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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과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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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5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8-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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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점남 필자법명 - 필자소속 정각사 필자호칭 보살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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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8-01 15:53 조회 1,4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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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교도수행체험담 (6회)

큰딸과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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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사 김점남 보살


 제가 절에 열심히 다니는 이유는 몸이 아파서도 아니고 돈이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큰딸 때문입니다. 큰딸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많았고, 어미로서 그 모든 것을 해주기가 힘이 들 때도 참 많았습니다. 때로는 딸이 제게 ‘빚을 받으러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함께 불공을 하면서 둘 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의 불공을 하면서 경험한 저의 법문을 나누고 싶습니다.


 식품영양학과를 나온 큰딸은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곧장 취업을 하여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말끔히 차려입고 출근을 하는 딸을 볼 때마다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잘 다닐 줄만 알았던 딸이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초기에는 행복해하기에 ‘당분간은 괜찮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재취업이 안 되는 채로 시간만 흐르자 조급해졌습니다. 이력서를 여러 군데 넣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딸은 딸대로 스트레스를 받는지 히스테리를 부리다가도 어느 때는 세상 태평하게 빈둥거리고 있으니 내 속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저 혼자 불공을 하는 걸로는 되지 않을 성싶었습니다. 


  “나랑 절에 한번 가보자.”

 처음에는 귓등으로 듣고 별 대답도 잘 안 해 주었지만 여러 번 마음을 다해서 이야기한 끝에 한번 가보겠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다행히 스스로 자성일도 잘 지키고 합창단에도 들어갔습니다. 절에 열심히 다니는 것은 백번 천 번 고마운 일이었지만 여전히 새 직장은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에 속이 탔습니다. 고민 끝에 전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7일간 집중적으로 불공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불공을 마친 후 특별한 꿈을 꾸었습니다.


 파란 하늘에서 하얀 것들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눈인 듯 했으나 눈은 아니었고 종이학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땅 위로는 하얀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하늘에서는 하얀 것들이 하염없이 내려오는 이상하고도 예쁜 광경이었습니다. 신기한 꿈이라고 날이 밝자마자 스승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스승님은 가만히 기다려보자고 미소로 답하셨습니다. 한 달 정도가 되었나, 딸에게서 면접을 보러 간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전에 다녔던 회사보다 더 유명하고 큰 회사에서 1차 합격 통보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곱씹어보면 그 법문 같은 꿈을 꾸었을 때가 딸이 서류전형을 준비하고 있을 즈음이었습니다. 1차 합격이라는 말에 무척 떨렸지만 태연한 척 ‘잘하고 오라’는 말을 건네고 열심히 염주를 돌렸습니다. 


 면접 후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경력자로 5명밖에 안 뽑는데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어. 내가 그 안에 들 수 있을까? 그런데 신기한 일이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내 구두 앞코에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살포시 앉았다가 날아간 거 있지.” 

 딸아이가 겪은 나비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모든 꿈과 법문이 매우 긍정적인 것만 같았지만 복이 달아날까, 말을 꺼낼 수는 없었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면서 하던 불공 중에 알록달록한 꽃이 만발인 산에 오르는 꿈을 또 꾸었습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 사이로 다섯 마리의 하얀 양이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최종합격이 되었습니다. 


 딸과 문제가 생기고 딸의 인생에 좋지 않은 기미가 보일 때마다 딸보다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아팠던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불공을 할수록 엉켰던 실타래가 술술 풀리듯이 문제가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니 ‘사는 게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직도 되었겠다, 이제 딸애가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는데, 그게 또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습니다. 딸의 회사 상사가 소개해 준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는데 5년이 지나도 결혼한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즈음 너도나도 간다는데 못 가볼 거 없다는 마음으로 아는 사람의 손을 붙잡고 용하다는 점집에 갔습니다. 무속인은 다짜고짜 굿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굿의 비용은 무려 167만원 이었습니다. 저는 그길로 은행에 가서 167만원을 찾아 절에 갔습니다. 


  ‘이거 점쟁이 안 갖다 줄 거예요. 부처님한테 드릴 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알아서 다 해결해주세요.’

 마침 49일 불공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만큼은 딸 불공을 하지 않고 부모님 이름을 넣은 조상불공과 제 불공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남은 불공을 2주 남기고 꿈을 꾸었습니다. 큰 몸집의 뱀 하나가 아가리를 벌리고 제게 달려들기에 무서워하고 있는데 큰 말 한 마리가 풀숲에서 뛰어나오더니 앞발로 뱀을 물리쳤습니다. 그러고도 뱀이 다시 따라오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데 폭포수 계곡의 물줄기에 뱀이 쓸려 내려갔습니다. 

 

 그 후 불공이 끝나고 설이 다가오는데, 상견례에 얘기가 나왔습니다. 처음 법문을 들었을 때는 정말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건지 알쏭달쏭하기도 했지만, 직접 겪어보니 과연 진기하면서도 소중한 체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 앞에서는 안 될 일도 없고 이루지 못할 일도 없다는 것을 매번 깨달았고, 그 깨달음 앞에는 늘 법문이 있었습니다. 거미줄 같은 인생살이에 지친 보살님들이 있다면 마음을 기울여 불공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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