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불교의 달라이 라마 제도는 한국 불자로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종교 사회적 전통일 것이다. 달라이 라마 제도는 티베트인이 추구한 법왕의 통치가 현실의 정치 제도에서 실현된 결과로 보아도 좋다. 그러나 보다 자세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티베트는 달라이 라마 제도가 탄생하기 이전 서로 다른 종교나 종파를 지지하는 지방 세력 간의 심각한 전쟁이 있었다. 티베트인은 정법을 지키기 위해 왕권과 정치적 안정을 선결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정법의 통치를 실현하기 위해 통치자는 불교에 대한 최고의 교양과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달라이 라마 제도는 달라이 라마 5세 때 세력을 크게 확장했고, 이때 판첸 라마 제도도 함께 탄생했다. 판첸 라마 4세인 롭상최기곌첸은 유례없는 대학자로서 달라이 라마의 친교사로서 많은 저작을 남겼다.

한 국가의 명운은 대략 500년을 주기로 바뀌는 것 같다. 달라이 라마 제도가 확립된 지 500여 년이 지나 달라이 라마 14세와 판첸 라마 10세는 한 시절에 태어났다. 이번 글에서 다룰 판첸 라마 10세에 대해 약간 언급하면, 그는 1938년 2월 9일 티베트 동부 암도 지방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곤뽀쩨뗀이다. 그의 출생은 판첸 라마 9세인 툽뗀최기니마(1883~1937)의 입적 후 1년이 경과 한 시점으로, 티베트 정부는 전통적 방식대로 9대 판첸 라마의 환생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곤뽀쩨뗀은 사미계를 받고 이름을 ‘롭상 틴레 룬둡 최기 곌첸’이라고 하였다. 판첸 라마 10세는 따시룽뽀 사원과 꿈붐 사원에서 혹독한 공부를 마쳤고, 1959년 최종 학위인 게셰학위를 받았다.

전대 판첸 라마인 판첸 라마 9세는 중국 국민당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국공 전쟁에서 공산주의자 마오쩌둥이 승리하였고 중공은 티베트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판첸 라마 10세를 이용하였다. 1951년 중공과 티베트는 ‘17개 조약’으로 알려진 강제 조약으로 사실상 티베트를 중국의 일부로 병합하였고, 1954년에는 달라이 라마 14세와 판첸 라마 10세는 함께 티베트 대표로 북경을 방문해 초대 당 전당대회에 참석하였다. 판첸 라마 10세의 삶은 중공에 철저히 이용당한 채 이를 알면서도 티베트의 현실적 자치권과 불교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티베트와 중공 양측 모두로부터 불신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판첸 라마 10세는 판첸 라마 전통의 환생으로서 티베트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려 한 위대한 고승이자 위대한 영혼이었다고 생각한다. 중공에 억류되었던 판첸 라마 10세는 말년에 티베트로 돌아와 1986년 대기원법회를 재개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외국을 방문하였다. 1989년 1월 23일 판첸 라마는 따시룽뽀 사원의 불탑 건립 불사에 후진타오와 함께 참석하였다. 판첸 라마 10세는 법문에서 티베트의 고통과 함께 티베트의 진정한 자치권을 중공 정부에 요청한 이후 5일이 지나서 28일 석연치 않게 입적했다.

판첸 라마 10세의 인생 역정을 되짚어 보다가 우연히 전대 판첸 라마 9세 툽뗀최기니마의 육자진언에 대한 법문을 입수했다. 판첸 라마 9세가 1931년 중국 강소성 보화산 융창사에서 법문한 것인데, 아미타불의 제자로서 관세음보살의 원력을 소개하고 육자진언의 염송은 신어의(身語意)의 삼업을 관세음보살의 그것과 동일시하는 유가 삼매라 정의하였다.

구체적으로 육자진언의 ‘옴’에 대해서는 산스크리트어 ‘아, 우, 음’의 조합이며, 여기서 ‘붓다의 삼신이 곧 나의 삼신이며, 나의 삼업은 부처님의 삼업’이라는 유가의 경지를 도모한다고 하였다. ‘마니’에 대해서는 ‘불법의 공덕’, ‘반메’에 대해서는 ‘반야지’로 풀이하였다. ‘훔’에 대해서는 성취, 완성의 진언으로 가르쳤다. 티베트와 동아시아를 막론하고 육자진언에 대한 동일한 주석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판첸 라마 9세는 중국의 대중에게 육자진언을 연마하기 위해 ????금강경????, ????법화경????, ????아미타경????을 독송함으로써 육자진언의 법체와 묘유의 상호, 제법의 불사를 알 수 있다고 설법했다. 이는 중국 토양에 맞게 육자진언을 독특하게 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 판첸 라마 9세 툽뗀최기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