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함께 음악을, 그리고 불교를 느끼자 세종대왕릉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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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86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05-08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불교문화산책 서브카테고리 서하보살의 불교문화산책페이지 정보
필자명 강지연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강지연 구성작가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1 10:26 조회 2,860회본문
4.18-5.30, 매주 토요일 신미대사와 인연 한글창제, 불사로 이어져
백성을 사랑하고 음악을 즐겼던 임금. 문화 황금기를 이룩한 조선을 대표하는 임금을 꼽으라 하면 주저 없이 세종대왕을 선택할 것이다. 부처님 오신날이 있는 5월. 조선 불교의 기틀을 잡았던 세종대왕과 함께 문화의 향기에흠벅 젖어 들어보자.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이 지난 4월 18일부터 오는 5월 30일까지 매주 토요일 세종대왕의 릉인 영릉 재실에서 작은 음악회로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세종대왕과 함께 음악을 즐기다’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음악회는 백성을 사랑하고 음악을 즐겼던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면모와 조선 시대의 문화 황금기를 이룩한 업적 등을 살피며 인문학과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이 어우러진 자리이다.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많이 내놓았던 세종대왕은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했던 유마거사와 닮아있다. 세종대왕은 장녀 정소공주를 일찍 잃은데 이어, 광평대군, 평원대군이 잇달아 요절해 개인적으로 큰 슬픔을 겪었다. 먼저 간 자식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사찰을 다니며 불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후 의지했던 부인 소헌왕후의 승하 이후 세종대왕은 말년을 불교에 귀의해 살았다.
세종대왕릉인 영릉은 조선 제4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하여 모신 능이다. 제17대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능이 위 으 아래로 자리한 영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4월이면 영릉의 아름다운 진달래동산이 일반에 특별 개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리더이자 성군으로 일순위에 꼽히는 세종대왕. 이번 음악회 에서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애민사상, 과학과 발명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매주 주제를 달리하여 찾아간다. 거문고, 가이금, 해금 연주와 판소리 등 다양한 국악 연주가 별도의 음향장비 없이 국악기 본래의 소리와 소리꾼의 목소리만으로 진행되어 관람객의 귀를 즐겁게 해줄 예정이다.
학문분만 아니라 국방과 과학 등 다방면에 뛰어났던 세종대왕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모든 음 체계의 바탕이자 기준이 되는 율관을 제작했다. 29세 때의 일이다. 율관은 음의 표준을 정하기 위해 만든 12개의 관이다. 국내 최초로 편경을 만든 건 31세 때, 아악의 필수 악기인 편종을 만든 건 33세 때의 일이다. 연주를 위해 부족한 악기까지도 개발한 것이다.
당시 중국 중심의 음악관을 벗어나 우리만의 독자적인 음악을 발전시키고자 힘쓰기도 했다. 음악 담당 관청인 관습도감을 설치해 박연에게 궁중음악 을 정리하게 했다. 세종대왕은 음의 길이를 명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악보집〈정간보〉를 간행해 직접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정간보〉는 음의 길이를 알 수 있는 동양 최초의 악보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악을 비롯하여 훈민정음으로 지은〈용비어천가〉를 노래한 '여민락'도 모두 세종대왕의 작품이다.
세종대왕의 업적으로 가장 첫 번째로 꼽는 것이 바로 한글 창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세종대왕은 최초의 한글작품 세 가지를 발표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일대기를 산문으로 정리한〈석보상절〉과 찬불가〈월인천강지곡〉 그리고 선조들을 칭송하는〈용비어천가〉가 바로 그것이다.
