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좀(Rhizome)과 연기(緣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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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05호 발행인 록경(황보상민) 발간일 2025-04-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니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5-04-15 14:48 조회 32회본문
차이는 있지만 우열의 차별 없어
중심과 주변이 없이 모두가 ‘평등’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교리에 접근할 때 겪는 어려움의 하나가 용어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방 이후 한국은 교육의 내용을 서양의 사상과 체계로 채웠기 때문에 불교용어는 점점 낯설어지고 외국어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불교를 서양의 세계관으로 해석하면서 심하게 왜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하위 종교로 인식하게 한 점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기존 서양의 세계관이 흔들리고 불교에 대한 서양 학자들의 이해가 깊어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완전한 원형이 있고 그것으로부터 현상세계가 나왔다고 하는데, 자연스럽게 ‘위계(位階)’가 설정됩니다. 완전한 원형에서 멀어질수록 그 위계가 낮아집니다. 중세에 들어오면서 이데아는 신(神)으로 대체되면서 피조물로서 만물이 있고 그 안에서 다시 위계가 설정됩니다. 당연히 맨 위에 인간이 위치하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성립됩니다. 근대에는 이데아와 신의 자리에 이성(理性)이 설정되고, 이성적 존재로서의 개인이 설정됩니다. 여기에서도 문명과 야만으로 위계가 설정됩니다. 그래서 문명국이 미개인을 개화시키는 것을 당연시하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였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으로 개별적 존재보다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고, 이것이 본질적이라는 주장이 등장합니다. 이데아, 신, 이성이라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확산한다는 일종의 ‘유출설’은 자연스럽게 중심과 주변의 차등이 설정됩니다. 이러한 논리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사회적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논리와는 다른 내용이 바로 20세기 중반 이후 널리 알려진 ‘리좀(Rhizome)’으로 들뢰즈와 가타리가 주장하였습니다. 수목형 식물이 뿌리와 가지와 잎이라는 위계를 가진다면, 리좀은 가지가 흙에 닿아서 뿌리로 변화하는 지피식물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중심과 주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평등합니다.
‘평등(平等)’이라는 말은 본래 불교용어입니다. 일본인들이 ‘이퀄리티(equality)’를 번역하면서 평등을 가져다 쓰면서 정치적·사회적 용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신과 인간이라는 넘을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과 불교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신이 인간의 죄를 사(赦)한다는 말은 죄를 지어도 그 죄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인데, 불교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불교에서는 죄를 지어도 누가 그것을 없애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염라대왕은 사람을 차별 없이 재판하여 상벌을 공평하게 준다는 의미에서 평등왕(平等王)이라고도 합니다. 불교의 불보살은 벌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자비만을 베푸는 존재입니다.
앞서 리좀이란 식물로 세계의 실상을 설명하는 현대 철학의 논리는 ‘연기(緣起)’라는 불교적 근본원리와 닮아있음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세상 만물은 서로 다르므로 차이는 있지만 우열의 차별은 없습니다. 현대 진화론은 진화(進化)라는 용어가 주는 차별적 의미 대신 다양화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모든 생명체는 주변의 생물과 무생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에 다만 다양한 모습으로 현재에 이르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도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나를 있게 하는 존재입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매우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극한으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탄핵을 반대하는 극우세력의 집회 모습은 목사가 주도하는 기독교 예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면서 극한의 주장을 내뱉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두 세력으로 갈라져 심리적 내란 상태에 있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계가 저지른 일로 제주도 4·3사건과 황해도 신천 사건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와 다른 세력을 잔인하게 제거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2천 년의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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