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프암을 극복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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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81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4-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오기순 필자법명 교도 필자소속 벽룡사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4-07 12:53 조회 1,702회본문
림프암을 극복하기까지
벽룡사 오기순 교도
저의 각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각자님은 평소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하고 건강을 나름 잘 챙기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병이나 건강에 대한 특별한 염려를 하지 않으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기에 걸렸는데 보통 때와 다르게 이 감기가 도통 낫지를 않고 두 달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동네 병원에 가도 감기라고 해서 감기약을 지어 먹었는데도 낫지 않고 또 다른 의원에 가도 감기라고 해서 다른 종류의 감기약을 사먹어도 낫지를 않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희한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환절기라 유독 독한 감기에 걸린 모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언제나처럼 가벼운 운동을 하기 위해 초등학교 운동장을 달리고 온 각자님이 심각한 얼굴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숨이 찬지 모르겠어.”
원래는 하루에 열 바퀴씩을 뛰어도 거뜬했는데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못 견디게 차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이상해.”
각자님은 거실 한쪽에 있던 체중계에 올라갔다 내려오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것 봐, 몸무게도 줄었어. 밥맛도 없고 계속 속도 더부룩해.”
우리는 날이 밝으면 큰 병원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시숙이 백혈암으로 일찍 세상에 떠낫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혈액 암은 가족력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각자님도 그런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습니다. 있는 대로 희사를 하고 염주를 한 바퀴 돌린 다음 잠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번잡한 분위기의 길을 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하얀 이불보에 싸인 아기 하나를 저에게 안겨주는 꿈이었습니다. 하얀 이불보는 마치 병원에서 쓰는 하얀 침대 시트 같았습니다. 안겨주니 받긴 받았는데 이 아이가 죽은 아이는 아닌지 불안하였습니다. 이불보를 들추고 얼굴을 확인하는데 너무나 예쁘게 생긴 아이가 동그란 눈을 제게 맞추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도 이게 아주 흉몽은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서 검사를 했습니다. 폐에 물이 찬 것 같으니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게 좋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무서웠지만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에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대학병원에 입원을 한 다음에도 폐에 물이 고였다는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폐에 있는 물만 빼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물을 빼고도 아무도 퇴원을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폐에 물이 차는 원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길로 해보지 않은 검사 없이 검사란 검사는 죄다 하고 다닌 것 같습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검사만 쉬지 않고 했습니다. 검사라는 것이 거듭될수록 각자님도 지치고 저도 지쳤습니다.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각자님의 몸무게는 전보다 더 빠져서 아주 홀쭉해졌습니다.
가족, 친지와 지인들도 병문안을 오고 힘을 내라며 위로해주었습니다. 조금씩 두고 간 돈으로 조상불공에 몰두했습니다. 돌아가신 조상님들 한분 한분 호명하며 열심히 불공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암담했습니다. 각자님은 림프 암이라는 진단을 최종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각자님 곁 보조침대에서 숙식을 하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잠깐 집에 들려 옷가지와 필요한 잡다한 것들을 챙겨 나오곤 했습니다. 집 앞에 소철이 한 그루 있었는데 오랜만에 집에 들르니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다가가서 상태를 살펴보니 개미 떼들에게 시달려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소철의 몸 한가운데에 구멍을 내어서 개미집을 지어놓았습니다. 나이가 오래된 소철이라서인지 개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소철이 가엾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종국에는 각자님 생각까지 났습니다. 저는 수돗가로 달려가서 수도꼭지와 호스를 연결하고 찬물을 가장 세게 틀었습니다. 물줄기를 쏘아서 개미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쫓아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웬일인지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병원으로 돌아가서도 소철 생각이 자꾸만 났습니다. 각자님을 위한 불공을 할 때에도 소철 불공까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개미들에게 당하고 있거나 말라 죽어있으면 그걸로 끝이다. 라고 애써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지만 밥을 먹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 때에도 아침에 눈을 떠서도 소철이 몹시 걱정스러웠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들를 때가 되었습니다. 가자마자 소철부터 확인하였습니다. 소철은 기적처럼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고맙고 또 대견한 소철이었습니다.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각자님도 소철처럼 가뿐히 암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일 이후 우리 집에서는 소철을 각자님 나무라고 부른답니다. 물론 소철은 지금도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불공을 꾸준히 하였고 그중에서도 조상불공에 특히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던 중 담당의사가 지정되고 본격적인 항암치료도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항암 약을 투여 받고 주사를 맞고 사진을 찍었는데 의사가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아직 치료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 상으로는 암세포의 절반 정도는 나가떨어진 것 같습니다.”
의사는 이 기세를 몰아붙여 다음 치료를 서둘러 하자고 했습니다. 2주 정도 항암치료를 더 한 다음에도 결과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각자님은 퇴원을 했고 통원치료로 암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통원치료를 하면서도 저와 각자님은 열심히 불공을 하였고 그뿐 아니라 각자님은 나름의 운동으로 체력을 기르고 저는 음식에 신경을 쓰는 등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성일은 반드시 지켰고 집에서 불공을 할 때에는 꼭 소철을 한 번씩 쳐다봐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후 의사로부터 암세포가 거의 다 소멸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달에 한 번씩 검사를 하기는 합니다만 결과는 항상 좋았습니다. 림프 암을 판정받고 현재 5년이 지났으니 이 정도면 완쾌나 다름없습니다. 당시에는 겁이 나서 암이 몇 기인지도 묻지 못했습니다. 암세포가 거의 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각자님은 암 4기였습니다. 림프 암은 신체의 다른 일부로 암세포를 전이시키는 데 특히 강점을 가진 암인데 각자님의 암은 어디에도 전이가 되지 않은 게 특히 신기하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각자님은 아침, 저녁으로 불공을 꼭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불공을 하면서 몸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안정도 찾게 되었습니다. 암에 대한 걱정은 조금 나아졌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건강에 대한 염려는 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불공에 대한 열의가 있으니 크게 두려운 것은 없답니다. 암이라는 병명의 진단을 받았을 때는 정말 무섭고 두려웠으나 이제는 고맙기도 합니다. 어쨌든 완치가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건강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각자님이 불공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함께 부처님의 가피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기쁘고 보람찹니다. 성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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