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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세운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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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2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1-09-05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인물 / 설화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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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10:38 조회 3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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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불교설화 (59회)

허공에세운계란

묘향산을 한달음에 내려온 한 스님이 있었다. 의발은 남루했지 만 그 위엄은 천하를 압도하는 기 풍을 지녔다. 축지법을 써서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 금강산 장 안사로 향하는 그 스님은 사명대 사. 서산대사와 도술을 겨루기 위 해 가고 있었다. 서산보다 스물 세 살이나 아래인 사명은 자신이 서산대사보다 술수가 아래라느니, 높다느니 하는 소문을 못들은 체 했으나 풍문이 꼬리를 물고 퍼지 자 돌연 실력을 겨뤄 보기로 결심 한 것이었다. 『신출귀몰한 서산대사의 실력 을 모르는 터는 아니나 나의 묘기 로 서산을 궁지에 몰아넣어 세상 을 놀라게 해야지.』 사명의 마음은 다급했다. 서산 대사가 있는 금강산 장안사 골짜 기에 이르자 우거진 숲 사이로 흐 르는 맑은 물소리는 천 년의 적막 을 흔들며 요란했다. 

사명당이 이 계곡을 오를 무렵 서산대사는 굴리던 염주를 멈추 며 상좌를 불렀다. 『이 길로 산을 내려가 묘향산 사명대사를 마중하여라.』 상좌는 깜짝 놀랐다. 『장안사에 사명 스님이 오신다 는 전갈이 없으셨는데요.』 『허허 골짜기를 내려가노라면 냇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이 있느 니라. 바로 거기에 사명대사가 오 시고 있을 거네.』 서산대사는 앞을 훤히 내다보 는 듯 말했다. 『냇물이 거꾸로 흐르다니. 아무 래도 이상한 일이로구나.』 상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절 을 나섰다. 『정말 사명대사가 오시는 걸까. 아니면 서산대사가 나를 시험하 려 함인가.』 평소에 없던 분부라 자기 나름 대로 생각을 굴리면서 골짜기를 향해 내려가던 상좌는 우뚝 걸음 을 멈췄다. 분명 냇물이 거슬러 흐르는 것이 아닌가. 

고개를 들어 앞을 살피니 과연 저만치 웬 스님 이 오고 있었다. 상좌는 그 스님 앞에 공손히 합장배례했다. 『스님, 스님께서 사명대사이시 온지요?』 『그렇소마는….』 『먼 길에 오시느라 고생이 많 으셨겠습니다. 저는 서산대사의 분부 받고 대사님을 마중나온 장 안사 상좌이옵니다.』 『아니… 그래….』 사명당은 내심 놀랬다. 「서산대사가 어떻게 알고 마중 까지 내보냈을까.」 마치 덜미를 잡힌 듯 아찔함을 느꼈다. 상좌는 앞장서서 걸었다. 소문 만 듣던 사명대사를 직접 모시게 되니 누구에겐가 자랑이라도 하 고픈 마음이었다. 이윽고 장안사에 이르렀다. 그 때 법당문이 열렸다. 서산대사가 막 법당을 나서려는 찰나였다. 사 명당은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공 중에 날아가던 참새 한 마리를 잡 아 쥐곤 첫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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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님, 내 손아귀에 있는 이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사명의 손 안에 있는 새인지라 새가 죽고 사는 것은 사명당에게 달려 있었다. 이쪽도 저쪽도 택하기 어려운 그 질문 앞에 서산은 의연히 입을 열었다. 『허허 사명대사, 이 몸의 발이 지금 한 발은 법당 안에 있고, 한 발은 법당 밖에 나가 있는데 이 몸이 밖으로 나가겠습니까, 안으 로 들겠습니까?』 이 또한 난처한 질문이었다. 안 으로 든다고 하면 한 발을 마저 밖으로 내놓을 것이요, 밖으로 나 갈 것이라 답하면 안으로 들 것이 니. 잠시 생각에 잠긴 사명당은 멀리서 객이 오는데 밖으로 나오 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판단했다. 『그야 밖으로 나오시겠지요.』 『과연 그렇소. 사명당이 그 먼 길을 한달음에 오셨는데 어찌 문 밖에 나가 영접치 않겠소.』 모든 답이 끝난 듯 서산은 사 명에게 어서 올라올 것을 권했다. 그러나 사명은 손에 참새를 쥐고 있는 터라 답을 듣고 싶었다. 『고맙소이다. 대사님, 이 참새 는 어찌 되겠습니까?』 『불도를 닦는 분이 어찌 살생 을 하겠습니까?』 서산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당대 고승의 만남은 이렇게 시 작됐다. 사명은 자기가 오게된 사 유를 말하고 이번엔 도술로 겨루 자고 제안했다. 

사명은 지고 온 봇짐에서 바늘 이 가득 담긴 그릇을 하나 꺼냈 다. 잠시 그릇 속의 바늘을 응시했 다. 이게 웬일인가. 바늘은 먹음 직한 국수로 변했다. 사명은 맛있게 먹으면서 서산 에게도 권했다. 이를 지켜보던 서 산 역시 국수를 먹었다. 그리곤 사명과는 달리 입에서 바늘을 뱉 아 놓았다. 대단한 신술이었다. 사명은 다시 계란을 꺼내더니 한 줄로 곧게 쌓아 올렸다. 그러 나 서산은 그 반대로 공중에서 계 란을 쌓아 내려왔다. 사명당은 초 조해졌다. 『아래서 위로 쌓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사명은 열세를 느꼈으나 한 번 더 겨루기로 했다. 사명당은 하늘 을 우러렀다. 구름 한 점 없던 장 안사 상공에 갑자기 먹장구름이 뒤덮이더니 천지를 흔드는 천둥 번개와 함께 굵은 빗줄기가 쏟아 져 내렸다. 순식간에 땅 위의 모든 것을 삼킬 듯한 무서운 위세였다. 『사명대사, 과연 훌륭한 신술이 오.』 이쯤 되면 서산대사도 굴복할 것 같아 사명은 내심 기뻤다. 그 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헛기침 을 했다. 

『뭘요, 대사께선 아마 이 비를 멈추게 할 뿐 아니라 하늘로 되돌 리시겠지요.』 『허어, 사명대사님이 미리 알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니, 그렇다면….』 사명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서 산은 좀 전의 사명처럼 합장한 채 하늘을 우러렀다. 숨막히는 순간 이었다. 줄기차게 퍼붓던 비가 뚝 그치면서 빗방울은 하늘로 거슬 러 올라갔다. 한참을 오르던 비는 눈부실 만큼 아름다운 새로 변하 여 나르는 것이었다. 청명한 천지 엔 새의 노래와 환희로 가득찼다. 가슴 조이던 사명은 이 변화무 쌍한 광경에 자기의 모자람을 깨 달았다. 

『대사님! 진작 알아뵙지 못했 습니다. 과연 만천하의 스승이옵 니다. 부끄러운 몸이나 저를 제자 로 삼아 법도에 이르도록 가르침 을 내려 주옵소서.』 사명당은 눈물로써 제자되기를 간청했다. 서산대사도 마음이 흡 족했다. 『진정 그러하시다면 나 또한 즐겁지 않을 수 없소. 

그대같이 슬기로운 제자를 맞게 되니 더없 이 기쁘구려.』 그들은 합장한 채 오래도록 부 처님 앞에 서 있었다. 

사명은 그 날부터 서산의 수제자로 용맹정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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