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립 수목원 숲에 서 불교를 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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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89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08-05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불교문화산책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강지연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강지연 구성작가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18 11:28 조회 2,619회본문
여름더위를 식히러 남양주와 포천 경계에 자리한 국립수목원에 다녀왔다. 본격적인 휴가철에 들어서지 않는 7월의 평일은 그리 사람이 많지 않아 산책다운 산책을 하며 잠시 사색에 잠길 수 있었다.
광릉수목원으로 널리 알려진 국립수목원은 1997년 정부가 수립한 광릉숲 보전대책을 추진하기 위해 1999년 만들어졌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산림생물종 연구의 전통을 잇고 있는 국내 최고의 산림생물종 연구기관이다. 광릉숲은 조선시대 세조대왕 능림으로 지정된 1468년 이래로 540여년 이상 자연그대로 보전되어온 숲이다.
국립수목원은 1,018ha의 자연림과 100ha에 이르는 전문전시원, 산림 박물관, 산림 생물표본관, 산림동물원 , 난대온실 ,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전시원의 경우 1984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1987년에 완공되었으며, 식물의 특징이나 기능에 따라 15개의 전시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7년 4월 5일 개관한 산림박물관은 우리나라 산림과 임업의 역사와 현황, 미래를 설명하는 각종 임업사료와 유물, 목제품 등 11,000점에 이르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 앞에서 석가탑과 다보탑을 닮은 탑을 만났다. 나무 사이로 우뚝 솟은 탑을 보며, 문득 불교와 숲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기나긴 인연이 떠올랐다. 불교는 나무, 숲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숲의 종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왜 그럴까? 부처님의 생애에 바로 그 답이 있다.
먼저 부처님의 생애를 살펴보자.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 무우수 아래에서 태어나셨다.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에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드셨고, 첫 설법을 하신 녹야원 숲에서 다섯 제자를 맞이하셨다. 사바세계를 떠나실 때는 쿠시나가라의 사라수 두 그루 사이에 누워 열반에 드셨다.
전영우 교수(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는 부처님 생애와 관련한 불교성지 룸비니 동산, 기원정사, 죽림정사, 녹야원의 공통점을 숲이라고 꼽는다. 성지의 지명이 동산,림, 원이 들어가게끔 의역한 이유는 이들 성지가 숲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전 교수는 이러한 까닭에 ‘불교는 숲의 종교’라고 설명한다.
전 교수는 대장경과〈본생경〉등 여러 경전에서 60여 개소의 숲이 언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에서는 숲이 곧 수행장소였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이처럼 많은 숲과 함께 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경전에는 숲이 바로 수행장소였음을 밝히고 있다.
부처님은 길 위에서 그리고 나무 아래에서 평생을 보내셨다. 〈금강경〉은 처음에 이렇게 시작한다. ‘여시아문 일시, 불 재사위국 가수급고독원….’ 해석하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부처 님께서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에서….’ 기수급고독원은 기타태자의 숲을 급고독 장자가 땅 위에 금을 깔고 사들여 스님들의 거처를 마련한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땅을 팔지 않으려 땅 위에 금을 깔라는 무리한 제안을 했던 기타태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를 따르는 수행자를 위해 땅을 구입하려는 급고독 장자의 설명을 듣고 일부 땅은 자신이 직접 기부를 해 기원정사를 지었다.
고인이 된 김재일 사찰생태 전문가는 부처님과 숲의 인연은 현생이 아닌 전생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불교가 숲의 종교인 것은 석가모니의 전생 현생이 모두 숲과 관련되어 있고, 다른 불보살들 역시 숲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56억7천만년 후에 강림할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불 역시 숲의 성자로 예언되어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에게 깨달음의 장소 보리수가 있다면, 미륵에겐 용화수가 있다.〈미륵하생경〉에 보면 미륵 역시 나무 아래에서 무상대도를 이룰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법화경〉에는 지상에 재현한 극락의 입지 조건을 수풀이 우거진 동산으로 설명하고 있고,〈화엄경〉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울창한 숲이 있는 곳으로 사찰의 환경을 그린다. 이처럼 태동부터 불교는 숲의 종교였다.
