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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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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3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11-10-04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인물/설화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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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3 10:28 조회 3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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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불교설화 (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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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은 나이가 무려 오백 살이나 되었다. 법당 의 기둥들은 나이만큼이나 주름살이 골 져 있 었고, 옹이가 박혔던 곳들은 먼저 썩어 없어져 목탁처럼 구멍이 나 있었다. 봄이 되면 그 구멍 에 박새들이 새끼를 쳐 기르기도 하였다.

스님 한 분이 조용해야 할 법당이 시끄럽다 고 그 구멍에 황토를 발라 막은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미 박새는 구멍을 터주는 아이의 도 움을 받아 새끼를 치곤하였다. 물론 아이가 구 멍 속의 황토를 꺼낼 때는 스님들 몰래 달빛 밝 은 밤에 하였다. 스님들이 공부하는 방도 낡아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깨진 기왓장 사이로 들 풀들이 한 뼘씩이나 자라나서 앙증한 꽃을 피 우고 있었다. 기왓장 틈새로 노란 민들레꽃이 여기저기서 피고, 어떤 때는 보랏빛 엉겅퀴꽃 이 피었다. 요즘은 달맞이꽃이 벙그는 철인데, 낮에 하품을 하다가 아이에게 들킨 적도 있었 다. 스님의 낡은 방 천장에서는 시도 때도 없 이 쥐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찍, 찌익 찌이익 찍."

곳간의 나무는 긁지 않고 아무런 소득도 없 는 스님들 방 천장에서 달그락거리는 것이었 다. 스님들 식사시간이 되면 쥐들은 더욱 극 성을 부렸다. 바리때에 담겨 오는 산나물과 쑥 국, 송이버섯 냄새가 천장에 가득 퍼지는 모양 이었다.

스님들은 절대로 쥐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 다. 쥐들이 몰래 훔쳐 먹는 행동은 쥐들의 업이 라고 하였다. 숙제를 하듯 스스로 그 ’훔쳐 먹 는 업’을 다 지워야만'좋은 몸으로 환생한다고 믿었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쥐를 도와줄 수 없 다는 것이었다.

’배가 고파 저럴 거야.'

아이는 배가 홀쭉할 것 같은 쥐들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스님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는 못했다. 언젠가 속마음을 말했다 가 놀림만 당했던 것이다.

"너 참 바보구나. 쥐가 불쌍하다구? 틈만 생기면 우리들 참선 공부를 망쳐놓는 녀석인 데.”

"뜨락에서 공부하면 되잖아요."

"쥐들에게 방을 내주란 말이구나."

"네 공부하는 시간만요."

"비가오면어떡허구?"

"그땐 놀면 되지요."

"바보가 따로 없구나. 허허허."

스님들이 쥐를 미워하는 이유는 이러했다. 공부에 깊이 들려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쥐들이 방해를 놓곤 하기 때 문이었다.

스님들은 아이에게 부엌일도 시키지 않았다. 불을 만지는 일이 아주 위험해서였다. 언젠가 스 님들이 화들짝 놀란 일도 있었다. 아이에게 아궁 이에 불을 지피라고 했는데, 장작을 너무 많이 넣어 스님 방의 장판을 누렇게 태웠던 것이다. 물론 그날 스님들은 방 구들이 설설 끓어 잠을 한숨도 못 잤었고. 아이에게는 정랑  청소도 시키지 않았다. 가장 깨끗해야 할 정랑이 기 때문이 었다. 그 절의 정랑은 전망대나 다름없 었다. 그래서 정랑은 문을 달지 않았다. 앉아 끙 끙 일을 보면서 시각에 따라 변하는 앞산의 경치 를 보기 위해서였다.

앞산은 아침 햇살에 세수를 하고, 비가 내린 후에는 홑이불 같은 구름자락을 둘렀다. 저녁 에는 또 수만 마리의 잠자리들이 날갯짓하여 허공에 금가루를 뿌리는 듯한 풍경을 만들었 다. 그러다가도 산그늘이 접혀들면 허공은 점 하나 없이 텅 비었다. 아이는 하루하루가 즐거 웠다. 하루 종일 미소를 머금고 다녔다. 아이에 게 아직 한번도 꾸중을 하지 않은 분도 있었다. 바로 금강 스님이 었다.

