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권을 포기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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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88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5-07-07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불교이야기 / 칼럼 서브카테고리 명사 칼럼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시행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전 신문인 김시행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18 13:09 조회 2,922회본문
권력과 부의 성벽을 높이 쌓을수록 자기 스스로 쌓아올린 성벽에 갇혀 살게 된다. 갇혀 살면서도 그걸 아늑하고 따뜻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밝은 태양, 시원한 솔바람에 비할 수 있을까?
알렉산더 대왕이 거지 생활을 하는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아 갔을 때의 일화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대왕이 그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제의하자 디오게네스는 말한다.
“대왕이시여, 당신은 지금 햇빛을 가리고 서 있습니다. 좀 비켜주시오.”
그가 원한 것은 재물도, 명예도 아니고, 오직 따스한 햇볕이었다. 모두가 다 재물을 얻기 위해, 명예를 차치하기위해 줄을 서는데, 디오게 네스만이 홀로 그 줄에서 벗어나 대 자유를 누리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는, 몇 번 들어도 통쾌무쌍하다.
삶은 이렇듯 누구에게나 싱그럽게 열려있다. 잘났든, 못났든, 가진 게 많든 적든 관계없이, 제 인생 제가 만끽하며 살 수 있게 되어 있다. 모두에게 평등한 삶의 권리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부자이기 때문에 너 많은 권리를 갖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 가난하기 때문에 인생을 조금 밖에 즐길수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햇볕을 쬘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누구라도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다. 물론 세속의 잣대로 보면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신분의 차이, 부의 차이, 능력의 차이,학력의 차이... 온통 차별 투성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후천적으로 지어낸 산물이지 ‘태어남’ 자체에서 비록된 것이 아니다. 햇볕이 잘 드는 남향집과 햇볕이 잘 안 드는 북향집은 그렇게 집을 지은 것 때문이지 태양 때문은 아닌 것이다.
중생은 누구나 다 불성을 지니고 태어났다, 더하고 덜함이 없이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부처 될 자격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태양이 만물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처럼 신분, 능력, 부 따위의 차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누구나 부처가 될 자질을 지닌 것이 사실이라면, 그 무엇을 할 수 없겠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싱그럽게 살아 갈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방해 받지 않을 권리 또한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루 그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일조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 소유, 내 생각, 내 명예, 내가치, 내 사랑, 내 자존심에 자기만의 성 쌓기에 열을 올린다. 성을 높이 쌓을수록 삶이 더 안전해지고 행복 또한 증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벽이 높으면 햇볕이 들어 올 수 없다. 자기 스스로 쌓아 올’린 성벽에 갇혀 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삶은 옹졸하고 답답하고 춥게 마련이다. 그걸 과연 아늑하고 따뜻하다고 할 수 있을까?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제안하는 세상의 온갖 부구영화를 마다하고 대신 햇빛을 쬘 수 있는 자유를 요구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도 타인들의 높은 건물이 자기 집을 가리면 송사를 벌여서라도 일조권을 되찾으려 든다. 그렇게 햇빛을 쬘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손으로 벽을 쌓아 그곳에 갇히고 싶어 한다.
법은, 진리는, 들판의 시원한 멋과 맛과 대자 유함을 가리켜 보인다. 삶을 싱그럽게 엮어갈 길을 일러준다. 그 길은누구에게나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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