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세자빈 강씨 (1611〜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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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5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12-05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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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06:09 조회 2,203회본문
규제와 편견의 한계를 넘어 선 여성들
심양 관 생활에는 소현 세자와 단둘 이 있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세자는 원래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인조가 처음 세 자빈 간택령을 내렸을 때 삼 간에 포함되었던 윤 의립의 딸 윤씨 소녀였다. 세자는 한번 보고 마음 에 들어 했으나 남인이라는 이유로 간택에서 탈 락하고 말았다. 이런 사건이 있은 2년 후 승지 강석기의 딸 강 씨 소녀가 세자빈에 간택된 것이니 세자와 사이 가 원만하기는 쉽지 않았다. 세자빈 강씨의 진가는 심양 관에서 나타났다. 인질생활을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만 보내지 않 았던 강씨를 소현 세자는 깊이 신뢰했다.
세자빈 강씨는 심양 관 생활을 자신과 조선 운명의 전기 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소현 세자가 정치적 일들 에 몰두하는 동안 세자빈 강씨는 심양 관의 경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심양 관에 정착한 조선인 일 행은 192명이었는데 이 대 식구의 식생활을 해결 하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다. 그 당시 심양의 남 탑 거리에는 조선인 포로를 매매하는 노예시장이 있었는데 돈이 있으면 이들 을 구해 낼 수 있었다. 강 빈은 이들을 구할 수 있 는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물품부족에 시달리는 청나라 지배층의 두둑한 지갑을 조선의 질 좋은 물품과 연결시켜서 큰 돈을 벌어들였다. 무역을 통해 경제에 눈을 뜨던 인조19년(1641),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청나라에서 농사짓기를 권유해온 것이다.
심양 관의 신하들은 농사를 짓 게 되면 영원히 조선에 돌아가지 못할 것을 우려 해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러나 강 빈의 생각은 달 랐다. 농사에 익숙하지 못한 유목민족의 땅에서 우수한 농법으로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을 것으 로 판단한 것이다. 청나라는 적지 않은 농토를 제 공해 주었다. 처음에는 한인 노예들과 소를 사서 농사를 지었다. ‘심양 장계’에 따르면 인조 20년 에 거둔 곡식은 3319석이나 됐다. 강 빈은 점차 한인 농군을 노예시장에서 속환한 조선인으로 바꾸 었다.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난 조선인들은 더 열 심히 일 해서 수확물은 더욱 많아졌다. 무역만 하 던 단일 체제에서 생산과 무역을 겸하는 복합체 제로 발전했다. 강 빈은 인질생활을 좌절하는 대신 대규모 영 농과 국제무역을 주도하는 경영가로 변신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선택이었다. 소현 세자가 서 양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개방주의자로 변화한 것과 같은 변화였다. 이제 이들 부부가 귀국해서 조선의 임금과 왕비가 되면 조선은 변화할 것이 다. 그러나 인조는 이런 강 빈과 소현 세자를 의심 했다. 그는 강 빈이 청나라와 짜고 자신을 폐한 후 소현 세자를 세우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인 조 21년 6월 사망한 강 빈의 아버지 강석기의 빈 소에 가는 것 조차 막았다. 인조의 가혹한 조치는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소현 세자 부부를 정적으 로 바라보는 인조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무려 9년간의 인질생활이 끝났을 때 심양 관 에는 곡식 4천7백석이 남아 있었다고 하니 세자 빈 강씨의 경영 수완을 잘 알 수 있었다. 강 빈은 이런 경영수완으로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려고 결 심했으나 세자가 귀국 두 달 만에 독살되면서 엉 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인조는 원손 석철을 폐 한 후 세자의 동생 봉림대군을 후사로 결정했다. 인조의 칼날은 다시 세자빈 강씨를 향했다.
인조 는 안사돈이었던 세자빈 강씨의 어머니와 두 오 빠 강문성과 강문명도 사형시키고 세 아들을 제 주도로 유배 보냈다. 세자빈 강씨의 죽음은 이후 선비들의 끊임없 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문제를 거론했다가 다 치는 사람도 있었다. 송시열 등이 계속 세자빈 강 씨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등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자 숙종 44 (1718)년에 복위되었다. 세자 내외의 꿈과 좌절은 그야말로 조선의 꿈 과 좌절이었다. 조선을 개혁의 나라, 개방의 나라, 실용의 나라 로 만들려던 꿈이 좌절 된 것이다. 세자빈 강씨의 죽음은 시대를 앞서 나갔던 실 용주의 여성 경영자의 죽음이자 그가 만들려던 개발의 나라, 실용의 나라는 꿈으로 막을 내렸다.
자료-여성사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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