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조선 활자의 신비 속으로
페이지 정보
호수 20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6-10-07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서 하 보 살 의 불교문화산책페이지 정보
필자명 강지연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강지연 구성작가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10:32 조회 2,320회본문
활자, 살아 움직이는 글자 활자의 나라, 조선展 6월 21일~11월 13일, 상설전시실 1층 고려 3실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1926년 11월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 어연구회를 주축으로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해 행 사를 거행한 것이 한글날의 시초인데,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1932, 1933년에는 양력 10월 29일에 행사를 치렀으며, 1934~45년에는 10월 28일에 행사를 치렀다. 10월 9일로 한글날이 확정된 것은 1945년이다. 근거로 삼았던 것이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인데, 말문에 적힌 날짜에 근거해 10월 9일이 한글날이 된 것이다. 한글날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6월 21일 시작한 ‘활자 의 나라, 조선’ 전은 관람객의 인기에 힘입어 전시가 두 달이나 연 장됐다. 11월 13일까지 이어질 ‘활자의 나라, 조선’으로 여행을 떠 나보자.
16세기 명나라 판본에서 유행하던 딱딱한 인서체를 본떠
교과서에서 만든 금속활자
조선 제작 활자 82만여 자 최초 공개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이번 테마전시에서 국립중앙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국가 제작 활자 82만여 자의 전 모를 최초로 공개했다. 이 활자들은 대부분 17~20세기 초 중앙 관 청과 왕실에서 사용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인쇄 출판을 담당하는 관청인 교서관 등에서 국 가나 왕실에 필요한 책을 만들었다. 언제 만들었는지도 알 수 있 고, 이 활자로 찍은 책들도 대부분 남아 있다. 한 왕조에서 일관되 게 사용하고 관리한 활자가 이처럼 많이 남아 있는 예는 다른 나 라에서 찾아볼 수 없다. 특히 50만여 자에 달하는 금속활자는 세 계 최대 규모이며, 질적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조선시대 금속활자는 글자체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제작 기술 도 정교하여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검박함을 미덕으로 여겼 던 유교 국가 조선에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예술품을 만드는 대 신, 금속활자와 이것으로 인쇄한 책에 조선시대 예술과 기술을 집 약시켰던 것이다. 많은 활자가 체계적으로 남아 있는 곳이 세계에서 ‘국립중앙박 물관’ 밖에 없다. 금속활자의 경우 서양의 금속활자도 이처럼 체계 적으로 많이 남아 있는 예는 없다. 근대 이전에 제작한 활자는 중국과 일본에도 남아있지만 금속 활자는 중국에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활자 인쇄술을 가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만든 금속활자 3만여 자가 남아있을 뿐이다.
목활자는 중국과 일본에도 상당수 남아 있지만 제작 시기나 활 자의 규모, 품질 면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의 수준을 따를 수 없다고 하니 활자문화가 얼마나 발달했는지 얼마나 뛰어났는 지 알 수 있다. 국가와 왕실의 보물이자 전유물로 여겨졌던 금속활자는 유교 통치를 위해 필요한 책이나 통치자의 권위를 보여주는 책을 간행 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1403년(태종 3) 태종이 조선 최초의 금 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든 이후의 통치자들은 수십 차례에 걸쳐 수백만 자의 활자를 만들었지만, 임진왜란 이전 조선의 활자 는 15세기에 주조된 한글 금속활자 30여 자 외에는 남아 있지 않 다.
한글 목활자 18~19세기 본관 3381, 3382
활자, 살아 움직이는 글자
‘활자(活字)’는 살아 움직이는 글자라는 뜻이다.
