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세계에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페이지 정보

호수 281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4-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설법 서브카테고리 이달의 법문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묘원화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전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4-07 12:42 조회 1,680회

본문

여러분은 어떤 세계에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육도윤회는 지금 이 순간 인지되는 상태이며 내가 처한 세계

바른 수행으로 마음에 탐진치 줄이고 현실 겸손히 수용해야


 사람이 마음을 바로잡을 줄 알면 제천(諸天)들이 다 사람을 대신하여 기뻐하리니 마땅히 하심(下心)하여 부드럽고 겸손할 것이며, 마음 가는 대로 따르지 말 것이다. 마음의 행(行)은 못하는 일이 없으니, 도(道)를 얻는 것 또한 마음이다. 마음이 하늘을 만들고, 마음이 사람을 만들고, 귀신도 만들고, 축생도 지옥도 다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불교총전 p.70 13. 반니원경』


 2월 19일부터 시작된 상반기 49일 불공이 막바지입니다. 회향을 한 주 남겨 놓은 지금 마음이 어떠십니까? 편안합니까? 불편합니까? 후련합니까? 들뜹니까? 다양하고 많은 느낌과 생각들이 알아질 겁니다.


 지금 느끼는 이 느낌들에 따라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이름 지어집니다. 죽고 싶을 만큼 몸이 아픈 사람은 지옥 속에 살 것이고, 거식증에 걸린 사람은 음식을 삼킬 수 없는 아귀 세상 속에 있습니다. 소송 중인 사람은 아수라 세계에, 그저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본능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축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현재의 삶이 지극히 만족스럽다면 하늘 세계입니다. 이렇게 여러분 스스로의 분별로 지옥과 극락이 결정됩니다. 육도윤회(六道輪廻)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인지되는 상태 그대로가 내가 처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하늘, 사람, 귀신, 축생과 지옥을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은 찰나에 생겨나고 사라집니다. 지금 미운 사람과 다투고 있다면 상대를 더 괴롭히고 싶고, 싸워서 반드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겁니다. 이런 아수라와 같은 마음이 계속, 평생 존재합니까? 그때 돌배기 손녀가 아장아장 걸어와 고사리손을 내밀고 웃는다면, 아이가 넘어질세라 손을 잡아주고 눈을 맞추게 됩니다. 웃는 아이와 눈을 맞추는 마음은 어떨까요? 반갑고 환희한 마음, 아이를 어여뻐하는 기쁨의 마음일 겁니다. 아수라 세계가 손녀를 만나면서 사라지고 극락세계로 변환됩니다.


 앞의 마음과 뒤에 일어나는 마음은 흐르는 물 가운데 있는 초목과 같아서 각각 제대로 흘러가되 서로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싸우고 싶은 마음은 손녀의 등장으로 이미 떠나갔는데 중생들은 구태여 다시 생각을 불러일으켜 아수라 지옥 속으로 스스로 다시 걸어 들어갑니다. 다시 일으키는 이 생각이 번뇌 망상입니다. 이때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세계에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행복한 손녀와의 극락세계입니까? 미운 사람과 함께하는 아수라 세계입니까?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내 마음에 알아지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모르는데 무엇을 선택한다는 겁니까? 우습게도 그동안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해 왔습니다. 우리는 습관대로, 하던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쌓여 드러나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소멸시키고 싶어 하는 나의 업장(業障)입니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드십니까? 만약 바꾸고 싶다면, 깨달음을 얻고 싶다면, 옴마니반메훔 진언 염송과 함께 지금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인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끊임없이 이어가면 됩니다.

 염송과 알아차림은 금강정좌를 하고 수인을 맺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부터 밤에 잠이 들기 전까지 쉼 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매 순간 우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한 기로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염송(念誦)을 바르게 하는 것이 팔정도의 정념(正念)입니다. 팔정도는 사성제에서 고통을 소멸시키는 실천 방법입니다. 염(念)을 팔리어로 사띠(sati) 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가장 가깝게 옮긴 것이 ‘마음챙김’입니다. 그래서 진언을 염송하면서 행자의 몸과 마음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림 하는 것이 바른 수행(정념)입니다. ‘마음챙김’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금 이 몸에 통증이 느껴지는지, 열감이 느껴지는지, 생각이 일어나는지 등등 마음이 알 수 있는 것들을 바라봅니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의도가 먼저 알아집니다. 그래서 의도를 업이라고 합니다. 의도를 보다 보면 괴로움을 보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거기에 탐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탐욕을 채우지 못하면 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이 몸과 마음을 통해 알아지는 것들이 탐심과 진심으로 인해 애착이 생겨나고 고통이 생겨나는 것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고통인지 모르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바른 수행은 마음에 탐진치가 줄어들게 합니다. 염송 수행을 오래 해도 어렵다는 것은 탐진치가 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르게 진언 염송을 하면 고통이 줄어야 하는데 잘못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수행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세요. 어떤 탐심들이 있는지 보이는 대로 보세요. 당신의 지혜만큼 탐심과 분노가 보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탐진치는 잘 보지만 자신의 삼독은 구체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행은 자신을 바꾸는 행위입니다. 오직 자신만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꾸려고 애쓰는 행위 또한 탐심입니다. 어떻게 해보겠다고 힘을 많이 주면 힘이 듭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불편하고 하기 싫습니다. 이것이 진심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지켜보세요. 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힘쓸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그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이해가 완전해지면 하라고 강제해도 하지 않게 됩니다. 지금의 잘못된 선택은 ‘이것은 괴로움을 주는 선택이구나’하는 경험을 통해 이해를 깊게 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하심(下心)하여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받아들여 보세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수용하세요. 그동안 하던 것과 다르게 해 보세요. 이것이 마음을 바로잡는 최고의 지름길입니다. 극락행 비행기 티켓입니다. 옴마니반메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