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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濯足) 조상들의 지혜로운 피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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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0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6-09-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이야기/칼럼 서브카테고리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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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종열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총지종보 편집장 김종열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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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09:33 조회 1,8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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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濯足) 조상들의 지혜로운 피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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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탁족도


올 여름은 무난히 더웠다. 전 세계가 불 덩이다. 1873년 규격화 된 기상관측이 처 음 시작된 후로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 됐 다. 서울의 날씨만 해도 7월 1일부터 8월 28일까지 총 18일 동안 낮 최고 기온이 34도를 넘어 찜통 같은 날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기사에는 지난 1880년부터 2015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변화를 보면 1970년대 후반부터 온도가 급상승 한다는 것이다. 2015년에는 시작점인 1880년 보다 무려 0.9도가 상승했다. 물론 숫자상으로는 그리 큰 변화는 없 다. 그러나 지구라는 별 전체의 온도 상승 으로 보면 무서운 결과들을 초래하고 있 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두고 지구 온난화 라 부른다. 

주된 원인은 대기 중의 이산화 탄소, 메탄가스 등 온실가스(Green house gas)의 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이른바 온 실효과가 발생하여 지구 표면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 내려 지구상 평균 해수면이 상승했다. 남 태평양의 일부 섬나라는 물속으로 사라 져 가고 있다. 온난화의 영향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강한 자외선으로 농작물이 피해 를 입고, 4대 강은 온통 녹색으로 물들었 다. 동. 식물의 분포도 확연한 변화를 보이 고 있다. 아열대에서 자라는 물고기나 식물들 이 이미 한반도 남쪽으로부터 서서히 북 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증가 로 배기가스의 배출이 늘어나 공기의 질 은 더욱 나빠졌다. 

당장의 변화를 눈으로 는 감지하지 못하지만 지구 온난화는 서 서히 우리 주위를 감싸오고 있다. 에어컨디셔너의 보급이 일반화 된 지 금은 인위적으로 공기를 차게 만들어 한 결 간편하게 온도와 습도를 조절한다. 그 러나 선풍기도 없던 옛 조상들은 어떻게 더위를 피했을까?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피서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대표적인 피서법으로 흐르 는 물에 발을 씻는 탁족(濯足), 시원한 폭 포를 관람하는 관폭(觀瀑), 강에서 뱃놀이 를 즐기는 선유(船遊), 고전을 읽으며 보 내는 독서(讀書), 물고기를 잡아먹는 천렵 (川獵) 등이 있다. 이들 중 관폭과 선유, 독서, 탁족은 선비 들의 피서법이고, 천렵이나 탁족은 서민 들의 피서법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옛 그 림들을 찬찬히 들러보면 유독 눈에 뛰는 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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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탁족도


한가로이 달을 보며 맑은 시 냇물에 발을 담구고 있는 사람이 그려진 그림, 바로 탁족도(濯足圖)다. 산간 계곡의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쫓는 모습을 그린 갓이다. 탁족은 전통적 인 선비들의 피서법이다. 선비들은 몸의 노출하는 것을 꺼렸으므로 발만 물에 담 근 것이다. 그러나 발은 온도에 민감한 부 분이고, 특히 발바닥은 온몸의 신경이 집 중되어 있으므로 발만 물에 담가도 온몸 이 시원해진다. 또한 흐르는 물은 몸의 기 (氣)가 흐르는 길을 자극해 주므로 건강에 도 좋다. 음식이나 기구로 더위를 쫓는 것 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더위를 잊는 탁족 은 지혜로운 선비들의 피서법이다. 탁족은 피서법일 뿐만 아니라 정신 수 양의 한 방법이다. 선비들은 산간 계곡에 서 탁족을 함으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씻 었다. 

탁족이라는 용어는 본래 중국의 고 전인 『초사(楚辭)』와 관련이 된다. 『초 사』의 ‘어부편(漁夫篇)’을 보면, 늙은 어 부가 부르는 노래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 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줄여서 ‘탁영탁족(濯纓濯足)’이라고 한다. 이 노래 는 도가 행해지는 좋은 세상일 때는 조정 에 나아가 뜻을 펼치고, 도가 행해지지 않 는 난세일 때는 숨어산다는 의미다. 따라 서 탁족은 단순히 발을 씻는 행위가 아님 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고사를 음미하 며 마음의 이상향에 깃드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의 맑음과 흐림이 그러하듯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의 처신 방법과 인 격 수양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 부터 탁족은 선비와 화사들에게 좋은 소 재가 됐다.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에는 이경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이정의 노옹탁 족도(老翁濯足圖), 작가 미상의 고승탁족 도(高僧濯足圖), 최북의 고사탁족도(高士 濯足圖)가 있다. 모두가 간결한 그림들이 다. 중국에서는 송(宋)나라 때 탁족을 소 재로 한 그림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는 조선 중기 이후에 등장한 것을 고려하 면 선비들의 탁족 풍속은 중국에서 유래 한 듯하다. 서민들의 피서법인 산천유람(山川遊 覽)에서 탁족을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풍 속이라고 여겨진다. 각박한 현대문명을 떠난 자연친화적이고 소박하고 건강한 피서법이다. ‘탁족도’로 유명한 인물은 왕족출신의 선비화가인 낙파 이경윤(1545-1611)이 다. 

그의 그림으로 전하는 「고사탁족도 (高士濯足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뜻이 높은 선비(高士)가 나무 그늘에 옷을 풀어헤치고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다. 언 듯 보기에도 우리의 선비는 아닌 것 같고 중국풍의 인물로 보인다. 옆에는 동자가 차 혹은 술을 대령하고 있다. 또한 여름철 수행에 지친 노승이 계곡 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을 그린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의 「노승탁족도(老 僧濯足圖)」다. 숲속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냇가에서 한 스님이, 로댕의 「생각하 는 사람」 같은 포즈로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허벅지까지 바지를 올리고 다리를 씻고 있는 것 같다. 깊은 산속 수행자가 더위를 피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느껴 진다. 올해처럼 더위가 사상 초유의 기록을 갱신 할 때는 모두가 산과 바다로 떠나고 싶어 한다. 해수욕장과 워터파크에 몸을 담그고, 산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거나 야외에서 캠핑을 하며 지친 일상을 잠시 나마 벗어버린다. 그러나 혹서의 기간도 한때라 가는 곳 마다 사람들로 붐비는 것은 피할 수가 없 다. 이 여름 탁족도 바라보며 마음으로 나 마 깊은 계곡에 발을 담그고, 밝은 달을 보며 월륜을 관하는 내 모습을 떠 올려 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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