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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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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1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4-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인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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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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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4-07 12:51 조회 1,8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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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달라이라마 텐진 갸초(3)

밀교인물사에 달라이라마 14세 성하를 소개하는 것은 인도불교에 밀교가 등장한 이래 세계 인류에 밀교를 가장 많이 알린 인물이 성하이기 때문이다. 성하의 밀교 홍포는 전대 달라이라마 13세인 툽뗀 갸초의 유시에 의해 시작되었다. 툽뗀 갸초의 활동기인 근대 티벳은 청말 군대가 주둔하여 사사건건 간섭하였지만 툽뗀 갸초는 국가체제를 근대화하기 위해 제도와 문물, 문화, 교육 등 다방면에 노력을 기울였고, 밀교를 대중적으로 전개하려는 혁신적 결정도 툽뗀 갸초에 의해 이루어졌다. 툽뗀 갸초는 쫑카빠의 ????보리도차제론????을 널리 선양함으로써 불교의 이론과 수행체계를 통일하여 밀교 홍포의 토대를 닦았다. 제14대 뗀진갸초 성하도 선대의 유시를 계승하면서 쫑카빠의 ????연기찬탄문????, ????보리로차제론????을 석존의 가르침을 계승한 현교의 과목으로 중시하였다. 


달라이라마 14세는 전통적인 사원교육을 모두 마쳤지만 동시에 정치적 지위가 인정되어 1951년 6월 20일 중공과 티벳사이에 이루어졌던 17조항의 협약에 서명하였다. 그 내용은 겉으로는 티벳, 중공사이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중공의 티벳침략의 초석을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중공의 간섭이 노골화되자 1959년 3월 10일 티벳인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봉기를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티벳인들이 사망했다. 이후 달라이라마 14세 성하의 탈출과정은 지난 호에 게재한 내용과 같다.  이후 망명정부의 조직을 현대적으로 개편하고 인도정부의 도움을 받아 인도 각지에 망명티벳인 거주지를 터전 삼아 티벳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교육기관과 사원을 재건하였다.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목숨걸고 탈출한 약 3만 명의 티벳인들은 북인도 다람살라에는 TCV(Tibetan Children’s village)와 도서관을 세웠고, 남인도 후블리에는 겔룩빠의 3대 사원인 간덴사, 데뿡사, 세라사원을 재건하였는데, 티벳고원의 한냉한 고산지대에 살던 티벳인들은 열대정글을 일구는 과정에서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망명 이후 달라이라마 14세 성하는 망명티벳사회를 이끈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로서 티벳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애를 썼고, 그의 주변에는 링린뽀체와 티장린뽀체를 비롯한 도 높은 승려들과 석학들, 특히 강인하고 충직한 티벳인들이 성하를 중심으로 뭉쳤다. 국제사회는 세계 각지에 망명 티벳인들이 정착하도록 도왔고, 1989년 12월 10일 달라이라마 14세는 비폭력 평화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여 받았다. 국제사회의 중공에 대한 비난이 높아지자 중공은 성하에 대한 정치적 비난을 일삼았고, 이에 성하는 2011년 3월 제 52회 티벳봉기를 기념일 달라이라마의 정치적 지위를 포기하는 선언하여 종교와 정치를 명실상부하게 분리하였다. 현대 티벳망명정부는 정치적으로는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헌법으로 ‘망명 티벳인 헌장’에 기초하고, 유엔이 제정한 ‘세계인권선언’을 준수한다고 하였다가, 이후 1991년초 ‘헌법 초안 재작성 위원회’를 열어 새로이 체제를 개편하였다. 총리직은 롭상 쌍계를 이어 뻰빠 체링이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성하는 한국에 대해 대승불교가 성행한 국가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성하는 1967년 일본을 방문할 때 한국도 방문하기 위해 특사를 마곡사에 파견하였으나 일정상 성사되지 못하였다. 성하는 미안한 마음을 한국인에게 전하며 티벳대장경 한질을 동국대학교에 기증하였는데, 이것은  성하가 중공을 탈출할 때 목숨을 걸고 가지고 나온 것으로 현재 한 질은 하버드대학교, 인도에 두 질, 나머지 일본에 일부를 기증되어 보존하고 있다. 당시 성하는 일본에서, “나는 지금 불교가 번성하고 있는 국가들을 순방할 계획인 바 가까운 장래에 한국에도 찾아가 불교학자 및 관계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민이 불타의 가르침에 따라 영원한 번영과 행운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빌며 한국민에 뜨거운 축복을 드리는 인사를 맺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대장경은 가로 62cm 세로 16cm의 닥나무지(저지)에 앞뒤로 새긴 전통 티벳대장경으로 전체 무게가 285kg에 달한다. 1967년 6월 14일, 인도 뭄바이에 위치한 우리나라 영사관에서 달라이 라마 성하가 참석해 기증식을 가졌고, 배편을 이용해 9월 25일 한국 땅에 도착하였다. 이후 기증된 티벳대장경의 후속연구가 미진한 것을 알게된 달라이라마 정부는 20만달러를 출연해 2009년 12월 동국대학교에서 티벳장경연구소를 개소하였고, 이후 티벳대장경역경원으로 개편하였다.   


아무래도 성하의 행보와 관련해 외교, 정치시사에 치우치게 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뗀진갸초 성하가 세상에 알린 밀교과목을 살펴보면 근본적으로 석존의 성도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도불교는 석존이 성불을 위해 넘어야 했던 마장을 사마로 요약했는데 이는 온마, 번뇌마, 사마, 자재천마이다. 온마는 식온과 색온의 관계를 간섭하는 마장인데, 이에 대한 밀교수행은 후기밀교를 중심으로 비밀집회딴뜨라와 관계가 깊다. 아뢰야식으로부터 육신, 사바세계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관조하고 이를 법신, 수용신, 화신의 영역으로 전변하는 수행이 비밀집회딴뜨라를 중심으로 설해져 있다. 번뇌마에 대치하는 밀교수행은 모딴뜨라계의 쨔끄라상와라딴뜨라가 그 중심이 된다. 사마의 경우 ‘죽음의 신인 야마를 살해하는 밀교수행’인 야만따까딴뜨라를, 세계를 창조하고 한정해서 유정을 구속하는 자재천에 대적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정복자라 일컫는 깔랴챠끄라딴뜨라이다. 즉 석존의 성도에 견주어 사마의 대적자로서 대표적인 밀교수행을 비밀집회딴뜨라, 비밀집회딴뜨라야만따까딴뜨라, 깔랴챠끄라딴뜨라의 네 딴뜨라로 요약한 것이다. 망명 이후 달라이라마 14세 성하가 티벳인 승속뿐만 아니라, 세계인을 대상으로 가장 많이 관정식을 수여하고 법문을 설한 밀교가 후기밀교로서 위의 네 밀교이다. 반면 일상의 수행으로서 네 딴뜨라를 요약한 수행은 육자대명왕진언이지만, 지면상 다음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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