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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상징. 을미년 양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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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82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01-02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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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3 03:24 조회 4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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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상징. 을미년 양의 해
국립민속박물관 2월 23일까지 특별 전시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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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을미년 양띠 해다. 양은 성질이 온순하고 무리를 지어 사는 순한 동물이다. 올해는 청의 기운이 듬뿍 담긴 ‘청양’의 해로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푸른색의 의미가 더해져 개인과 가정에 큰 행운을 불러온다 한다. 우리가 알고 느끼는 청색은 지혜와 넓은 하늘, 바다, 평온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양은 농경문화였던 한반도에서는 20세기 이전에 거의 볼 수 없었던 동물이다. 우리가 말하는 양은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면양의 모습이 아니라 산양이나 염소의 형태로 간간히 등장한다.

양은 예부터 착하고 의롭고 아름다운 동물로 인식돼왔다. 맛있음, 아름다움, 상서로움, 착함등의 한자도 모두 양의 파자다. 이처럼 양의 온순하고 긍정적인 의미로 일상 속에 들어와 우리문화 속 양은 길상의 소재로 등장했다.

다만 새해 들어 첫 양날(염소날)인 상미일은 경거망동을 삼가라는 전통이 있다. 천진기 국립 민속박물관장은 “염소가 경거망동하고 경솔 하다는 인식이 영향을 끼친 결과”라고 말했다. 상미일의 풍습을 제외하고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민담은 전해지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양 꿈은 길몽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성계의 꿈 설화가 대표적이다. 초야에 묻혀 지내던 이성계가 양을 잡으려는데 양의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들은 무학대사는 양이라는 한자에서 양의 불과 꼬리가 떨어지면 ‘왕’자만 남게 되니 임금이 되리라 해몽했다.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양의 해이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꼭 밝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895년 을미년이 대표적이다. 을미사변의 여파는 김홍집 내각이 실시한 을미개혁으로 이어졌고 단발령 등 각종 개혁정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1955년에는 봄비가 그칠 날이 없어 보리농사가 망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이 때의 흉년이 워낙 심해 약간의 먹을 것만 생기면 “을미년 보리흉년에 이것이 약간인가” 라는 유행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1415년에는 왜구가, 1235벼에는 몽골이 한반도를 침입했다. 1115년에는 요의 사신이 금나라에 출병을 독촉했고 995년에는 서희가 여진을 축출했다. 935년 을미년에는 후백제 견훤 이 고려에 투항했고 신라 경순왕은 고려에 항복해 신라가 멸망했다.

양은 희생의 상징으로도 전해진다. 서양에서는 사람을 징벌하는 신에 대한 희생물로 양을 바쳤으며 우리 조상도 제사에 양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양은 재물, 종교인, 선량한 사람 등을 의미할 때도 쓰인다. 양이 가진 희생의 이미지는 그 다양한

양은 정 직과 정의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반드시 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양의 고지식한 습성 때문이다. 이 같은 양의 이미지 때문에 한국 속담에는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양처럼 정직하고 맑으면 부정을 저지르지 못해 돈을 벌기 어렵다는 의미다.

대신 양의 해는 학자의 출생빈도가 가장 높은 해로 알려져 있다. 양띠 사주를 가진 사람은 교수, 교사, 언론인, 문예계 등에 잘 맞는 띠로 동서양을 통틀어 학자는 양띠가 제일 많다고 천진기관장은 전한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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