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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세암에 관한 실화 〈오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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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7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02-02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영화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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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김은주 자유기고가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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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7 03:39 조회 2,4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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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영화에서 불교보기 (20회)

설악산 오세암에 관한 실화 〈오세암〉
깊은 산중에 고립된 소년의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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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살때 우리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절이 있었습니다. 절은 아파트와 마당을 함께 사용한다 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또한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사찰에서 만들어놓은 불상이 있어서 집으로 오가는 길엔 언제나 그 불상을 지나쳐야 했습니다. 우리 집 작은 애는 불상 앞을 지나갈 때는 언제나 합장을 했습니다. 신심이 돈독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불교 신자이니 이 정도는 실천하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애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자전거를 잃어버렸습니다. 당장 큰일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나 다름없는 자전거를 잃어버렸으니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았겠지요. 아주 절박한 그 순간 작은 애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차장에 서있는 불상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애는 불상앞에서 제발 자전거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을 때 갑서기 집에서 가까운 학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애는 학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전거가 학원 앞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작은 애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세워놓은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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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해서 자전거를 찾은 작은 애는 그 부처님을 매우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더욱 공손한 태도로 합장을 했고, 불상 앞에 놓인 시들은 꽃에는 물도 주고 화병도 관리했습니다. 그러다 또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카메라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번은 자전거보다 더 심각했습니다. 자전거는 자기 물건이지만 카메라는 엄마 물건으로 그걸 잃어버렸을 때 혼날 걸 생각하니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애는 다시 부처님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카메라를 찾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이번에도 기도가 끝나자 기적적으로 카메라를 찾았습니다.

작은 애가 기도에 소질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시험을 망친 작은 애에게 다시 한 번 기도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랬더니 날아온 답이 놀라웠습니다. 기도의 본질을 아는 답인데, 어린 애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자전거를 찾을 때나 카메라를 찾을 때는 너무 절박했기 때문에 마음이 딱 한 곳에 모아졌는데 공부를 잘 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집중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공부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자전거 찾을 때만큼 간절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도가 성의껏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기노는 절박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습니다. 이런 마음은 배우고 익혀서 아는 마음이 아니라 천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천성은 스스로 완벽하다는 것이지요. 어른들은 세속의 때가 앉음으로 점점 천성과 멀어지는 데 반해 아이들은 허공처럼 순수하기 때문에 천성이 남아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천성이바로 불성이고, 부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아이들이 갖고 있는 부처의 마음을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부처의 마음을 갖고 있는 이런 아이들을 천진불이라고 합니다. 천진불과 관련한 이야기는 설악산 오세암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강원도 설악산 오세암은 원래 관음암이라는 절이었는데, 이 절에서 다섯 살 소년이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생명을구한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오세암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오세암에서 일어난 천진불 실화는 유명한 동화작가 정채봉 씨에 의해 〈오세암〉이라는 동화로 재창조됐습니다. 신선하면서도 참신한 소재이다 보니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재창조됐습니다. 박철수 감독은 - 현실참여적인〈오세암〉을 만들었고, 성백엽 감독은 애니메이션〈오세암〉을 만들었습니다. 김혜수가 나오는 박철수 감독의 오세암도 좋지만 여기서는 성백엽 감독의 오세암을 기본 텍스트로 했습니다. 천진불이 주인공이므로 아이들의 장르인 만화영화가 소재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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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엽 김독의〈오세암〉은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경쟁부문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상을 계기로 영화는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관심 받는 애니메이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관심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공감 받을만한 소재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가 유행을 타지 않는것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

