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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스승의 사명을 되새기며 불퇴전의 각오로 수행과 교화에 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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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50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05-03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춘계강공 특집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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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효강 필자소속 - 필자호칭 종령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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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6 09:53 조회 2,34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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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사명을 되새기며 불퇴전의 각오로 수행과 교화에 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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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스승님 반갑습니다. 매번 강공에서 종령으로 정신교육을 하다보면, 매번 딱딱한 말들만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법통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법통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없이 일어나는 조금의 불편한 점은 여러분들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번에 여러분들이 대만의 불교를 견학하고 왔습니다. 다녀오신 몇 분들을 만나 보았는데, 가보니 정말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더라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종단이 큰 재정적인 부담을 감수하고 감행한 이번 연수는 단순한 해외 나들이가 아니라 진정한 연수였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원하여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대만 역시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대승불교권에 속합니다. 요즈음 대만불교는 눈 밝은 승직자들의 인도로 현대화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교세가 날로 발전하여 특히 기독교가 범접할 수 없는 위치를 이루었다 합니다. 제가 예전에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중일 불교대회의 우리나라 대표로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느낀 바로는 제일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는 곳이 중국이라 생각했습니다. 일본은 전 국민의 90% 이상이 불자라 할 정도로 가히 국교라 할 만한 곳인데, 승직자들의 계율이 바로 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불교라는 종교는 철저히 계율을 지키는 것이 성도하는 것이다.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성도 할 수는 없습니다. 

흔히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칭합니다. 그만큼 예의를 숭상하는 민족이었 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 가정으로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예절이나 공중도덕은 날로 땅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웃 나라들보다도 못한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예를 들면 길을가다 서로 일면식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눈만 마주치면 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안하는 개인주의가 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대만연수를 보고 오신 것 중에서 특히 복지부분에 많은 투지와 노력을 한 점이 눈에 뜁니다. 이웃 종교인 기독교 얘기를 좀 하자면, 우리나라 관공서에서 짖는 사회복지기관의 90%가 기독교 계열에서 운영한다 합니다.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인 사성법과 자비희사만이라도 잘 실천했다면 불교사회복지의 발전은 더 앞 당겨졌을 겁니다. 또 한가지 대만 예기를 덧붙이자면 스님들의 철저한 계행과 사원의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울력을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 적이었습니다. 

특히 불광사의 남평별원의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30대 비구니 스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승직자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손님을 맞을 때 사원의 인상을 좌우하는 작은 것부터 직접 챙기고, 소임자들이 예의바르고, 검소한 모습으로 신도나 손님들을 대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 불교의 현실과 많이 비교가 됩니다. 이번 연수를 다녀와 배우고, 체득한 것을 잘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종령의 소임을 맡아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종단과 우리 불교가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수행자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것에 있다고 믿습니다. 종조이신 원정 대성사께서는 수행이라는 것은 장난이나 재미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하시며, 백일 불공을 예사로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승직자들이 과연 그 어른처럼 내 자신이 수행 정진에 열심인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종단의 승패가 바로 우리의 수행력에 달려있습니다. 절 잘 짖고 뭐 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수행력의 증장이 앞서야 합니다. 종단의 초창기에 말씀 들어보면 승단의 움직임이 정말로 일사불란했습니다. 특히 강공 중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모두가 전심전력을 다하여, 불공과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그때 강공 후에는  지혜가 생기는 방편도 절로 우러날 정도였습니다. 오늘은 종조님의 법설집에 남기신 스승의 사명을 오늘 되새기면서 정시교육을 하려합니다. 오늘 새로운 각오로 우리는 스승으로서 사명을 다시 새기고자, 종조법설집 『스승의 사명』을 같이  낭독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가슴 깊이새기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몇 가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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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종조님 말씀의 처음이 스승은 세간고락에 초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출가 스승의 가장 기본적이고 초보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나 이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자세가 바로 스승을 바로 세우는 근간입니다. 스승은 이것 만 바로 서면 교도들은 절로 따라온다 했습니다.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둘째로, 근간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희사법’을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얘기들이 들립니다. 우리 종법에 의하면 스승님들은 이공을 받으면 백이로 희사를 하고, 교무들은 십일로 희사를 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때에 따라 차시, 정시도 합니다. 아주 오래전 얘기를 한번 할까 합니다. 제가 밀교에 입교했을 무렵입니다.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 진각종을 이끌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사업을 하던 한 각자님이 여러 사정을 하소연하자, 희사법에 대해 설명을 하셨습니다. “각자님 십일법을 한번 해보세요. 각자님 사업의  전 매상의 100분의1을 떼 희사를 하면 십일법이 됩니다. 만약 농사를 짖는다면 가을에 전  수확의 현금화해서 100분의 5를 하시면 됩니다.” 이후 각자님에 희사법을 잘 시행하자 원하던 서원들이 모두 이루어지더라는 겁니다. 종조님께서는 희사금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 가정의 복을 심는 것 이라며 강조 하셨습니다. 중생으로 탐심이 일어나기에 이 십일법의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각 사원에서 교화에 전념하시는 스승님들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희사법을 전해야 합니다. 모두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종조님 말씀 중에 ‘대승보살행’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대승보살행은 소승의 보살행이 아닙니다. 자신만이 깨치는 것이 아니라, 중생 구제를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이는 관념적인 실천이 아니라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실천적 법입니다. 종조 법설집에도 자주 인용하시는 말씀이지만 ‘여름의 비바람과 땡볕을 이겨내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 스승들은 수행의 어려움을 견디어내고, 그를 통해 증득한 법연을 소재로 중생구제에 임해야 합니다. 넷째로, 우리승단의 위계질서를 바로 하여야 합니다. 

