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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전염과 ‘자비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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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6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5-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법문 서브카테고리 하현주 박사의 마음 밭 가꾸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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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하현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하현주 박사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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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2 07:17 조회 5,5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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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자비정원(慈悲正願)① (회)

정서전염과 ‘자비 방역’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정서도 전염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큰 혼란 가운데 있다. ‘전염’이라는 말이 참으로 지긋지긋한 말이 되어버린 이 시국에, 전염이라는 불편한 단어를 또다시 마주해야 하는 이유는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방역에도 주의를 쏟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방역의 노력들이 자타를 함께 보호하기 위한 것인 것처럼, 마음의 방역에서도 자타의 마음을 함께 돌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타인을 오염원 취급하기 쉬운 이 시국에 자비의 마음은 더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전염되는 것이 바이러스만이 아니라면, 우리의 감정도, 행복도 고통도 전염될 수 있다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떻게 변할까? 정서전염이라는 현상은 찰스 다윈, 칼 융과 같은 대가들에 의해서도 일찍이 주목된 바 있으며 최근 신경과학과 다양한 실험 방법을 통해 활발히 입증되기 시작했다. 공감 및 정서전염에 관한 신경학적 연구들은 개인의 감정이 한 개인에게만 속해있다는 개체주의적 세계관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신경학적 연구 결과들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개인이 경험하는 정서가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아주 짧은 자극에 의해서도 자동적으로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으며, 타인의 표정 뿐 아니라 몸짓과 심지어 인간의 형태를 한 기호들의 움직임조차도 개인의 정서를 촉발할 수 있다고 밝혀져 있다. 즉, 잠깐 본 듯 만 듯 스치고 지나가는 타인의 표정으로도, 기운 없이 걸어가는 뒷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확진자와 같은 공간 속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우리가 감염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는 것처럼 정서적 고통도 바이러스처럼 전염될 수 있다면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어떻게 대하게 될까? 고통스러운 사람을 마치 확진자를 대하듯 격리 시키고 피해야만 할까? 내가 우울하다면 자가격리하며 사람들을 만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우울은 전염성이 강한 감정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정서는 인류 공동의 번영을 위해 진화해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우울할 때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자신의 우울감을 퍼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집 안에 머물게 하는 기능을 갖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 우울할 때 인간의 자기반성은 극에 달해서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고 살아온 삶을 돌이켜 반성하게 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순기능을 갖기도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불가피하게 늘어버렸다. 누군가는 그렇게도 바라던 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다며 좋아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수입이 줄어들어 고통을 호소한다. 불가피한 칩거라면 우울하게 보내기보다는 자기성찰의 소중한 시간으로 귀하게 보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육아대란으로 고통을 겪는 부모들이며, 사람들의 소비 감소로 인해 큰 타격을 입고있는 자영업자 뿐 아니라 코로나19로 고통 받는모든 사람들은 자기성찰의 사치를 부릴 여유가없다. 나보다 더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그들 모두가 건강하고 평화롭기를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바라는 마음의 방역과 자비의 서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자비심을 갖는 것은 면역기능 향상에도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하니 자리이타가 진정 둘이 아닌 셈이다. 지금 이 순간 실천할 수 있는 ‘자비 방역’은 아주 쉽고 간단하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평안하길 바라듯이 지금 마주친 저 사람의 몸과 마음도 평화롭기를! 고통 받는 모든 생명들의 몸과 마음이 평화롭기를!’ 하고 진정으로 기원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자비 마스크’도 있다. 마스크 쓴 얼굴 위로 평화롭게 미소짓는 눈빛을 전달하는 것. ‘성냄 없는 얼굴이 참 다운 공양구’라는 문수보살의 게송은 우리 자신의 평화로운 얼굴이 상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정서전염의 현상을 한 마디로 드러내준다. 나의 미소가 상대에게 최상의 공양구가 될 수만 있다면, 우리 각자는 이 비상시국에도 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하고 타인에게도 평화를 전달할 수 있는 ‘마음관리본부’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바른 서원을 세우고, 자비로운 마음 밭을 가꾸기 위한 이야기 하현주 박사의 ‘자비정원’을 새롭게 연재한다.

하현주 박사는 동국대에서 선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심리학과 임상 및 상담심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정서전염과 자비에 대한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공인 상담심리사1급 및 주 슈퍼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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