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정의 여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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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1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02-02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설법/경전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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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1 05:13 조회 2,689회본문
묘정의 여의주
경주 금광정
때는 신라 38대 원성왕 8년(792) 봄. 경주 황룡사 지해법사를 궁중으로 모 셔 50일간 화엄산림법회를 열었다. 지 해 스님을 시봉하는 묘정은 발우를 든 채 우물 속을 들여다봤다. 한낮의 물 속에는 한가롭게 떠가는 구름을 등진 사미승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묘정 은 한동안 물 속의 사미승을 바라보다 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내가 아냐. 물 속의 사미는 묘정이 아니야.』
그는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며칠 전 궁녀들이 주고받던 소리가 아직도 귓 전에 생생했다.
『묘정 사미 얼굴은 와 그러노?』
『스님 되길 잘했지. 그 얼굴 보고 누 가 시집가려 하겠나?』
묘정은 아직껏 한 번도 자기 용모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나를 본 사람이 까닭없이 미움을 갖 다니….』
묘정은 합장하고 눈 을 감은 채 부처님 앞 에 엎드렸다. 마음을 진 정하려고 안간힘을 썼 다.
그는 벌떡 일어나 스 님에게 뛰어갔다.
『스님, 어찌하면 좋습 니까?』
『왜 무슨 일이 있었 느냐?』
『스님, 온몸에 증오가 가득합니다.』
『증오라니? 너 누구 를 어떻게 미워한단 말 이냐?,
묘정은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고했다.
『묘정아, 네가 남을 미워하는 -, 너 자신을 남보다 아끼는 까닭이며 쏙의 .너를 추악하게 본 것 또한 너의 는 왕의 자만심 때문이니라. 오늘부터 너를 보 는 사람이 기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 이 일도록 수도해라.』
묘정은 곧장 법당으로 갔다 부처님 앞에 무수히 절하며 기도했다. 그러나 미움은 가시지 않고 홀로 버림받은 외 로움이 엄습했다.
『부처님, 모든 사람이 소승을 보았을 때 환희심을 느끼고 서로 사랑하도록 착한 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열흘, 한 달이 자나도록 쉬지 않고 기도했다. 밥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기도를 계속했다.
묘정은 설법을 듣기 위해 바다에서 올라와 우물에 머무는 자라에게 먹이 를 주며 자신의 소원을 독백하는 버릇이 생겼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며칠 후면 자라 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자라야, 내가 네게 먹이를 주기 시 작한 지도 벌서 4순(40일)이 지났구나. 이제 열흘 후면 너와 헤어져야 하는데 아무리 미물이지만 네게도 정이 있겠 지. 나에게 무슨 정표를 하지 않겠니?』
묘정이 말을 마치자 자라는 홀연 목 을 길게 빼더니 오색. 열롱한 구슬을 입 밖으로 내밀었다.
묘정은 놀랐으나 구슬을 받아 품에 간직했다. 기도는 계속됐고, 서서히 그 의 가슴에서 답답하고 어두운 그늘이 가시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을 자비의 눈길로 보게 됐다. 물 속의 모습이 자 기가 아니라는 생각도 사라졌다.
사람들도 그를 대하면 어느덧 환희 심을 느기게 됐다.
이제까지 묘정을 외면하던 사람들도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여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신라 백성 모두가 묘정을 사랑했다. 법회가 끝니뜬 날 법당에서 비롯하여 왕후와 공주 그리고
문무백관이 함께 공양을 하게 됐다.
『묘정 사미, 법회가 끝나거든 돌아가 지 말고 짐과 함께 왕궁에서 지내도록 해라니
왕은 한시도 묘정을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화려한 궁중 생활에 묘정 은 그만 기도를 잊고 있었다.
그 해 가을. 나라에서는 당나라 천자 에게 하례 올릴 정사사신(7허허6)을 보내게 됐다. 간택된 사신은 한사코 묘 정과 함께 가길 원했다.
『상감마마, 이번 길은 단순한 새해 하례만을 위함이 아니오니- 묘정 스님 과 함께 가도록 윤허하여 주옵소서.』
『험한 뱃길에 묘정은 왜?』
『묘정은 비범한 도를 지니고 있으므로 당나라에 가서 닥칠 난관 극복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아옵니다.』
왕은 허락하였다.
수만 리 뱃길을 따라 당나라에 도착 한 묘정은 천자를 비롯 문무대관의 사 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행정을 맡은 대신 지관이 천자에 게 아뢰었다.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묘정은 조금도 존경할 인물이 못되옵니다.』
『지관은 무슨 말을 하는고?』
천자는 노하여 지관을 노려봤다.
『폐하, 황공하오이다. 세상사람들이 묘정에게 사랑을 느낌은 그 인품과 상 에 있는 것이 아니옵고".』
『그렇다면?』
『묘정이 무엇인가 신령한 물건을 몸 에 지닌 탓인 줄 아옵니다.』
묘정의 품속에서 영롱한 구슬이 나 오자 왕은 추상같은 호령을 내렸다.
『일찍이 짐이 네 개의 여의주를 갖고있다가 지난 봄 그 하 나를 잃어 버렸다. 그 것이 묘정의 몸에서 나 오다니… 내 너를 참할 것이로되 사미임을 가 상히 여겨 목숨을 살려 주니 이 길로 곧 네 나 라로 돌아가거라.』
묘정은 허둥지둥 신 라로 돌아왔다.
실의에 빠진 그의 얼 굴에서는 자비로운 미 소의 빛이 가시었다. 사람들은 다시 그의 용 모를 비웃었다.
묘정은 다시 한번 여 의주를 갖고 싶어 우물가에 나와 자라가 나타 나기를 기다렸다. 자라는 나타나지 않 았다. 여의주와 자라에 대하 생각과 중오가 뒤엉켜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쳤 다.
사람들은 침식을 잃고 우물만 들여 다보는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다.
어둠이 깔리고 물 속의 얼굴이 보이 지 않았다. 묘정은 눈을 감았다. 귓전 에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발길을 옮겨 표연히 사라진 그는 자라와 함께 다시는 돌아오지 않 았다.
그 우물은 남아 있는데….
“일관된 노력이 쌓이면, 본체의 빛을 발할 수 도 있겠지만 견성으로 가는 여정의 모습이 방편이어서는 안되겠다 는 생각이 든다....”
-심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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