스승은 교도들의 거울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스승과 선배들을 잘 따르고, 존경으로 공경하면 교도들은 자연히 스승의 모습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 초기 승단에서부터 지켜오던 가장 기본적인 계율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잘 돌아보아 반성하는 자리이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요즘 우리 사회는 민주화의 세상을 맞았습니다. 얼마 전 총선에 투표하러 갔더니, 우리나라에 정당이 참 많더군요. 그 만큼 사람들의 의견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다는 것이겠지요. 종조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법보다 부처님법이 앞선다 하셨습니다. 

불법을 증득하는 어떠한 경우에도 걸림 없는 대 자유를 증득한다 했습니다. 이것이 가장 자유로운 민주주의 의 법입니다. 불법을 바탕으로 계율을 세우고 스승의 사명을 다한다면, 우리 종단의 앞날은 더욱 밝을 것입니다. 오늘은 불교 총지종을 세우신 원정 대성사께서 우리에게 교시하신  『스승의 사명』을 되새기고, 총지종의 앞날을 다시 여는 날입니다. 아무쪼록 불퇴전의 각오로 수행과 교화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비로자나 부처님 전 서원합니다. 


총기 41년 4월 24일 

불교 총지종 종령 효강 합장



종조법설집 P.3 『스승의 사명』

스승은 매일 교도와 접촉하는 교화의 제일선에서 활동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그 사명이 중차대하고 따라서 종단의 성쇠를 좌우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스승은 세간고락에 초연하여야하며 먼저 자기의 인생관이 확립되고 그러한 지표로서 생활 하는데 그 스승의 인격이 완성되고 따라서 이해의 영욕에도 굴복하거나 동요되지 않는 지조 있고 정의에 투철한 모범석인 스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모든 교도들은 그 스승을 신뢰하고 존경함으로서 복전이 될 것이요, 일반이 흠모하여 교화는 날마다 흥왕하고 부처님과 일체중생이 다 가호할 것이다. 

세속 사람들이라도 수양 있는 지성인이라면 인생관이 서있고 생의 가치를 확립코자 하거늘 하물며 중생을 제도하는 성직자로서 이러한 주관이 없이 어찌 남을 제도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봉사하고 인류평화를 위한 지도자로 자처할 수 있겠는가. 대승보살행은 결코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생생하게 인생의 고락을 겪으면서 그것을 소재로 인격화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수행이기 때문에 오상성신의 불퇴전의 각오로서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청렴정직하고 스승을 잘 받들어 행하면 다른 자격이 여간 부족하더라도 교화가 잘 될 것이다. 

종단은 민주주의나 어떠한 법의 조문보다도 부처님이 교시한 법과 계율에 입각하여 사제도를 확립하는데 그 흥왕함을 기할 수가 있다. 헌신적인 책임과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하고 남의 과실을 지적하기 이전에 먼저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하여 화합과 단결을 목표로 해야 할 것이다. 내 자신이 스승과 윗사람을 경멸하고 대항하면서 어찌 나의 아랫사람과 교도들이 나의 뜻에 순종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인과법을 무시하는 사견이니 내가 스승을 경만한 것이 곧 반영되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할 것이다. 

국가, 사회 또는 한 교단이 흥왕하려면 그 지도자 중에 훌륭한 인물이 많이 있어야하는 것은 고금이 일반이므로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생은 무상하나 법은 멸하지 아니하고, 현실은 전변하나 진리는 영원하며, 재물은 수유에 없어지는 것이지만 명예와 인격과 덕망은 영원불멸하는 것이니, 이것을 잘 체득하여 개인의 이익보다도 공익을 위하고 자기형편이나 자기교화에만 집착하기보다도 종단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법을 세워가는 대아적인 위치에서 현세정화에 사명감을 가지고 퇴전 없는 정진으로서 종단의 유구한 발전과 세계평화의 결실을 거두어서 우리 총지종의 입교 개종의 정신이 중외에 빛나고 세계만방에 불일이 중휘하도록 하는데 훌륭한 역군이 될 것을 서원하여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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