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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렁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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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93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08-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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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14 04:58 조회 2,3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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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불교설화 (13회)

구렁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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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군 임천면 가장굴이란 마을에 천석꾼 조씨가 살고 있었다. 재산이 많은 데다 늘그막에 기다리던 아들까지 보게 된 조부자 내외는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 스님이 조부자 집 문간에 서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마을 뒤편 무재산 보광사에서 탁발하러 내려온 천수 스님이었다.

『아이구 보광사 스님이시구먼유.』

『예, 그렇습니다.』

천수 스님은 합장한 채. 공손히 인사를 했다.

『시주를 드릴 터이니 염불은 그만하시고 어서 딴 집으로 가 보셔유.』

조부자 아내는 몇 줌 안되는 쌀바가지를 내밀었다. 스님은 메고 있던 바랑에 쌀을 받으면서 말했다.

『염불을 좀 더 해야겠습니다.』

조부자 아내는 내심 거추장스러웠치만 정중하게 인사했다.

『감사하오나 지금 저희집 3대 독자가 안방에서 곤히 낮잠을 자고 있슈. 하도 귀한 아들이라 깰까 조심스러워 부탁드리는 거예유.』

스님은 좀 언짢았지만 조용히 대답을했다.

『허나 소승이 염불을 더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귀한 아드님으로 인해 장차 이 집 안에 일어날 액운을 소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원 별말씀 다하시네유. 애지중지하는 남의 집 아들 보고 액운 운운 하시다니….』

『미리 막지 않으면 평화스런 귀댁의 화가 미칩니다.』

『화라구요?』

『화가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화의 근원이 무르익었습니다.』

『스님, 그렇게 뜸들이지 말고 무슨 곡절인지 속 시원하게 알려주셔유』

아까와는 달리 조부자 아내는 스님에게 간곡히 사정했다.

『소승이 일러주는 대로 하시면 액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밤으로 막걸리 50말을 장만하여 온 동네 사람들을 집 마당에 청해 술 잔치를 베푸십시오. 단, 오는 사람마다 숯 한 포씩을 가져오게 해 마당 가운데 숯불을 지피고 풍악을 올리십시오. 그럼 소승 이만 물러 갑니다.』

조부자 아내는 영효 알 수 없는 말이다 싶으면서도 천수 스님의 말을 묵살 할 수 없었다. 도에 통달해서 용하기로 이름난 보광사 스님이 허튼소리를 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조부자 아내는 스님이 일러준 대로 막걸리 50말을 준비하고 술잔치를 벌였다. 동네 사람들이 가져온 숯불이 벌겋게 달아 올랐을 때였다. 방안에서 아들이「앙앙」목을 놓고 우는 것이 아닌가. 조부자 아내는 풍악이 울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려 놀라서 그러는 줄 알고 어르고 달랬으나 막무가내였다.

오만상을 찡그리며 마구 울어대는 아들을 보자 조부자 아내는 울 화가 치밀었다.

『뭔놈와 액이 온다고 일러주어 남의 귀한 아들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네.』

부인은 천수 스님을 원망했다. 그때였다.

『보살님!』

천수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님이 나타나자 풍악도 멈추고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잠잠해졌다. 스님은 이상하게도 작은 관 하나를 어깨에 메고 왔다.

『아니 스님, 그 관은 왜 들고 오셨슈?』

『예, 우선 그 아이를 이리 내려 놓으세요.』

부인은 안고 있던 아들을 스님 앞에 내려놓았다. 아기는 더욱 소리 높여 울면서 쪼르르 엄마에게 달려가 치맛자락을 잡았다. 순간 천수 스님은 일언반구도 없이 아기를 나꿔채더니 관 속에 집어넣었다. 아기는 숨이 넘어갈 듯 울어댔다:

그러자 부인은 마치 실성한 듯 스님의 장삼을 쥐어 잡아뜯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스님은 태연하게 부인을 떼어놓고 관을 숯불 위에 내동댕이 쳤다.

사태가 이쯤되자 사랑방에 은인자중 앉아 있던 조부자도 뛰어나왔다.

『여보, 칼 가져와. 저 중놈의 배를 갈라 버리게.』

조부자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칼을 찾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위에 던져진 관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관의 형태가 완전히 사그러지자 마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칼을 찾던 조부자도 놀란 눈으로 관이 타버린 숯불더미 위의 광경을 바라보며 경악했다. 응당있어야 할 아들의 시신 대신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뜨거움에 못 견뎌 꿈틀거리고 있지 않은가.

『아니, 우리 아들은 어디로 가고….』 조부자 내외는 천수 스님을 바라보며 외쳤다.

『저게 댁의 아드님입니다.』

구렁이를 가리키며 조용히 말문을 연 천수 스님은 이렇게 물었다.

『혹시 아기를 가질 무렵 구렁이를 죽이 지 않으셨는지요?』

『글세요…. 아, 생각납니다. 토끼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데 풀 속에서 구렁이가 나타나 토끼를 잡아먹으려 하길래 들고 있던 낫으로 찍어 죽인 일이 있어요.』

『낫을 가져와 보시지요.』

조부자가 부러진 낫을 가져오자 천수 스님은 구렁이 뱃속에서 꺼낸 낫끝과 맞추어 보았다. 신통하게도 꼭 들어맞았다. 보고 있던 동네 사람들까지 어안이벙벙했다.

『큰일날 뻔했습니다. 구렁이가 조금만 더 자라면 내외분뿐 아니라 동네분들까지 모두 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이때였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밀어닥치더니 천둥 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빗속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천수야 이놈, 내 철천지 원수를 못 갚게 방해한 널 그냥 두지 않을테다.』

소름이 끼칠 만큼 앙칼진 소리였다.

천수 스님도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래, 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니?』

『여러 사람 앞에서 원수를 갚을 것이다.』

『어림없는 수작 말고 썩 물러가거라.』

순간 구렁이는 독기를 내뿜었다. 스님은 재빨리 합장을 하고 염불로 대항했다. 구렁이의 독기는 스님의 염불 속에 그만 사그러지고 말았다.

『허, 고얀 놈 같으니라고….』

천수 스님은 옷깃을 가다듬으며 유유히 절로 돌아갔다.

- 최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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