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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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4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07-07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종단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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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0 03:49 조회 2,26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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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오세대 제도

6년간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에서 싯달타 태자는 드디어 깨달음을 얻으셨다. 생로병사의 문제로 고민하고 번민을 거듭 하던 고타마 싯달타는 호화로운 궁중생활을 버리고 출가를 한 후 오랜 수행 끝에 드디어 성도 하여 부처님이 되었다. 그러나 혼자 법열 에만 젖어 있지 않고 무명 중생들을 제도하시고자 전법 의 길을 택하셨으니 참으로 깨달으신 참 부처님이시자 인류의 큰 스승이시다. 생로병사의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의 아픔과 슬픔은 곧 석가모니의 아픔이 고 슬픔이었다. 중생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과 다름없이 보는 자비심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대자대비 하다고 하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을 펼친 것은 바로 중생을 제 도해야한다는 한 마음에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자비심이 없 었다면 석존은 독각 에 머물러 혼자서 법열 에 빠 져 있었을 것이다. 마냥 깨달았다고 해서 우리는 각자 , 부처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남을 위하여 법을 펼쳤을 때 우리는 부처님이라 부른다.

석존께서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일체중생을 위하여 법을 펼 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중생 제도와 전법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부처님의 참 제자 가 되는 불교의 바른 수행이다. 부처님 법을 전하는 일에 소 극적이어서는 안된다. 남에게 법을 권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법을 즐기고만 있다면 그것은 참 불자가 아니다. 나혼자 열심 히 절에 다니는 것이 불교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 미 불교가 아니다. 내 가족, 내 이웃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고 같이 닦아 나갈때 부처님의 참 제자라 말할 수 있고 살아 있 는 불교인 것이다. 부처님의 법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하고 전 하는 것이 대승보살의 길인 것이다.

중생제도를 위하여 총지종단에서는 오세대 제도 를 화도방편으로 삼고 있다. 오세대 제도 는 다섯 가구를 교화하여 불문 에 들게 하는 것 을 말하는 것으로 총지종에서만 유일하게 쓰여지고 있는 말이 다. 종조 원정 대종사께서 제정하신 오세대 제도는 바로 석존 의 오비구  제도에서 출발하고 있다. 석존께서 깨달음 을 이루신 뒤에 바라니시의 녹야원으로 가시어 아약 으 교진여 등의 다섯 비구를 교화하게 되었는데, 다섯 비구는 멀 리 석존이 오는 것을 보고 ‘청정한 행에서 퇴전한 사문’ 또는 ‘도심 에서 타락한 행자어퀘 라고 경시하고 서로 약속 하기를 ‘불타에게 공경존중하는 태도를 표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석존이 가까이 오자 그들은 부지불식 간에 함께 일어나서 인사하고 혹은 자리를 펴 드리고 혹은 의발 을 드리며 머리를 발에 닿도록 조아리고 가르침을 간청했 다. 석존은 그들을 위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중요한 도 로 써 고집멸도 의 4성제이"를 설하자 이것을 듣 고서 아약 우 교진여가 최초로 번뇌를 단제 하여 아라한과를 완전히 증득하고 다른 사람도 차례로 번뇌를 끊고 아라 한과를 완전히 증득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석존의 초전법륜  이자 최초의 하화제도 였던 것이다. 종조 님의 화도방편의 첫걸음은 바로 석존의 오비구 제도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다섯 세대는 고사하고 다섯 사람을 부처님의 가르침 속으로 인도하였는지 스스로 반성해볼 일이다. 나는 과연 오세대 제 도를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나의 신행생활을 점검해보 는 계기가 된다. 그런 점검이 없다면 나의 신행은 진전이 없 다. 부처님의 법, 가르침을 다른 이에게 전하여 주었을때 가장 큰 공덕이 있는 것이다. 무량한 공덕을 얻는 길, 그것은 바로 내 이웃을 제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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