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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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5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4-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정은철 필자법명 - 필자소속 나무와 숲 한의원 필자호칭 원장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4-15 15:03 조회 35회본문
마음과 건강
20여 년 전의 일이다. 한의대 6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한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하게 되었다. 국가고시 합격을 위하여 6년 동안 나름 충실히 준비하여 시험에 임하였지만, 시험 과목이 많고 출제 범위가 광범위하여 어려운 문제가 많은지라 내심 걱정도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시험지를 받아보니, 정답이 딱 하나로 정해지지 않고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문제가 상당수 있었다. 시험을 끝내고 나오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고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적이 합격선을 넘지 못하고 떨어질 것 같은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시험을 끝내서 후련해야 했지만,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낙방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밥맛도 없고 잠도 오지 않았으며, 스스로가 너무나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처럼 여겨져 몸에 기운이 다 빠졌다. 사람들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는 볼 면목이 없었다. 이때는 무얼 하여도 마음의 무거움이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시험 발표일이 되어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 여부를 확인해 보니, 오! 합격이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의 무겁던 마음은 눈 녹듯 없어지고 몸에 새로운 활기가 차올랐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하게 이러한 경험을 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마음과 몸에 자신감과 활력이 샘솟고, 반대의 경우에는 우울해지고 몸에 기운이 빠지며 자신의 무능력함에 자학하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거나 그 정도가 심하게 되면 우리의 몸은 항상성을 잃고 병리적 상태에 빠지게 된다. 마음의 문제가 몸에 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서양의학에서는 캐나다의 의사 한스 셀리에(Hans Selye, 1907~1982)가 처음으로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심리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병리적인 문제를 설명한 바 있다. 1936년 셀리에는 쥐에게 다양한 자극을 주는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고통받는 쥐에게서 생겨나는 유사한 신체적 변화를 발견했다. 셀리에는 이 발견을 과학저널 <네이처>에 한 페이지짜리 짤막한 논문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논문의 제목은 <다양한 유해 자극으로 생긴 증후군>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손상을 입히는 자극의 유형에 무관하게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난다”며 이를 ‘일반적응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 줄여서 GAS)’이라고 명명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셀리에 교수는 이 증상을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불렀다. 요즘 우리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스트레스라는 용어가 생겨난 기원이다.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신체와 마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병리적인 현상을 칠정상(七情傷)이라 지칭하여 중요한 병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칠정상은 희(喜)·노(怒)·우(憂)·사(思)·비(悲)·공(恐)·경(驚) 7가지의 감정이 지나치면 인체에 특정한 질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이다. 최근 연구에서 스트레스의 형태에 따라 인체에서 코르티솔이나 아드레날린 등 호르몬이 분비되는 상태를 확인하였고, 호르몬의 종류와 분비량에 따라 인체의 뇌에서 해마가 손상을 입거나 심혈관계, 소화기계, 호흡기계, 면역계 등이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와 관찰들은 심리적으로 평정한 상태에 있을 때 신체 기관 또한 건강한 상태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인체는 ‘희노애락’ 같은 심리적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여러 기관이 손상을 입게 되지만, 특히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절망감과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는 감정과 인식이 스며들 때 자신을 파괴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자신이 스스로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체에 존재하는 면역세포들은 인체에 해로운 바이러스나 세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생각에 영향을 받아 자기 몸을 공격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면역 관련 질환이 이러한 심리적 상태에서 유발되는 듯하다. 감정의 변이가 단순히 슬프고 화나는 상태를 넘어서 자신을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게 될 때, 인체는 그러한 생각을 자신의 몸에게도 그대로 구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은 단순히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포 하나하나의 생존의 힘을 꺾는다. 나아가 위험으로부터 방어하는 면역세포가 우리 몸을 공격하거나, 인체에 해로운 암세포 등을 제거하는 기능이 무장해제당하게 되어 치명적인 병리 상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건강한 생존을 위하여는 마음이 평정에 있을 수 있도록 외부의 환경과 자신의 신체적 심리적 조건을 조율하여야 한다. 일시적인 감정 변화는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그것이 극단에 이르기 전에 스스로 통제하여 내 몸의 면역 체계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도록 지휘 체계를 튼튼히 해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심(心)을 ‘일신의 군주’라 하였고, ‘심이 흔들리면 일국이 어려워진다’고 하였다. 즉 심은 언제나 스스로가 존귀하며 아름다운 존재라는 믿음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태에 있도록 ‘나’를 운영하는 것이 건강의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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