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밀교의 삼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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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0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4-03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연재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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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15:02 조회 2,454회본문
침묵과 밀교의 삼밀수행
침묵은 금(金)인가 은(銀)인가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며, 침묵도 은이요, 웅변도 금이다.
‘침묵은 금(金)이요, 웅변은 은(銀)이다’라는 말 이 있다. 영국의 비평가인 토머스 칼라일의 말이 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것 보다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은(銀) 보다 금 (金)이 훨씬 더 값이 나가는 것이므로, 침묵이 웅 변 보다 나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고대에 잠시 금보다 은이 더 귀한 때가 있긴 했지만 역사적으 로 금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었기에 그렇게 비유 되었다. 이에 침묵이 최상이라고 말하는 명언들 이 많다. 세익스피어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 최상 의 사람’이라고 했고, 보봐르는 ‘사람은 말을 하 기 보다 입을 다물고 있음으로 해서 자신이 한층 더 빛이 난다’고도 했다. 세네카는 ‘침묵할 줄 모 르는 자는 이야기 할 줄도 모른다’고 했다.
침묵 을 금(金)으로 여기는 명언들이다. 침묵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의 지가 약한 사람이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으 므로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 말이 신뢰받지 못할까 두려워 하 기 때문에 침묵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거절 당하 는 것이 두렵고, 공격을 받을까 걱정이 되어서 말 을 꺼내지 않는다. 또한 반대의견이 두려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셋째는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서 말하지 않 는 경우이다. 말을 잘못 했다가는 모처럼 얻은 지 위를 잃을까 봐서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또 한직으로 쫓겨 날까 두려워서 말을 않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말을 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또 말하기가 싫어서, 상대가 미워서, 입씨름 하기 싫어서, 불필요한 논쟁이 싫어서, 피 곤해서, 생각이 없어서, 사이가 불편해질 것 같아 서, 오해받을 것 같아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침묵하는 경우도 있다.
침묵은 최선인가, 차선인가
과연 침묵만이 최상이고 최선일까. 그렇지 않 다. 그래서 ‘침묵을 은(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금이라 하지 않고 은이라 한 것은 무엇 때 문일까. 침묵을 최상, 최선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 이다. 그 침묵은 차선(次善)에 불과한 것으로, 침 묵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다. 침묵해봐야 좋 을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침묵하고 있 어서는 안된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침묵을 아 예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침묵은 멸시의 가 장 완전한 표현이다’, ‘침묵은 자신없는 사람이 택하는 가장 안전한 방책이다’라는 말은 여기에 해당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중요한 정책을 결정했는데,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책이 실 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국무위원들이 너도 나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실패를 예감했다면서 뒤늦게 한마디씩 했다. 케네디가 이렇게 말했다. “왜 당신들은 그 당시에 반대의견을 말하지 않았 소. 왜 가만히 있었던 것이오.” 국무위원들이 대 답했다.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아서 모두가 찬성하는줄 알았고, 그래서 반대의견을 내지 않 았다”고 했다. 여기서 몇 가지 문제점을 보게 된다. 첫째는 ‘반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당연히 모두가 찬성했다’라고 단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는 반대하겠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것이다.
또 ‘아무도 반대하지 않 는데, 괜히 나혼자 반대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비 난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등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침묵의 폐해를 엿보 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과연 침묵만이 올바른 것인가. 침묵은 이와 같이 생각지도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고,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 다. 침묵으로 인하여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 셈이 다. 그러므로 침묵이 반드시 찬성을 의미하는 것 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를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이를 환언하면, 침묵은 찬성과 반대를 모두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묵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양면성에 의해 잘못 된 판단으로 케네디처럼 의사결정에 오류를 범 할 수 있다. 침묵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가는 낭 패를 볼 수 있다. 착각과 그릇된 판단으로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 속에는 항 상 반대와 비난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침묵 그 자체를 조심해야 한다. 말이 없다고 속까 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침묵 보다 웅변이 더 큰 힘을 발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큰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웅변은 금이요, 침묵은 은이라 고 해도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침묵과 웅변은 득(得)이 될 수도 있고, 때에 따라 독(毒)이 될 수도 있으며, 실(實)이 될 수도 있고, 또 화(禍) 가 될 수도 있다. 침묵과 웅변은 양날의 칼과 같 은 것이다. 국정농단의 배경에는 이러한 침묵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불교의 수행에도 침묵이 있다.
묵언정진이다.
구업을 짓지 아니하고, 나를 살피는 수행이다.
불교의 수행에도 침묵이 있다. 바로 묵언정진 이다. 묵언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묵언을 통 해 구업을 짓지 아니하고, 나를 살필 수 있다. 나 의 안팎을 살피고 관찰하는 수행이다. 이러한 수 행에 위빠싸나도 있다. 자기 자신의 안과 바깥 경 계를 살피고 관찰하는 수행법이다. 또 침묵으로 일관하는 선수행법에는 간화선(看話禪)과 묵조 선(黙照禪)이 있다. 간화선은 화두를 들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수행법이며, 달마대사로부터 당나라의 조주선 사, 송나라의 대혜종고 선사로 이어진 중국 임제 종의 선불교 수행법이다. 이와 달리 묵조선은 고 요히 앉아서 좌선만하는 수행법으로 중국 조동 종에서 선양된 좌선수행법이다. 묵묵히 좌선하 는 이들의 선수행은 모두 침묵을 공통분모로 하 고 있다.
밀교에도 침묵의 수행이 있다
관법과 진언염송이다.
밀교의 수행에도 침묵이 있다. 바로 밀교의 관 법(觀法)과 금강염송(金剛念誦)·삼마지염송(三摩 地念誦) 등이다. 관법(觀法)이란 어떤 특정대상 을 마음 속으로 떠올리는 것이다. 금강염송은 진 언을 외울 때 입을 다물고 혀만 움직이는 것이고, 삼마지염송은 자기 몸에 진언을 새기는 것을 관 하는 염송이다. 이 수행법을 삼밀수행이라 한다. 삼밀이란 입으로 진언을 외우는 구밀(口密), 몸 과 손으로 결인을 하는 신밀(身密), 뜻으로 본존 과 종자 등 특정 대상을 관하는 의밀(意密)을 말 한다.
이 셋을 합하여 행하는 수행이 삼밀수행이 다. 그 가운데 의밀의 관법은 본존이나 진언, 종 자, 불상, 소리, 문자, 뜻 등을 관하는 것이고, 구밀 의 진언염송은 진언을 소리를 내서 외우거나 소 리를 내지 않고 외우는 것 등을 말한다. 관법과 금강염송·삼마지염송은 침묵을 기본으 로 한다. 조용한 가운데 한 대상에 집중하여 관하 는 것이 밀교의 관법이며 진언을 소리내지 않고 외우는 것이 금강염송·삼마지염송이다. 따라서 관법과 염송은 침묵을 필요로 하므로 말을 해서 는 안된다. 서원당(誓願堂- 총지종의 법당)에서 떠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조용하게 염 송하고 침묵 속에서 관법을 행해야 할 것이다. 구 업을 짓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기도와 불공 뿐 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침묵과 웅변을 지혜롭 게 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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