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공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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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2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4-02-02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총지논단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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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1 08:04 조회 4,408회본문
또한, 한국밀교의 중흥을 창종 정신으로 삼았던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는 정통밀교종단의 교상과 사상의 체계와 정립에 전념하셨습니다.
특히, 한때 진각종단의 총인직을 맡으셨을 때는 모든 교리체계와 교전편찬을 손수 완성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면면은 원정 대성사의 유고에서 엿보게 됩니다. ‘심인진리’ ‘진각’ 등의 언급은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총지종과 진각종의 교전을 아우르고 있는 종조 원정 대성사의 가르침에서 대성사의 숨결을 다시 한번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어버이와 자식〉
물질시대 사람은 연애와 사랑으로써 한편에 기울어져서 자연 사귀게 되는 때 이므로 가정에서도 부모와 자식과 사위 와 딸이 한 집에 같이 살고 또 한 곳에 가까이 살고 있어서는 자연 정신적으로 한편은 후하게 되고 한편은 박하게 되어 자연 서로 원망이 나고 속으로 원수지며 입으로 싸우고 몸으로 다투는 것은 어느 집을 물론하고 다 이와 같이 되어 지는 것을 우리가 흔히 보게 된다.
그런 까닭으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서 만약 일년에 한 두 번씩 만나게 된다 면 그리워서 서로 자주 만나 보기를 원 하고 생각하는 마음 가운데 원망도 원수 도 없고 말로써 싸울 일도 없고 몸으로써 다툴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살아 갈수록 더 일어나 고 어버이와 자식에 참된 사랑과 친한 것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게 되는 것이니 천륜 뿐만이 아니라 이삼십년 동안 기르고 교육시키고 성취하여 준 그 친한 사 랑의 정은 비록 떨어져 멀리 산다고 해 서 윤리가 완전히 끊어지고 잊어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자식을 기르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같이 살아야 될 것이요 어버어 와 자식 사이에 친하고 사랑할 도리를 영원토록 보존하기 위해서는 자식이 부모를 의심하고 부모가 자식을 의심하며 한 집에 살고 가까이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어느 시대라도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윤리가 없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므로 그 윤리를 흥왕케 하던 때가 멀어졌고 멀어 지지 않는 데에 따라서 그 활용하는 방 법이 다르니라.
공자때 윤리를 일으키던 세상이 멀어지고 다른 세상을 많이 지나오다가 전문적 윤리가 필요해서 새로 일으킬 때는 가족이 모여서 여러 세대로 같이 살아야만 일 가적으로 친한 윤리를 알게 되고 윤리도덕이 일어나게 되는 법이다.
부모 자식과 형제 친척이 항상 서로 싸우고 원수를 가지고 있는 데는 자손이 안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느니라. 한 집에 가까이 살게 되므로 인해서 일어난 병은 서로 떨어져서 멀리 사는 것 밖에 더 좋은 약이 없느니라. 오늘날 우리가 곧 이와같은 경우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일원주의시대는 한 집에 통솔해서 살 게 되는 데 윤리만 일어날 뿐 아니라 오복이 겸전하게 되었고 이원주의시 대는 집을 나누어서 자주로 살게 되는데 윤리만 보존될 뿐 아니라 행복 으로 살게 된다. 그러나 홀로 된 부모는 자식에게 사는 것이 원칙이 되므로 자식들의 뜻을 세워서 살아야만 되는 것이다.
어버이에게 효순하면 자식도 또한 효순할지니.
내가 불효하면 자식이 어찌 효순하겠느냐.
효순은 심덕의 대원이요
백행의 근본이라
심인불교의 으뜸이 되지 아니하겠느냐.
〈남편과 아내〉
중생은 지혜와 어리석음에 차별이 있 어서 스스로 평등하게 되지 못하므로 지혜있는 이와 어리석은 이를 평등하게 하 자면 어리석은 자를 먼저 가르치고 쉽게 깨닫는 교화가 나와야 될 것이요.
남녀를 평등하게 하자면 오백년 동안에 어둡게 된 여성의 본능인 지성을 히는 교가 나와서 부녀가 먼저 교화를 받게 되어야 일가에서 부부가 평등하고 일가가 평등한 연후에 국가도 평등하며 세계도 평화가 되느니라.
천지는 음양이요 만물은 자웅이라. 음과 양의 본성을 말하면, 음은 정체임에도 불구하고 양을 당겨오는 힘을 가졌고, 양은 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음을 따라 가는 힘을 가졌다.
비유컨대 공중에 찬바람이 일어나서 검은 구름 한 덩어리 음체가 이루어지고 그 음체는 사방의 양을 당겨 와서 음과 양이 회합하는 동시에 번개와 우뢰가 일 어나고 비가 내리게 되며, 양은 음을 당겨 오지 못하므로 가무는 날에 비가 오는 것은 어렵고, 음은 양을 당겨 오므로 장마지던 날도 개이기는 쉬우며, 만물의 자와 웅의 본성을 말하면 자는 정적이면 서도 웅을 당겨오는 본능을 가졌고 웅은 동적이면 서도 자를 따라가는 본능을 가졌는 것은 유정 동물에만 한해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식물과 광물에 까지라도 자세히 보면 자화가 웅 화분을 옮겨 와서 결실하고, 쇠는 지남석에 나타나지 않는 속기운에 따라 붙는 것을 보고 알겠도다.
사람도 남녀의 이성은 만물과 본래 조금도 다르지 않느니라. 그러나 사람은 만물 가운데 오직 지혜가 있고 가장 귀한 것을 세우기 위해서 인도를 세워 오는 오백년 가운데 인의예지의 중도와 삼강오륜의 인도를 일으키게 되니 봉건적 도와 법과 예와 범절로서 가장은 부르고 아낙은 따르게 되어서 아내는 반드시 남편을 따르게 되었던 것인데, 공도가 서는 시대가 왔으므로 서양에서 들어오는 물도가 서는데 따라 인도를 세우는 유교가 쇠하게 되니 강윤구속 가운데 있던 우리나라 사람도 모든 만물과 같이 공도적으로 평등한 본성에 돌아와서 부부가 근본이 되어 가므로 그 부인의 말을 듣지 않을 이가 없게 되었다.
내가 악한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면 악한 사람이 될 것이요 내가 착한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이다. 현대 사람은 아내의 말을 잘 듣고 남편에게 따르는 것은 아내의 뜻보다 더 잘 되는 것이 없는 고로 부인이 교를 믿어서 착한 보살이 되면 남편도 착해져서 이성 각자 가되느니라.
부부는 일체이므로 아내의 말을 잘 듣고 따르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과거 인도를 세우던 일원시대의 범절 도덕은 남편 이 배워서 아내의 범절에 모범이 되었던 것이요 현재 물도를 세우는 이원시대의 양심 종교는 아내가 먼저 심인을 깨쳐서 남편의 마음 안에 해인으로 밝아 지게 하는 동시에 남편도 따라서 진각님을 믿고 이성을 깨닫게 되느니라.
과거는 실상이라 뜻을 말하고 형상을 보여서 가르치고 모범이 되었던 것이요 현재는 진리와 뜻을 말하지도 않고 형상을 보이지도 않는 데에 반영되는 것 이다. 이는 곧 아내가 심인을 깨쳐서 실천하는 것을 남편에게 말을 하여 표시 하지 않더라도 아내의 뜻 그대로 남편 에게 그 지성으로 하여금 반영되는 것이다.
〈자료제공 : 종학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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