〈월인천강지곡〉은 소헌왕후를 떠나보낸 세종대왕이〈석보상절〉을 읽으며 느낀 소회를 포함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시로 읊은 찬불가다. 현재 남아있는 상권에 실린 노래만 194곡. 상중하 3권이 모두 남아있었다면 600곡에 가까운 노래가 남아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월인천강’이라는 말은 ‘부처가 백억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를 베푸는 것이 마치 하나의 달이 천개의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멸실된 것으로 여겨졌던〈월인천강지곡〉이 발견된 곳은 1916년 부안 실상사였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이 조카 세조의 원찰 중 한 곳이었던 부상 실상사에 직접 봉안했던 것이다. 효령대군은 67세 때인 1462년(세조 8) 3월에 부안 실상사 삼존불 조성을 직접 권선했다. 4년 뒤인 1466년 4월에는 효령대군이 실상사 중창을 위해 발원문도 썼다. 이런 기록들을 토대로 볼 때’ 이 시기 삼존불에 복장물로 모셔진 것으로 추정되는 〈월인천강지곡〉이 지금 보물로'지정되어 남아있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왜 운민정음으로 유교 서적이 아닌 부처님일대기인 〈석보상절〉을 펴냈을까? 〈석보상절〉을 펴냈을 때는 소헌왕후 승하 후 명복을 빌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한글 창제 과정에 중추적 역할을 한 어떤 인물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글이 그 근간을 범어로 했다는 설에서 기인하는데 당시 범어에 정통했던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의 주역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후 불경부터 언해하기 시작한 것은 신미대사의 영향이자 요청 때문이라고 한다.
신미대사는 수양태군을 도와〈석보상절〉을 펴낸 집현전 학사 김수온의 친형이다.'당시 신미대사는 복천암 주지였는데, 복천암은 한글 창제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복천암 사적기〉에는 ‘세종은 복천 암에 주석 하던 신미대사에게 한글 창제 중인 집현전 학자들에게 범어의 자음과 모음을 설명하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신미대사의 속가 집안인 영산 김씨 족보에는 스님이 집현전 학자로 세종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다는 기록도 되어 있다.
하지만 신미대사가 실제 한글을 창제했다고 밝힐 수 없었던 것은 숭유억불정책으로 집현전 학자들 중에 최만리, 김문, 정창손 등 반대하는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글창제를 극력 반대하는 상소문 까지 쌓이고 있는 상태에서 세종대왕은 신미대사의 한글 창제를 알리지 않고 묻어둔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신미대사에 대한 세종대왕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의 초석을 다진 고마움의 표시로 복천 암에 삼존불을 조성 , 시주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유생들의 반대도 무릅쓰고 유언으로 신미대사에게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라는 긴 법호를 내렸다. 세종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문종이 첫 시호를 내린 인물이 신미대사인 것을 봐도 세종대왕의 유언이 얼마나 간절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세조는 수양대군 시절부터 신미대사와. 가까웠고, 시호가 내려진 이후에는 늘 혜각존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처음부터 불교에 마냥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찰노비를 정리해 국가에 귀속시키고, 불교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병합시켰다. 선종 18사, 교종 18사의 총 36사를 본사로 인정했고, 나머지 사찰 토지나 상주하는 스님의 숫자도 삭감 정리했다.
도성 안에서의 경행도, 궐내의 연등행사도 금지시켰다. 하지만 왕실 중심의 기우/구병/명복/등을 위한 불사는 계속 이루어졌다. 효령대군이 한강에서 7일간의 수륙재를 지내는 것을 허락했고, 흥천사 사리각 및 석탑 중수, 안거회/경찬회 등도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다. 즉위 30년이 되는 해에는 내불당/을 세우기까지 했다.
이처럼 말년을 불교에 귀의했던 세종대왕이 잠든 곳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을 부처님 오신 5월에 만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더 뜻 깊다. 우리 전통음악의 정립에 큰 획을 그었던 세종대왕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국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구성진 가락과 정서를 고즈넉이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마지막 공연인 5월 30일은 청명한 달빛 아래에서 운치 있는 야간 음악회로 꾸며져 특별한 추억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연 관람접수는 여주시청(031-887-2065)과 여주대학교 세종리더십연구소(031- 880-5505)를 통해 가능하며, 사전 예약 없이 현장에서도 참여할 수 있다.
음악과 함께 돌이켜본 세종대왕의 일생에는 불교가 참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숭유억불정책을 썼던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불교를 귀의처로 삼았던 세종대왕. 음악과 함께 세종대왕의 업적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던 불교의 인연담을 다시 한 번 되새기자. 영릉 가는 길에 여주 목아박물관과 신륵사 에 들려 불교의 향기에 잠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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