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언행자의 가족을 찾아서 - 관성사 우천, 현정원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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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7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02-01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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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5 09:22 조회 2,633회본문
수행인은 하심 하는 마음돼야
50여년을 한결같이 진언수행으로 일관해 오고 있는 수행자 가족이 있다. 서울 행촌동 관성사 현정원(이위재. 82) 보살 가족, 남편 이신 우천(김호면. 82)각자님도 역시 40여년 가까이 수행을 해오며 인생의 동반자로서 때로는 도반으로 같은 길을 걸어 오고 있다. 이들 내외는 대구 남산동 진각종 심인당을 시작으로 서울 왕십리 심인당, 월곡동 등의 사원에서 수행했다. 이후 총지종 창종 초창기 종암동, 서대문, 등지의 서원당을 거쳐 현재 관성사 교도로 수행해 오고 있다. 총지종 역사의 산 증인인 셈이다. 대를 이어 장녀인 길상화(김한옥. 57)보살도 같은 절에 다니며 부모님을 모시며 신행생활을 하고 있다.
취재를 위해 영등포 댁을 방문하기로 한 날. 팔순의 노인분들은 조금은 긴장된 얼굴로 맞이 하며 “마치 오랜 동안 헤어져 있다가 보는 동기간 처럼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해왔다. 첫 대면에서부터 벌써 오랜 기간 수행해 온 모습이 역력했다. 자손들을 남부럽지 않게 성장시키고 할일 다 한 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는 한 가함도 배어 나왔다.
현정원 보살은 대구에서 살림을 할 때 처음 진언수행법을 만났다. 하루는 무슨 일로 속이 상해 있는데 옆집 할머니가 남산동 참회원에 가보지 '않겠냐고 해서 따라가 보았다고 한다. 좌복에 앉아 있노라니 좀전까지 상해 있던 마음이 서서히 풀어지고 다른 상념들이 밀려왔다. ‘아, 마음이란 것도 이처럼 무상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정원 보살을 이때부터 염주를 손에서 놓자 않았다. 그동안 사는데 바빠 잊고 있었던 마음자리를 찾기 위해 불철주야로 매달렸다.
“젊을 적엔 7정진이 아니라 그 이상 정진을 해도 지치지 않았어요. 그 때의 초발심이 지금 까지 수행하도록 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정원 보살과 우천 각자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불공한다. 보통은 염주를 100여회 돌리는데 몸이 안 좋을 때엔 49회는 꼭 한다고 한다. 지난해 불공 때에도 하루 종일 절에서 보낼만큼 정진력이 대단하다. 회향일 철야 7정진을 다 마치진 못했다며 면구스럽다는 노보살과 그를 걱정하는 딸의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하루 불공이나 희사를 안하게 되면 종일 마음이 걸려요. 그러니 자연 몸도 편치 않게 됩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으로 몸을 유지하듯 기도와 불공으로 우리 마음을 길 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인 우천 각자님은 1985년도 관성사 신정회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신심이 깊다. 총지종 창종 당시 원정 성사님의 곡진한 가르침과 수행력에 감화되어 진각종을 나오게 됐지만 한편으로 조금 섭섭한 점도 없잖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정 성사의 훌륭한 인품과 언제나 인자하고 온화한 모습에 자신은 물론 초창기 교 도들이 큰 신심을 내곤 했다고 회상했다.
“원정 종조님은 아주 명민하신 분이 셨어요. 진각종의 중추 역할을 다 해내시며 준제관음법 을 발굴 제시 하셨습니다. 성사께서는 밥을 먹을 때 여러 반찬들을 골고루 먹는 것과 같이 수행도 마찬가지라고 하시며 독려하셨습니다. 당시덕행면으로 보나 수행면으로 보나 큰 존경을 받으셨기 때문에 누가 가자 소리 하기 전 에 원정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안동에서 8대 봉사하는 집안의 주손이라는 각자님은 정년퇴임 후 의성김씨 ‘천상문화보존 회’ 회장을 맡아 시조인 청계 선생 탄생 500돌을 펴내는 등 열정적으로 일하기도 했다. “원 정님께서는 청계선생의 자제이고 퇴계선생의 상수 제자였던 학봉 김성일 선생의 얘기를 잘 알고 계셨죠. 이렇게 다른 사람의 집안 내력까지도 소상히 알고 계실 만큼 유학에도 밝으시고 다감하셨습니다. 그러니 많은 교도들이 흠모하고 따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50여년을 수행한 분의 불교관이 궁금해졌다.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노부부는 한마디로 하심이라고 말한다.
“솔직히 불법의 깊은 내용은 잘 모른답니다. 굳이 한 마디 하자면 수행인은 하심하는 마음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기라는 아상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과 통하지요. 아만심을 버리고 모든 이를 공경하고 보살필 때 불교가 구현된다고 생각합니다.”
난해하고 현학적인 가르침이 시중에 가득해 혼란스러운 요즘 오히려 팔순 노부부의 ‘하심’ 한 마디가 심중에 가득 채워졌다. 현정원 보살 내외의 이런 불공기도 공덕인지 슬하의 5남매 모두 국내 유수의 대학 출신으로 재계, 학계의 요직에 봉직하고 있다.
이중 장녀 길상화 보살은 그림자처럼 부모님을 보필하며 신행생활에 매진하고 있다. 이화 여대에 다닐 만큼 재원이기도 한 그는 중학시절 어머니를 따라 서원당에 다니곤 했지만 본 격적으로 신행을 한 것은 약 7년 정도라 한다. 부모님댁 인근 아파트에 살며 살림이며 안부를 챙기고 절에도 모셔다 드리니 그야말로 효녀라 할 수 밖에 없다.
“수행을 일과로 하시면서 모범적인 인생을 살아 오신 부모님을 곁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수행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큰 복이라고 여겨집니다.”
날마다 시간을 내서 정송하는게 생활의 큰 부분이라는 길상화 보살은 총지종 수행은 언제 어디서나 진언염송을 할 수 있고 누가 해 주는게 아니고 자력으로 수행정진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며 이 좋은 수행법을 언론매체를 통해 적극 흥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엔 무얼 위해 불공하냐는 물음에 팔순 노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별다른 소원은 없답 니다. 다만 자식들 잘 되기만을 축수할 따름이 랍니다”
도가 영글면 무원의 경지가 된다고 했던가.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서 ‘저 분들 이야말로 무원의 삶을 살고 계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상념이 스쳐갔다.
윤우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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