부처 님은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기를 권장했다.〈니건자경〉에는 수행자들이 머무는 숲을 훼손하는 것은 삼보를 훼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초목 숲 산림 천택 등을 태우지 말고, 파괴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나온다.
고 김재일 선생은 불교를 널리 전파한 인도 아소카왕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 나무 심기를 적극 장려했다고 설명했다. 아소카대왕은 일생 동안, 다섯 그루의 나무를 심고 돌보라고 백성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다섯 그루의 나무는 치유력이 있는 나무, 열매를 맺는 나무, 땔감으로 쓸 나무, 집을 짓는 데 쓸 나무,향기 나는 꽃나무 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집 지을 때 쓸 나무와 땔감으로 쓸 나무는 직접적으로 필요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세 그루는 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나무와 얽힌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찰 설화에서 찾으면 보다 직접적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양평 용문사를 찾아가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사찰입구에 우뚝 솟아 있다. 신라 마의태자가 꽂은 지팡이라는 설과 의상대사의 지팡이라는 두 개의 설이 전해온다. 영주 부석사에도 의상스님의 지팡이가 자랐다는 선비화가 있다.
이뿐일까. 신라 자장율사의 지팡이는 강원도 태백산 정암사에서 자랐다. 정암사 주목이 바로 그 지팡이 전설을 품은 나무다. 순천 송광사에는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지팡이가 자라 천자암 쌍향수와 고향수가 되었다고 한다. 천자암 쌍향수는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지팡이와 그의 제자인 금나라 왕자 출신의 담당국사의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둔 것이다. 쌍향수는 곱향나무인데, 원래 백두산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로, 남한지역에서는 천자암 쌍향수가 유일한 곱향4무라고 목경찬 전임강사(불광교육원)는 설명한다.
사찰에서는 주변 산림을 잘 가꾸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천태종 구인사도 상월원각대조사의 지시에 따라 잣나무 200만 그루를 심어 가꿨다. 무려 70년에 걸쳐 심고 가꾼 잣나무 숲은 백자동을 잣나무골이라는 옛 이름에 걸맞게 바꿔 놨다. 해마다 가을이면 스님들이 잣나무 숲을 보유하게 됐다.
여러 이야기들을 했지만 불교가 숲의 종교인 이유는 요즘 템플스테이에서도 가볍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들 중에는 숲 명상이 있다. 숲에 비치는 햇살도, 숲을 스치는 바람도, 발아래 밟히는 흙도 모두 자아성찰을 위한 명상이 된다.
전영우 교수는 2010년 열렸던 세계산림과학 서울총회에 참석해 월정사에서 하룻밤 템플스테이를 자청했던 핀란드 산림과학원 시에바넨 박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숲을 나무와 야생동물이 자라는 장소로만 여겨온 서구적 시각과 달리 월정사 전나무 숲 속을 지나는 바람소리에서조차 영성을 읽어내는 한국 산림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산 속 깊은 곳, 울창한 수림 안에 자리한 산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을 보며 자라왔다. 우리에게 숲은 자연이고, 수행처이고, 정신의 휴양지이다. 이러한 점을 부각시켜 산사의 전통문화와 자연이 가진 풍부한 가치를 불교에서 더 가치있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 더! 국립수목원의 울창한 수림을 접하며 불교와 숲이야기로 빠져들었지만 다시 국립수목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국립수목원에는 나무와 식물들만 있을까? 국립수목원에 호랑이가 살고 있는 걸 알고 있는지. 1991년 개원한 산림동물원에는 백두산호랑이, 반달가슴곰, 늑대 등 총 17종의 야생동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다. 내년에는 산림동물원이 경북 봉화로 이사를 간다고 한다.
백두산 호랑이의 숨결을 한걸음 앞에서 느끼고 싶다면 올해 안에 국립수목원을 찾아가자. 가꿔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이 주는 맑은 공기와 청량함을 한껏 느끼다보면 숲 명상은 저절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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