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천도와 49재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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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9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04-02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지상설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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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7 05:02 조회 2,522회본문
즉 인간의 몸을 받지 못하면 축생이나 미물, 혹은 그보다 더 못한 아귀, 지옥 등 악도에 태어나거나 아니면 다른 몸을 받지 못하고 외로운 영혼으로 구천을 헤매야 하는 것이 영혼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밝혀주신 사후세계와 천도에 대해 대략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한생의 삶을 다해 죽게 되면 영혼은 육신을 떠나 중음의 세계에 들어 일정 한 기간을 머물면서 자신이 생전에 지어놓은 업을 따라 다시 새로운 몸을 받게 됩니다. 현재의 이 몸을 현음이라 하고, 미래에 새로 받을 몸을 후음이라 하고 현음을 받을 때까지 사이에 일정한 기간동안 머무르는 중간영체를 중음 또는 중음신이라 한다. 사람이 죽게되면 다음 몸을 받을 때까지 대개 일곱단계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죽는 날부터 매7일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정신기운이 깨어나는데 이렇게 하기를 7번 거듭하여 49일만이면 대개가 후음을 받는데, 처음에는 생전의 업력이 착각을 일으켜 다음생의 몸을 받게 되기가 쉽다고 합니다.
몸을 받지 않는 상태로 대게 49일간의 기간을 지나는 동안에 생전에 지은업과 인연에 따라 새로운 몸을 받아 다시 내세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명이 다해 영혼이 육과 분리되는 것도 영혼에 따라 숨을 거두는 순간 영혼이 육신을 떠나기도 하고 숨이 아직 끊기지 않았는데도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새로 태어남도 어떤 영혼은 육신을 떠나 곧바로 다른 몸을 받을 수도 있고, 초7일 혹은 2/7일만에 태어나는 이도 있고 49일을 다 채우거나 혹은 몇 달 몇 해를 중음의 세계에 머 물거나 더러는 수십 수백년을 새 몸을 받지 못하고 구천을 헤메이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불교에서는 7일에 한 번씩 일곱번 재를 지내 영혼으로 하여금 새로이 맞게 될 내 세의 길을 불보살님의 가피력과 삼보의 법은과 자손들의 정성어린 추복불공 공덕으로 영혼위 업을 덜어주고 영로를 밝혀 주게 되는 것입니다.
재를 통해 영식을 위한 염송과 희사, 기도와 독경, 천도법문과 설법, 이 모든 것은 떠나가는 영식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순간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병들거나 탈진한 육신이 영양식을 받아먹고 서서히 기운이 충족되듯, 중음의 영식 또한 법공양을 받아 영력이 점점 업장을 녹이고 거듭 녹여 마침내 청정한 업장으로 정화되어 선도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재 불공이 영식에게 어떤 도움이 되고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첫째- 영식으로 하여금 청정일념에 머물게 하는것입니다.
사람은 정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서로 미워하며 어리석고 성내며 탐내는 마음 때문에 애증을 떠나서 살기가 어려우며, 한평 생을 두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업을 많이 가꾸어 애증에 끌려 청정하지 못하게 살게 됩니다.
죽음의 세계에서는 청정한 한 생각을 유지 하지 못하면 내세의 길은 어둡게 됩니다.
때문에 청정한 한 생각을 갖추는 것은 죽어 저승에 가는 영식에게는 무엇보도도 가장 중요한 것이며 보내는 유족도 가신 분이 청정 일념에 머물 수 있도록 애틋한 정을 일단 끊 고 불공으로 지극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식이 청정한 마음에 머물게 되면 생사의 길에 구애받지 않게 되며 오고감에 미혹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천도재를 해드리는 것은 미혹의 때를 씻어드리고 무명의 업장을 벗겨 드려서 지혜롭고 밝은 영성으로 바르게 내세의 길을 선택케 하기 위함입니다.
예컨대 어둠속에서는 가야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메이듯 미혹과 무명의 상태에서는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못하여 스스로 지은 바 업력에 끌려 자신도 모르게 악도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도재는 어둠속에서 빛이 되어 방향감각을 되찾아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영식으로 하여금 청정일념을 갖도록 하는 것은 남은 유족과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며 마 땅히 청정일념을 챙길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이 곧 가신분을 위한 최상의 보은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 영식에게 남은 애착심을 씻어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식은 육신을 떠나면 가장 먼저 생전에 익힌 애착심을 쫓아가게 되고 따라서 그 익힌 업력에 끌려 다음 몸을 받아나서 한 없는 세상에 길이 윤회의 길을 돌게 됨으로 윤회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오직 생전에 익힌 애착심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애착심이란 마음이 무엇인가에 묶여있거나 그것 때문에 떠나지 못함을 말합니다. 예컨대 마음이 재물에 묶여 재물을 떠나지 못하면 명예의 애착심에 걸려 있는 것이고, 마음이 처자 권속에 걸려 처자와 권속을 떠나지 못하면 처자권속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애착심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어서 애착심의 그물에 걸리기 쉬운데 이 애착심이 자리잡게 되면 영식이 애착심의 대상을 멀리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다가 그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아무렇게나 악도에 몸을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애착심을 녹여 주거나 덜어주기 위해서 천도재를 지내주는 것입니다.
