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염원을 품은 산신 대구 팔공산 파계사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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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54호 발행인 지성[이기식] 발간일 2012-09-05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산신각 탐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종열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대구=김종열 기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06 06:15 조회 2,854회본문
대구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팔공산’이다. 팔공산하면 ‘갓바위 부처님’, 동화사, 파계사 등 연관되는 단어는 모두가 불교와 관련된 단어다. 그만큼 팔공산은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팔공산은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군위군 부계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지역민들은 오래전부터 ‘공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태백산맥의 연봉으로 보현산(普賢山, 1,124m)에서 내달린 봉우리는 서남쪽으로 화산(華山, 828m)·팔공산·가산(架山, 902m)으로 연결된다. 팔공산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의 경계에 형성된 환상(環狀)의 산지는 대구분지의 북부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어 ‘팔공산맥’이라 부른다. 이 산맥은 남동쪽의 초례봉(醮禮峰, 648m)에서 시작하여 환성산(環城山, 811m)·인봉(印峰, 887m)을 거쳐 주봉인 팔공산, 북서부의 가산에 이른다. 또한 팔공산은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東峰)과 서봉(西峰)이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으로 솟아 있다. 인봉에서 가산까지는 팔공산맥의 주형으로 길이가 약 20㎞에 이른다.
여덟 장수의 충절이 서린 팔공산
팔공산의 남쪽은 경사가 완만해 진다. 응해산(鷹蟹山, 526m)·응봉(456m) 등의 구릉성 산지가 솟아 있고, 그 사이사이에 계곡물이 남쪽으로 흘러 동화천(桐華川)에 모여 금호강(琴湖江)으로 흘러든다. 계곡이 아름답고 산봉우리가 웅장하여 곳곳에 많은 사적들이 남아있다. 1980년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팔공산의 옛 이름은 공산(公山)· 부악(父岳)이라고 하였다. 팔공산의 이름과 관련하여 신라 말에 견훤(甄萱)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 고려 태조가 5,000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하러 나섰다. 공산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 당한다. 그 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 왕건으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왕건은 겨우 목숨을 구하였다. 이 때 신숭겸· 김락(金樂) 등 8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하였다 한다.
간절히 바라는 소원 하나는 이룬다는 갓바위 부처님
팔공산을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영험(靈驗)의 상징으로 불리는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일명 갓바위)이 있기 때문이다.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大閑里) 골짜기에 있으며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의 좌불상이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소망을 기원한다.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해발 850m에 위치하며 높이는 약 6m이며 머리의 갓 지금은 1.8m이다. 신라 선덕왕 때 의현대사(義玄大師)가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머리에 쓴 갓의 모양이 대학학사모와 비슷하여 입시철 합격을 기원하는 행렬이 해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곳곳에 스며든 불교문화의 향기
팔공산 산자락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의 본산인 동화사(桐華寺)를 중심으로 부인사(符仁寺)를 비롯한 파계사(把溪寺)·관암사(冠巖寺)가 있다.
영천 방면에 있는 은해사(銀海寺)에는 국보 제14호인 거조암영산전(居祖庵靈山殿)이 유명하고, 칠곡군에 있는 송림사(松林寺)는 신라 시대의 사찰로 보물 제189호인 오층전탑이 있다. 팔공산의 북측 자락인 군위군 부계면에 있는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 ,국보 제109호)은 제2석굴암이라 불린다. 또한 작고 큰 암자들이 산의 곳곳에 자리를 잡고 법등을 이어가고 있다. 중심 사찰인 동화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장 유정이 승군들을 지휘하던 곳으로 팔공산 등산로의 거점이기도 하다. 동화사 근처에는 간장 질환에 효험이 있다는 구세약수(求世藥水)가 있어 건강을 찾고자하는 탐방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팔공산 산신은 김유신 장군?
팔공산 산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산자락에 자리 잡은 사찰 마다 산신을 모시고 있었다. 파계사에서 만난 팔공산 산신은 주전인 원통전 뒤편에 한 칸짜리 산령각에 모셔져있었다. 산신은 세명의 동자들로부터 시봉을 받으며, 오른쪽에 호랑이를 아래에 두고 전방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구름, 소나무, 바위를 배경으로 앉은 산신은 다른 지역의 산신들보다는 다소 연로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마에 깊이 패인 5개의 주름과, 안광이 빛나는 두 눈, 우뚝 선 콧날에서 한 시절을 호령한 장군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계룡산 산신의 후덕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팔공산 북쪽 군위군의 민간 신앙에서는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신라 김유신 장군(595년~673년)을 팔공산 산신으로 모시고 있다. 장군신의 하나로 산신 혹은 마을신으로 김유신 장군이 신앙되어지는 지역은 강원도 강릉시, 충청북도 진천군, 경상북도 군위군, 서울시 용산구 일대가 대표적인이다.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경상도 군위현에 김유신신사(金庾信神祠)가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어머니 만명(萬明)을 모시고 있으며, 무녀들이 그 만명을 섬기는데 신당에는 반드시 명도(明圖)라는 구리거울을 걸어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단오조에서도 “군위군 효령(孝靈) 서악(西岳)에 김유신사당이 있는데 속칭
삼장군당(三將軍堂)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현재에도 경북 군위 지역의 무속인 대부분이 김유신을 팔공산 산신으로 모시고 있다. 신격화된 김유신 장군의 일대기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실려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2 김유신조(金庾信條)에도 그의 행적에 관한 단편적인 일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김유신과 팔공산의 인연은 장군이 화랑 시절 팔공산에서 수련을 한데 기인한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장군은 팔공산의 산신이되어 불법을 외호하며 민초들의 수호신으로 지금도 자리하고 있다.
팔공산은 지금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동화사에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약사대불’이 대구 시내를 바라보며 서있다. 108 번뇌를 상징하는 계단을 오르면 일만 여평의 도량이 나온다. 좌대(座臺) 높이 13m를 포함하여 30m 높이의 통일약사대불은 108명의 석공들이 약 7개월 동안 만들었다. 대불의 조성 당시 서원했던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은 아직 실현 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불자들은 오늘도 진심으로 자신과 나라의 안녕을 서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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