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다른 종교나 철학, 사상 등과 확연하게 구 분되는 것은 실천수행에 대한 방법이 뚜렷하다는 것 이다. 어느 종교이든 나름대로의 실천체계는 다 가지 고 있다. 그러나 불교만큼 체계적이고 논리정연하며, 또 실제 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지니고 있 는 종교는 거의 없다. 그리고 철학이나 사상은 나름대로의 논리체계는 가 지고 있겠지만, 그러한 것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의 제시에 있어서는 상당히 취약한 면이 있다. 불교는 고도의 철학이면서도 그것을 실천할 수행방 법이 다양하게 설정되어 있어 자기의 근기에 맞게 선 택할 수가 있다. 불교의 수행체계를 크게 보면 앞에서 말한 계, 정, 혜의 삼학으로 나타내 보일 수가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근본불교의 수행법으로서는 삼십 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다른 말로는 삼십칠보리분(三十七菩提分) 이라고도 한다. 즉 깨달음에 이르는 37가지 방법이라는 뜻이다. 우선 이 37가지의 수행법을 보면 크게 나누어 사 념처(四念處), 사정근(四正勤), 사여의족(四如意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각지(七覺支), 팔정도로 구분할 수 있고, 이것을 모두 더하면 37가지가 된다. 그래서 이것들을 37가지의 도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하여 삼십칠조도품이라고 하는 것이다. 삼십칠조도품 가운데에서 먼저 사념처에 대해 설명 해 보겠다. 사념처는 팔정도 가운데 정념에 해당하는 것인데, 사념주(四念住)라고도 한다. 이것은 몸과 감수 작용, 마음, 법이라는 신(身),수 (受),심(心),법(法) 네 가지를 올바르게 생각하여 잊 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몸은 부정한 것이며, 느낌은 괴로운 것이고, 마 음은 무상한 것이며, 법이 무아인 것을 늘 생각하고 잊 지 않는 것이다. 사념처의 근거가 되는 것은 《대염처경(大念處經)》 이며 빨리 경전에서는 《마지마 니까야》 제10경과 《디가 니까야》 제22경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에 대한 주석은 일찍부터 만들어졌었는데 빨리 어로 된 주석은 4세기 경에 완전 소실되고 지금은 스 리랑카의 판본에서 빨리어로 중역(重譯)한 것으로서 4세기의 불교학자 붓다고사〔불음(佛音)〕가 이를 완 성했다. 남방의 상좌부 불교에서는 《대염처경》이 대단히 중시된다. 마치 북방 대승불교에서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을 중시하는 것에 필적할 정도이다. 남방불교에서는 《대염처경》을 배우고 외우며 닦 는 것이 다른 모든 경전을 배우는 것보다 공덕이 더 크 다고 여길 정도이다. 왜냐하면 불법의 모든 것이 이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사념처의 수행을 완전히 행하면 불법을 모두 깨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출가자 뿐만 아니라 재가신자들도 집에서 이《대염처경》을 베껴 쓰고 외우고 학습하며 깨끗한 천에 경을 싸서 잘 치워놓았다가 저녁에 온 가 족이 모여 앉아 이 경을 함께 읽기도 한다. 심지어는 임종시에도 이 경을 읽어주기도 한다. 《잡아함경》에서도 이렇게 설하셨다.
“일체법이라는 것은 사념처를 말하는 데 그 이름이 정설(正說)이다.”
이처럼 37조도품 가운데에서 사념처는 가장 중요하 면서도 기초적인 수행법이다. 한 마디로 사념처를 닦지 않고서는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고 해탈을 얻을 수도 없다. 《대염처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사념처의 공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을 깨끗하게 하고, 근심과 두려움을 건너 게 하며, 괴로움과 번뇌를 멸하게 하고, 울음을 그 치게 하며, 바른 법을 얻게 하는 한 가지 도가 있으 니, 이른바 사념처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 처님께서도 이 사념처를 닦아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사념처만 잘 닦아도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