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미술의 정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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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1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08-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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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31 08:51 조회 2,790회본문
우리나라 불탑은 세계불교 예술사상 독특한 조형미 지녀
1.탑의 어원과 유래
탑은 탑파를 줄인 말로 원래는 범어(Sanskrit)의 ‘stupa 또는 파리어(pali)의 를 thupa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탑파는 불교발생과 더불어 석가모니의 유해를 다비하였고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면서 불 교적인 조형물이 되어있다.
탑파의 의미는 ‘신골을 담고 흙과 돌을 쌓아올린 불신골을 봉안하는 묘’ 라는 뜻 에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 대신 불경이나 불상 등의 법신 사리를 봉안한 탑도 건립되었다.
사리를 봉안한 탑을 ‘스투우파’ 방분, 원총 또는 고현처 ’ 라고 하고 사리가 없는 탑을 ‘차이티야’- 영묘,정처, 복취’ 라고구별한다.
2. 탑의 건립 목적
불탑 건립의 첫 번째 목적은 사리신앙에 있다. 그래서 탑은 불상과 더불어 불교의 예배대상으로 널리 추앙되었다. 즉 불사리를 지닌 불탑과 부처 의 품격을 형상화한 불상이 가람의 중심에 위치함으로써 이른바 당탑가람을 형성하였다.
불탑의 건립은 호국 호법과 같은 시대적 상황 그리고 종교적 동기와 연관을 맺으며 전개되었다. 이러한 목적은 곧 불탑건립의 외형적 동기를 부여해준다. 예를 들어 황룡사 9층목 탑의 경우 삼국통일의 염원을 담아 건립되었다는 사실이 주목되며, 신라 의 감은사의 창건 또한 왜병을 진압 하고 국가를 보호하려는 호국적 발원 에서 출발되었으며, 이곳에 건립된 3층석탑은 삼국통일의 기념비적인 쌍탑장엄을 이룩하였던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탑의 건립은 신라 말기부터 일기시작한 도참사상과도 더욱 밀접한 연관을 지니면서 지세나 형국에 따라 산천을 보호하려는 성격 아래 수많은 불탑이 건립되었다는 사실도 주목되 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특히 불탑 건립의 한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3, 탑의 상징성
탑은 탑파의 줄임말로서 문, 루, 종 각, 법당, 회랑, 석등과 더불어 불교미술의 대표적인 조형물로서 여러 가지 상징성을 지닌다. 탑이 주는 일반적인 느낌은 불교라는 종교를 알리고 사찰을 장엄한 장소로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불교의 유형, 무형의 모든 문화적인 자산들이 그렇듯이 중생구제라는 불교 본연의 사명의 내포와 인간 심성의 정화 내지 구원과 같은 불교 본질적 모습을 파악하며, 불교의 유형, 무형의 상징물에 담긴 진리, 내지는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탑파 또한 진리 표현의 또 다른 방법인 동시에 오늘의 불교를 있게 한 모태이며 불교 전통의 확립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불교 교리의 발전과 더불어 탑파의 신앙도 변 해진다. 탑파는 지역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세계 각국의 불교 문화권에서 탑은 여러 형태를 지닌다.
인도에서는 복발형 즉 그릇을 뒤집 어 놓은 듯한 형태이다. 이에 비해 중국을 위시한 북방불교 계통의 불탑은 한결같이 목조 누각과 같이 층수를 지닌 여러 층의 탑으로 전개되었으며 개념 또한 공덕의 의미를 더욱 강조 하고 있다. 우리나라 불탑은 세계 불교예술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더구나 불탑이 지닌 뛰어난 예술적 감각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서 민의 애환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최초의 석탑인 백제의 미륵사지 탑은 백제의 미술문화가 매우 진취적이 고 창의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백제인의 오랜 고심과 연찬을 통하여 탄생된 그야말로 한국 미술사상 초유의 석탑임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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