마라는 순식간에 흑에서 백으로 변한 것이지요. 아무 리 밤이 깊어도 태양이 떠오르면 순 식간에 세상이 환해지는 것처럼 부 처님처럼 최상승의 경지에 오른 존 재는 앙굴리마와 같은 악인조차도 깨달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앙굴리마라 이야기를 통해서 영민도 불성이 있고, 충분히 훌륭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출현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 습니다.



‘앙굴리마라’는 누구인가

희대의 살인마 였지만 부처님 말씀을 듣고 참회하여 가르침을 받어


앙굴리마라는 원래 코살라국 파 세나디왕의 왕실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각가, 어머니 는 만따니였다. 그의 이름은 생명 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아 힘사까였다. 아버지는 아힘사까에 게 학문과 기예를 익히게 하기 위 해 탁실라에 사는 한 바라문 밑으 로 유학을 보냈다. 뛰어난 자질과 성실함으로 아힘사까는 스승과 스 승의 아내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면학에 힘쓰고 있었는데, 이를 질투한 다른 제자들이 앙굴 리마라가 스승 몰래 스승의 아내 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모함을 했 다. 

결국 음모에 넘어간 스승은 극 도의 배신과 분노를 느끼며,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복수하고자 마음 먹었다. 어느 날 스승은 아힘사까 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아힘사까 야,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 은 특별한 가르침이 있는데, 네게 만 가르쳐 주마. 한 번 실천해 보 겠느냐?”“물론입니다. 열심히 실 천하겠습니다.” 스승이 일러준 특별한 가르침이 란, 바로 천명의 남녀를 죽이고 그 로부터 손가락 한 개씩을 모아 목 걸이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다.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말에 순간 망설였으나, 아힘사까는 학업을 완 성시켜 진리를 깨닫고 싶은 마음 에 스승의 말을 믿고 실천하기 위 해 사위성으로 들어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칼을 휘 두르고 손가락을 잘랐다. 

(영화 이야기 본문 참조) 이후, 앙굴리마라는 철저히 계율 을 지키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 라 열심히 수행했다. 그러나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흉적 앙 굴리마라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 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 날 사위성으로 탁발을 나 간 앙굴리마라를 알아 본 사람들 은 그에게 흙덩어리와 몽둥이, 돌 등을 던지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 다. 저 멀리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 어오는 참담한 모습의 앙굴리마라 를 보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앙굴리마라야, 참고 견뎌야 한 다. 네가 지옥에서 수년,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받아야만 할 업의 과보를, 너는 현세에서 받고 있는 것이다.” 앙굴리마라의 진정한 참회는 출 가수행자로서의 삶과 함께 시작되 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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