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와 고당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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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48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03-02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연중기획 산신각 탐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종열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부산 금정산 범어사=김종열 기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6 11:46 조회 2,347회본문
사원 수호의 의지를 담아 금정산을 지키는 고당 할매
부산의 주산 금정산
부산이 고향인 기자는 어려서부터 금정산과 떨어질 수 없었 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제일 큰절도 금정산 자락의 범어사 였고, 얼마 전 합가를 하신 어머니의 거쳐도 바로 금정산 아래 남산동이었다. 지금은 작은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한때는 동물 원과 케이불카를 갖춘 공원이었던 금강공원 역시 금정산 아래 에 있다. 부산에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과,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금정산과 연관을 맺고 살았고, 살아가고 있다.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어 내달리다 한반도 동남단 바닷가에 이르러 우뚝 솟은 봉우리를 형성한다. 해발 801미터부산의 주 산 금정산이다. 최고봉은 고당봉이고 북쪽으로 장군봉, 계명봉 남으로 원효봉, 의상봉, 파리봉, 상계봉들이 백양산으로 이어진 다. 금정산과 범어사는 그 이름의 유래부터 같이 한다.<삼국유사 >에는 금정범어(金井梵魚)로 표기되어 있어 신라시대 이전부터 연관 지어 불린 것으로 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산 이름의 유래 에 대해 ‘동래현 북쪽 20리에 금정산이 있고, 산 정상에 세길 정 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척이 요 깊이가 7척 정도다. 물은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전설 로는 한 마리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 하여, 금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로 인하 여 절을 짓고 범어사라 부른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지금도 고 당봉에서 내려다 본 금정에는 여전히 마르지 않는 푸른 샘물이 그득하다.
범어사와 고당 할매
금정산 고당봉 아래에 자리한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 3대 사찰 중의 하나다. 서기678년 신라 문무왕대 의 상대사가 해동 화엄십찰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 일찍이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고승들의 수행처로 의상대사, 원효대사, 표훈 대덕 으로부터 근세의 경허,용성, 한용운, 동산스님에 이르는 선맥(禪脈)의 총본산이다. 1950년대에는 범어사 조실로 주석하 던 동산스님의 주도로 불교정화운동을 편 역사적인 사찰이다. 보물 제 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한 수많은 성보문화재가 있다. 범어사에는 고당봉과 고당 할매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먼 저 금정구청이 지명확정을 위한 위원회를 개최했을 때 고당봉 은 고당(高幢)과 고당(姑堂) 두 가지의 한자어가 병존하고 있 었다. 위원회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산신의 대부분 은 여신이었다. 따라서 금정산 고당봉에도 할미신의 전설이 내 려오므로 할미 고(姑)자와 집 당(堂)자를 써 고당봉이라 확정하 고 표석을 건립했다. 그럼 할미 신에 대한 전설은 무엇일까? 이 또한 두 가지로 전해오는데 하나는 하늘의 신선 할미가 고당봉 에 내려와 자리를 잡고 금정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것. 다른 하 나는 범어사와 관련된 설화로 밀양 사람 박씨 보살에 관한 이야 기다. 박 보살은 일찍이 결혼하였으나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해 범어사 화주 보살의 역할을 하였다. 박 보살은 절의 대소사만이 아니라 살림까지 도맡아 할 정도로 불법을 외호하는 삶을 살았 다. 박 보살이 죽을 때가 되어 범어사 큰스님에게 유언을 남긴 다. “스님. 제가 죽으면 화장하여 금정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 뿌 려 주십시오, 그 봉우리에 작은 집을 짓고 정월 보름과 단오날 에 제를 지내 주시면 높은 곳에서 범어사를 영원히 지키겠습니 다.”며 마지막 순간 까지도 범어사를 걱정하는 불심을 보였다. 큰스님은 유언대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산신각을 짓고 이름을 할미 고(姑)자와 집 당(堂)자를 써 고당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산신각이 위치한 봉우리를 고당봉이라 불렀다는 설화다. 그러 나 한때 젊은 스님이 당제를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집을
훼손했는데, 그 뒤로 재앙이 끊이지 않아 다시 고모당을 고쳐지었다는 얘기도 전 한다. 지금은 고당봉 큰 바위 아래에 콘 크리트로 지어진 1평 남짓한 작은 당집 으로 존재한다. 당집 안에는 고모할미의 산신도가 걸려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산왕대신의 위패와 고모령신 위패가 나 란히 놓여있다. 지금도 민간 무속 신앙인 과 이곳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참배가 끊 이지 않는다.
범어사의 특이한 공간 활용 법
범어사의 가람배치는 산의 지형을 최 대한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배치한 선조 들의 지혜가 스며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 로 서쪽으로 지장전과 팔상, 독성, 나한 전이 배치되었고, 지장전 뒤편 큰 바위위 에 산령각을 지었다. 서편으로는 관음전 을 두었고, 석축 아래 남북으로 비로전과 미륵전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산령각에 는 고모할미가 있지 않고, 일반적인 산신 의 모습을 한 산신탱이 봉안되어있다. 고 당 할미의 전설을 사찰내로는 들이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범어사 사찰 건축 중 한번 눈여겨 볼 특이한 건물이 있다. 한 채의 건물에 나란히 배치된 팔상전, 독성 전, 나한전이다. 원래는 팔상전과 나한전이 독립된 건물이었다. 그 중간에는 천태문이라는 출입문이 있었다. 1905년에 중수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는데, 가운데 독성전은 1칸을 사용 하는 구조로 문틀을 반원형으로 만든 독특한 모습이다. 원래 두 채의 건물 사이의 공간으로 보여지는데, 중수 하는 과정에서 두 건물을 이어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듯하다. 두 개의 건물을 하 나로 이어 새로운 건물로 탄생시킨 대목장의 기지에 감탄 할 뿐 이다. 또 하나는 비로전과 미륵전 두 전각의 사이다. 원래는 처 마사이로 떨어져 있어야 할 공간에 문이 두짝 달려있다.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범어사를 거쳐 간 대목장들은 사원의 작 은 빈틈도 조화롭게 꾸미는 혜안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은 보 제루 복원 공사가 한창이라 대웅전 앞 마당이 어수선하지만 복 원이 완료 되면 예전의 오밀 조밀 하지만 당당한 가람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전국 제일의 불교 도시 부산
불교계 기자라면 누구나 부산 불자들의 놀라운 신심에 감탄 을 자아낸다. 기자가 H불교신문 부산지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5년, 범어사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H불교신문과 범어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설선대법회 입제식 날이었다. 초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3월 5일 부산에는 100여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지 역의 특성상 많은 눈이 내리면 도시의 교통은 거의 마비 상태가 된다. 하지만 폭설 속에서도 3,000여명의 불자들이 선사의 사자 후를 듣기위해 범어사로 모여 들었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자리를 지 키는 부산지역 불자들의 용맹정진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이후 법회는 매주 토요일 총 10회에 걸쳐 진행 되었는데, 입제식의 불자들이 회향식까지 빠짐없이 참석하는 아름다운 현장이 지금 도 생생하다. 요즘은 불교는 대형화의 길을 가고 있다. 어느 사찰의 신도 가 얼마라더라, 방생법회에 버스가 몇 대 동원되었다 하는 이야 기를 들을 때 마다 가슴 한쪽이 먹먹해 진다. 잘 못 방향을 정하 면 이웃종교가 범했던 우를 우리도 격을까 걱정되는 마음은 떨 칠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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