고아 남매가 있습니다. 길손이라는 다섯 살 먹은 소년과 앞이 안 보이는 감이라는 소녀입니다. 이들은 엄마를 찾으러 길을 떠납니다. 길손이는 엄마 얼굴도 모르지만 늘 엄마를 그리워해서 무작정 엄마를 찾아 떠났습니다. 그러다 산길에서 두 스님을 만났습니다. 큰 절에 사는 스님들인데 이들은 불쌍한 두 남매를 절로 데려갔습니다. 절에서 감이는 빨래도 하고 부엌일도 거드는데, 개구쟁이 소년 길손이는 말썽만 피웠습니다. 엄마를 따라 올라온 소년들과 싸우거나 법당에 물을 쏟거나 하면서 말썽을 피웠습니다. 그래서 고아 남매를 절로 데려온 스님은 다른 대중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 설악산 더 깊은 골짜기에 있는 오세암으로 떠나면서 길손이를 데려갈 생각을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마음의 눈을 뜨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간 길손이는 스님과 단둘이 오세암에서 살게 됐습니다. 스님은 그냥 길손이를 데려갈 심산으로 한 말이었는데, 말이 씨가 된다고 영화 말미에 길손이는 마음의 눈을 뜨게 됩니다. 부처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수행해도 잘 안 되는 일을 다섯 살짜리 소년이 해낸 것입니다. 소년의 순수함이 부처의 마음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절로 올라온 후 스님은 매일 참선만 하고, 누나도 없는 산속에서 길손이는 많이 심심했습니다. 그래서 숲속을 뛰어다니면서 토끼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다람쥐 잡으려고 나무 위도 올라가고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스님이 양식거리를 구해 와야 한다면서 장으로 떠났습니다. 솥에는 주먹밥을 만둘어 두었고 혹시나 무서우면 ’관세음보살’하면 관세음보살님이 지켜주니 마음을 다해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라고 시키고 떠났습니다.

스님은 산 아래로 내려가고 길손이만 절에 남게 됐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절에서 내려가자 갑자기 산을 뒤덮어버릴 정도의 폭설이 내리고 스님은 산을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산에 혼자 두고 온 길손이가 걱정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구조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상식적인 차원으로 보면 이제 길손이는 죽을 운명입니다. 고립된 절에서 어린 소년이 살아날 방법은 없으니까요

한편 홀로 남은 길손이는 이제나저제나 스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무서워지거나 외로워지면 관세음보살님 탱화 앞으로 바싹 붙어 앉았습니다. 누나에게 하던 것처럼 관세음보살님에게 이 말 저 말을 했습니다. “나는 길손이에요” 라고 자기소개도 하고, “엄마를 만나게 해 주세요” “누나가 앞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소원도 말했습니다. 스님이 떠나면서 마음을 다해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 무서움에서 구해주고 소원도 들어준다고 했기에, 어린 자식이 엄마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길손이는 부처님에게 의지했습니다.

우리 집 작은 애가 자전거를 찾기 위해 부처님에게 간절하게 매달렸던 것처럼 길손이는 부처님에게 자기 목숨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눈이 녹고 봄이 왔을 때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습니다. 오랜 시간 산중에 고립됐던 길손이가 살아남은 것입니다. 살아있으리라고는 아무도 기대 못했는데 길손이는 살아있었습니다. 부처님이 먹을 것도 주고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고 말하는 길손이는 여전히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오세암〉은 결말에서 설화와 다른 길을 걷습니다. 중생과 부처를 수직적 관계로 설정하는 영험담이 불교의 근본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미흡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불교의 본질인 ‘깨달음’을 강조하기 위해 성불의 과정을 표현하려고 애썼습니다.

누나와 스님이 도착했을 때 분명 살아있었던 소년이 돌연 죽습니다. 그때 백의관음이 나타나서 이제 소년의 마음은 부처의 마음이라고 말하고, 소년이 성불했음을 알립니다. 성불과 함께 소년은 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아마도 육신의 죽음을 통해 중생은 소멸하고 부처의 길허 들어섰음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라고 이해했습니다. 여하튼 영화는 영험담에서 출발했지만 불교의 본질인 성불에 역점을 뒀던 것 같습니다.

한 점 먹물도 튀지 않은 길손이의 마음은 허공과 같고, 이는 또한 부처의 마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의심이 없는 순수한 그 마음이야말로 부처의 마음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소년은 부처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영화는 다섯 살 어린 소년을 통해 성불의 과정을 보여주는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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