글자 조각들을 옮겨가며 여러 내용을 인쇄하는 데 거듭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활자의 핵심적인 개념이다. 활자는 11세기 중국 송나라에서 필승(?~1051)이 처음 발명했 지만, 흙을 구워 만든 탓에 실용화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활자의 재료를 금속으로 대체해 활자 인쇄를 본격화한 것은 고려 (918~1392)였다. 하지만 고려는 한자라는 문자의 특성이나 서구 와 다른 역사적 배경으로 활자 인쇄술을 발명하고 근대를 여는 혁신적인 매체를 선도하는 영예를 구텐베르크(1398?~1468)에게 내주었다. 학자들은 이에 대해 사회적 입장의 차이에 주목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왕실 주도로 책이 만들어진데 반해 서구에서는 출판의 영역이 민간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대량화, 근대화 물살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왕실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였기 때문 에 가능했다는 견해는 구텐베르크가 활자 인쇄에 대표적인 인물 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조선(1392~1897)은 다양한 책들을 인쇄하기 위해 고려시대에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를 발전시켰다. 통치를 위해 책이 절대적으 로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활자를 제작했다. 1403년(태종 3)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를 만들면서 태종이 한 말에서 이러한 의도가 잘 드러난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책을 널리 읽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외에 있어 중국의 서적이 좀처럼 오지 않고 판각본은 훼손되는 데다가 또 천하의 온갖 서적을 다 판목으로 새기기는 어렵다. 내 가 구리쇠를 부어서 활자를 만들어 놓고 책을 얻는 대로 인쇄하고 자 한다. 그리하여 널리 전파한다면 진실로 무궁한 이익이 될 것 이다.” 태종의 이러한 생각은 조선의 왕들이 금속활자를 제작하고 책 을 간행하는 일을 토이에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이게 정착시키 는 역할을 했다. 주로 한자 중심으로 활자가 만들어졌지만 한글 활자의 수 역시 무시 못한다. 왕세자 교육, 백성 교화 등에 한글 활자를 사용했던 것.
국립중앙박물관에 한글 금속활자 50여 자와 한글 목활자 1만 3천여 자가 남아있다. 이 가운데 금속활자 30여 자는 15세기에 만 든 활자로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 자이다. 1455년 강희안의 글자체로 만든 을해자로 인쇄한 <능엄 경언해>에 쓰인 을해자 병용 한글 활자체이다. 각 시대별 의미를 곱씹으며 활자들을 살펴본다면 조선 인쇄술의 뛰어남에 더욱 매 료될 것이다.
한글 금속활자 15세기, 17~18세기 본관 3368, 3369
7개 주제로 활자 의미 조명
이번 전시는 활자나 책을 개별적으로 설명하는 기존의 전시 방 식을 탈피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를 7개 주제로 나누어 소개함으로써, 조선시대 정치와 문화사에서 활자의 제작과 사용 이 갖는 의미를 조명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활자 정리와 조사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고증되지 않은 활자들의 실체를 밝히고,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활자들을 소개하는 의미 있는 전시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정조가 정리자(整理字)를 만드는 과정에 참 고용으로 수입한 목활자를 처음 공개해 시선을 끌고 있다. 이 활자 는 청나라 궁중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13세기에 위그루 문 자로 만든 활자를 제외하고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이다.
임진자 18세기 본관 3359, 3360, 정리자 18~19세기
본관 3364, 3365
활자보관장 전모 첫 공개
활자와 함께 전해 오는 활자 보관장들의 전모도 처음으로 공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시를 위해 지난해부터 이 장들을 수리 복원했으며, 그 결과 장의 제작연대와 활자 보관방법 등을 밝힐 수 있었다. 3종의 장 가운데 위부인자(衛夫人字) [갑인자 (甲寅字) 의 별칭] 은 나무 나이테 분석 결과 17세기에 만든 것으로 밝혀졌 다. 이는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목가구가 별로 없다는 점에 서도 의미 있는 자료이다. 정리자(整理字)를 보관했던 장에는 안쪽 깊숙한 곳에 소목장(小 木匠) 이름과 제작연대가 써있어, 이 장이 1858년(철종 9)에 정리 자를 다시 주조할 때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활자장들의 서랍 이곳저곳에 나온 기록과 조선시대 활자의 수 량을 기록한 목록인 자보(字譜)를 대조하여 활자 보관 순서와 방 식을 알 수 있었다. 당시 활자들은 한자자전(字典)과 달리 부수를 줄여, 효율적으로 보관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획수가 아니라 자주 쓰는 글자와 그렇지 않은 글자로 나누어 보관했다. 이런 방 식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조선시대 활자를 다루던 사람들의 독창적인 방식이다. 또한 여러 개의 서랍을 끼우는 방식의 활자장은 중국이나 일본 의 활자 보관 용기와도 다를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유사한 형태 를 찾지 못할 정도로 독특하다. 활자장의 설계 역시 당대 책을 인 쇄하던 이들이 고안한 그들만의 독특한 활자 분류 보관 방식에 따 라 특별히 고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시장 한 가운데 8×1.5M의 면적에 활자를 보관했던 옛 서랍에 넣은 활자 5만여 자를 펼쳐, 조선이 ‘활자의 나라’였음을 실감할 수 있도록 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자의 의미와 활자장 조사, 복 원 과정을 보여주는 영물실도 마련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활 자를 활용한 사자성어 게임을 즐길 수 있으며, 3D 프린트로 출력 한 활자 복제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신비한 ‘활자’의 세상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활자의 나라, 조선’ 展. 놓치지 말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