애착심은 그 기운이 맑지 못하고 탁해서 형상없는 영혼이지만 영혼도 무게가 있어 높이 뜨지 못하여 시야의 영역이 좁아져 아무렇게나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한번 몸을 잘못 받게 되면 다시 새 몸을 받을 기회가 쉽지 않으므로 그 후회 한탄이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 - 영식으로 하여금 선도에 태어날 수 있도록 선도인연을 깊게 하는 것입니다.
인연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인연이란 어떤 인연이든 간에 만나지 않을 수 없는데 잘 만나면 행복한 것이고, 잘못 만나면 불행 한 것입니다.
이것이 생시만이 아니라 사후에도 인연은 소중한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의 자녀와 가족이 불법을 믿어 천도재를 정성껏 잘 지내주면 가신 분의 내세의 길이 밝아질 수 있지만 시신을 장례 지내는 것으로 자손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인연이라면 설사 생시에는 좋은 인연이었다 할지라도 죽은 뒤의 인연은 없었던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 입니다.
또 모든 영혼이 천도재를 지내준다고 해서 많은 죄업이 다 소멸되고 반드시 선도에 태어나는 것을 결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영식이 선도에 태어나게 하는 역할도 크다 하지만 그보다도 영식이 선도의 세계에 날 인연을 깊게 해주는 것입니다.
선도에 인연만 깊어지게 되면 때의 조만은 있을 지라도 선도의 세계에 들 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좋은 인연이 없으면 구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자신의 능력 가운데 세가지능치 못한 것 가운데 하나를 인연없는 중생은제도할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천도재는 물론 앞으로의 천도재가 영식의 선도수생의 인연을 깊게하는 중요한 의식임을 깊게 믿고 더욱 정성스럽게 천도재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악도의 세계가 얼마나 고통 스러운가를 모르기 때문에 천도재가 영식에게 있어 얼마나 유익한 일인가를 실감치 못 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그것을 느끼면서도 업력 때문에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도재란 살아있는 사람이 주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 주가 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악도의 세계를 말씀하시기를축생이나 미물의 몸을 받아 자기보다 크고 강한 자에게 잡이먹히는 불안과 배고픔을 항상 겪으며 강자에 혹사당하며, 고통을 끝없이 겪으며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고, 온갖 더러운 오물을 먹어야 하며 뜨거운 불속에 수없이 몸을 태우고 뭇 뱀들이 우글거리는 속에 함께 있어야 하는 고통등으로 비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이런 비유는 단순한 비유로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이토록 두려운 악도의 세계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바로 천도재의 위력이 되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천도재의 공덕을 깊이 믿고 정성을 다해 천도재를 드릴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넷째 - 영식을 위해 희사와 불공으로 죽은 이의 명복을 지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식의 앞길에 복의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불법의 세계는 자업자득과 인과응보 법칙으로 즉 진리는 영원한 것이며, 지은대로 받게되는 것입니다. 영식을 위해 영식의 이름으로 재물을 희사하 고 삼보에 공양하고 특별한 사업을 해 드리 는 것은 모두 영식의 앞길에 큰 복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잘 살려면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두 가지란 지혜와 복덕입니다. 지혜만 있고 복이 없어도 안되고 복만 많고 지혜가 없어도 안될 일입니다.
영식을 위하여 희사로 복을 지어줘야 한다고 하면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종교가 영식을 미끼로 금전을 취한다고 오해를 하는 수가 있는데 그러나 이는 성인이 진리를 깨쳐 영혼과 진리세계의 실상을 전달하고 실천하여 영식이 갈 영로를 밝혀 드리고자 함이지 절집에서 수입을 올리기 위한 저속한 취리행위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선악간에 지은대로 받는 것이 진리 세계의 엄연한 법도이기에 지어놓은 것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추복은 마치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과 같아서 당장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 금까지 말씀드린 천도재의 의의와 영식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생각하여 앞으로 49재에 더욱 정성을 다하시기를 거듭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한마디 더 첨언한다면 49재로 영식 이 천도되었다 하더라도 가급적 백일재까지 모셔서 더욱더 영식에게 음덕이 쌓이도록 해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 불전헌공도 명을 마친 직후가 영식에게는 가장 불안한 시기이며 무거운 업보 쪽으로 떨어지기 쉬운 때이므로 가급적 열반 직후에 최선을 다해 큰 복을 지어 복력으로 밀어줘야 선도수행에 유리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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