금강 스님은 묵언 중이었다. 묵언이란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수행 방법이었다. 금강스 님은 묵언에 들어간 지 벌써 10년째라고 했다. 스님믈은 모두 다 금강 스님을 절의 보배처럼 생각했다.

"큰스님이 되고 말 거야.’’

그러나 아이는 금강 스님을 보면 목구멍에 무엇이 걸린 듯 답답했다. 묵언 수행을 하는 것 이 아니라 이제는 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말 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이는 맛 있게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평 소의 습관대로 다람쥐처럼 법당 옆에 있는 느 티나무 위로 올라갔다. 이제는 다람쥐도 아이 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이가 늘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다람쥐와 나 무위에서 장난을 쳤다. 그런데 아이는 다람쥐 흉내를 내다가 나뭇가지에서 미끄러지고 말았 다. 그때 아이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무에서 떨어졌으니까 죽어야지.’

아이는 곧 죽은 시늉을 하였다. 그러자 스님 들이 큰 경사가 난 것처럼 다 모여들었다. 아이 는 또 생각했다.

'죽었으니까 이제부터는 숨을 쉬지 말아야 지.' -

아이는 숨을 쉬지 않으려다가 얼굴이 발개지 곤 하였다. 스님들은 금세 눈치를 챘다. 웃음 을 참느라고 장삼 속에 감추어진 배꼽을 쥐기 도 하였다. 스님들은 아이를 곯려주고 싶어 눈 을 찡긋거리며 두리번댔다.

이윽고 젊은 스님이 말했다.

"아이가 죽었으니 묻어줍시다."

그 스님의 말이 떨어지자 건장한 스님들이 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이는 여전히 죽은 체 하였다. 눈을 감고 있어도 아이는 어디로 가 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방울새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뭇잎 빛깔의 맑은 개울물 이 흘러가는 소리도 들렸다. 절 앞에 있는 이 끼긴 돌다리를 건너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이 끼 냄새가 꽃향기만큼이나 향기로웠다. 돌다 리를 건너서 젊은 스님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아이를 어디에다 묻을까?"

"글세."

대답을 하는 스님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눈을 가만히 떠보았다. 저만치 금강 스님의 모 습도 아른거렸다. 스님들이 계속 망설이자 아 이는 참을 수 없었다.

"죽은 저를 저어기 큰스님들 부도 옆에 묻 어주세요."

아이는 눈을 감은 채 말하였다.

스님들은 잠시 킥킥 웃다가 말하였다.

"죽은 사람도 말을 하네.’’

"오죽 답답하면 말하겠어요."

"그래, 네 말이 옳다!"

스님들외 행동을 지켜보며 답답해하던 금강 스님이 입을 열고 말았다. 말문이 터진 금강 스 님 눈에는 아이가 관세음보살로 보였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금강 스님은 오로지 큰스님이 되겠다고 입 을 다물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처 럼 죽은 체 하다가도 길을 모르고 방황하는 사 람이 있으면 입을 여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깨 달았다.

"오! 너야말로 나의 스승이구나."

그제야 젊은 스님들이 눈을 휘둥그레 치떴 다. 금강.스님에게 걸었던 큰스님 출현의 기 대가 바보 아이로 인하여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런데도 금강 스님은 아이 앞에 무릎을 꿇 고서 합장한 채 일어설 줄 몰랐다. 잃어버렸던 참말을 되찾게 해준 아이가 고마웠다. 큰스님 이 되겠다고 스스로 사슬에 묶여 있던 자신을 거듭나게 해준 아이가 스승 같을 뿐이었다.

아이는 젊은 스님들 손에서 빠져나와 공양간 으로 달려갔다. 자신을 나뭇가지에서 떨어지 게 한 다람쥐의 점심을 얻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아이는 신발 한 짝을 다람쥐 밥을 주는 떡 판처럼 생긴 바윗돌 위에서 찾았다.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아 이가 신발을 흘린 곳은 느티나무 그늘이었던 것이다. 다람쥐가 물어다 놓았을까. 본 사람이 없으므로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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