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향기 가득한 토 굴 생찰 의 기 족 <사벽 의 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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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80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4-11-07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설법 / 서적 에세이 서브카테고리 불교서적 에세이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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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3 12:19 조회 2,390회본문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사벽의 대화〉는〈선방일기〉의 인기에 힘입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선방일기〉출간 이후 사람들은 지허스님에 대해 궁금해 했고, 그의 다른 저서를 찾아 두리번거렸으며, 그런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사벽의 대화〉인데, 1968년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에 연재됐다가 김광식 교수의 제안으로 단행본으로 출간됐습니다.
〈사벽의 대화〉는〈선방일기〉이전에 쓴 책으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위치한 정암사에서 20여 리 떨어진 ‘심적’ 이라는 토굴에서 1962년 봄부터 1963년 봄까지 1년간의 토굴생활 기록입니다. 지허 스님은 이 토굴에서 ‘유야무야'라는 화두를 잡은 채, 범어사 출신의 석우스님과 함께 수행했는데 그 경험을 쓴 책입니다.
선방생활은 스님들이 여러 대중과 더불어 수행을 일구어 가는 공간인데 반해 토굴생활은 혼자 아니면 마음 맞는 도반과 생활하기에 자칫 나태와 권태에 빠지기 쉬운데 두 스님은 시계추처럼 정확하고 엄격하게 일상을 통제했습니다. 도토리를 주워와 삶아먹고, 나물이 나는 철이면 산나물을 뜯어 반찬을 하면서 소박한 식사를 했고, 땔나무는 하루에 두 번 한 짐씩 했고, 식사 후엔 도토리를 깠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면 잠들었습니다.
조반이 끝나자 꿀밤 솥에 불을 지펴 놓고 나무하러 갔다. 생목벌채는 금하고 고사목만 채취하는 게 불문율로 돼 있어서 한낮이 돼서야 겨우 한 짐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꿀밤 솥에 물을 갈고 불을 지펴 두고 또 나무하러 갔다. 나뭇길에서 돌아오니 석양이 우리들의 토굴을 황금색으로 물들여 주고 있다.(83p)
우리는 점심을 놓고 마주 앉았다. 찧은 꿀밤(도토리의 경상도 사투리)가루가 주식이고 날무에 소금이 부식이었다. 나는 시장했던 터라 맛도 모른 채 한 발우 가득 먹었다. 잠시 후 오공은 끝났다. 발우는 깨끗이 치워졌다. 꿀밤도, 무도, 소금도, 발우에 담겼던 모든 식물은 모두 흔적도 없어졌다. 일단 발우에 담긴 음식물은 철저히 없애는 게 승가의 식사규풍이다. (32p)
원시인의 혈거와 같은 움막에서 생활하고, 우연히 시장에서 맡았던 된장냄새가 사치일 정도로 가난한 생활이지만 두 수행자는 육체적 욕구를 최소한으로 충족시키면서 정신을 개발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일부작이면 일일부식’ 이라는 백장 회해선사의 말씀처럼 노동과 수행을 병행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문학적 향취였습니다. 구도자의 신분을 떠나서 인적 없는 산속에서 산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인데 이 경험을 문학소년 같은 감수성을 갖고 표현했는데 엄격하고 단조로운 수행생활에 윤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습니다.
(도피안사/2010/1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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