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밀엄정토의 기틀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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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1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4-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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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4-07 12:48 조회 1,623회본문
03. 밀엄정토의 기틀 확립
미래지향적인 신행 혁신③
찬불가 창작 및 보급
원정 대성사는 음악을 통한 포교에도 선구자적인 식견을 발휘했다. 1974년 9월 예불가 ‘오대서원’과 ‘회향서원’을 직접 작사·작곡하여 공식 불공과 의식에 도입했다. 1975년 10월 ‘네 가지 큰 은혜’, ‘성도절 노래’, ‘창교가’, ‘보은의 노래’, ‘참회의 노래’, ‘부모의 은혜’, ‘성혼찬가’, ‘왕생가’, ‘자성일을 지키자’ 등 16곡의 예불가를 직접 작사하였고 이 가운데 6곡을 완성했다. 원정 대성사는 노랫말은 물론 기본적인 곡조를 직접 작곡한 후 서창업 작곡가 등 전문 음악가의 편곡으로 총지종의 교의를 담은 찬불가를 창작·보급했다. 찬불가를 불공의식에 공식 도입함으로써 현대적인 불교의식을 정착하는 데 앞선 모범을 보였다.
포교와 전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불교계는 1970~80년대에 현대적인 찬불가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가장 선구적인 역할을 한 서창업 작곡가는 ‘삼귀의’, ‘사홍서원’등 대표적인 불교 의식곡과 ‘홀로 피는 연꽃’, ‘빛으로 돌아오소서’ 등 230여 곡의 찬불가를 작곡한 현대불교음악의 창시자이자 권위자이다. 이처럼 불교음악의 보급과 발전에 헌신한 전문 음악인에게 찬불가의 작곡 및 편곡을 의뢰함으로써 종단 불교음악의 보급과 발전에 힘썼다. 이후 대성사가 작사한 찬불가 가운데 완성하지 못한 10여 곡의 찬불가를 1983년 서창업 작곡가에게 다시 의뢰하여 완성했다.
“대성사님께서 만드신 찬불가 가사들을 보면 낱낱이 알알이 엄청난 의미를 간직하고 있어요. ‘창교가’를 보세요. ‘삼계의 중생들을 모두 건지고 찬란한 거룩한 빛 널리 비추며 대천세계 우렁찬 소리 울리고 시방세계 뻗어갈 우리 총지종, 법계의 사명으로 여기 모여서 금강같이 뭉쳐서 일어난 교단 즉신성불 대도를 널리 열어서 영겁으로 이어갈 우리 총지종.’ 이 깊은 뜻을 오히려 음률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웅대하잖아요.
서원당에서 처음이 노래가 울려 퍼질 때 모두들 울컥했지요. 맨 몸으로 방 한 칸 얻어 서원당을 열고 이공도 없이 교도들을 모아 불공을 드렸던 때가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모든 교도들이 똑같았을 겁니다. 환희와 감동이 넘쳤지요. ‘명왕의 노래’등 대성사님께서 작사해놓으신 노래가 많아요. 아름다운 찬불가로 우리가 완성해야 합니다.”
<불교총지종 50년사 총지화 전수 인터뷰 중>
종단 찬불가를 집대성하고 종단 의식에 필요한 신규 찬불가를 제작하기 위해 찬불가 편찬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의 스승들이 새로 제정된 찬불가의 가창연습을 할 정도로 찬불가 보급을 위해 노력했다. 음악포교에 대한 남다른 열의는 합창단 결성으로 이어졌다. 1975년 5월 24일 서대문선교부에 관음합창단을 결성하고 이를 확대하여 서울경인교구 차원의 연합 합창단을 만들 것을 제안, 1977년부터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경인교구 합창단은 대성사가 창작한 예불가를 통해 총지종의 가르침을 전파했으며 아름다운 음성공양으로 종단의 주요 행사를 빛냈다.
종단의 전폭적인 지원과 교도들의 관심 속에서 주요 사원과 교구별로 결성된 합창단은 사원의 교화활동을 이끄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불공 올리는 지극한 마음으로 음성포교를 통해 진언밀교의 감동을 전해주었을 뿐 아니라 종단과 교도들의 애경사에 발 벗고 나섰으며 사원에서 행하는 자비실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교화를 뒷받침했다.
자성학교 개설
대성사는 총지종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1975년 10월 29일 제6회 종의회 의결에 따라 각 사원 서원당에 어린이 불자들을 위한 자성학교를 개설했다. 승천사, 수인사, 정각사, 국광사, 성화사에 어린이 법회가 열렸다. 자성일 법회에 참여한 부모를 따라온 어린이들을 돌보는 것에서 출발하여 점차 놀이방과 공부방의 기능을 확대하고 전담 교사와 봉사자를 배치하여 놀이와 학습을 통한 인성교육 및 불교교육의 장으로 발전했다. 전국 사원에 어린이 법회와 중고등학생회 법회가 개설되면서 사원은 활력이 넘쳤다.
“일요일마다 어머니가 쥐어주신 희사금과 차비를 들고 서원당에 갔어요. 힘들 법도 한데 그때는 지금하고 달라서 하라면 하라는 대로 열심히 했지요. 특별히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정각사는 어린이 법회와 학생회 법회에 각각 50여 명이 늘 참여했는데요. 연등회와 창교절 행사 때 교도님들 가슴에 꽃을 달아드리면 너무나도 좋아하셨어요.
어린 마음에 참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체육대회를 하면 법회에 나오는 아이들뿐 아니라 친구들도 많이 데려왔어요. 당시만 해도 현교 사찰에서는 도심에 포교당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인기가 많았습니다. 정말 활기가 넘쳤죠. 어린이 법회 다니던 친구가 학생회 법회 나가고 청년회 활동하면서 자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때의 열기가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한 게 가장 아쉽습니다. 다시 어린이와 청소년 교화에 투자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불교총지종 50년사 인선 정사 인터뷰 중>
교도의 자녀뿐 아니라 지역의 일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참여가 늘면서 자성학교는 밀교교육의 산실로 성장했다. 사원을 신축할 때 가장 중심의 위치에 자성학교 공간을 배치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교도들의 진언염송 소리와 어린이·청소년 불자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사원은 생기가 가득했다. 자성학교는 어린이·청소년 포교를 활성화하고 총지종의 신심 깊은 교도와 스승을 길러내는 창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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