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비친 중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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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2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9-03-08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기고/사찰음식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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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1 07:31 조회 2,706회본문
중국 유학 시절 겪은 에피소드를 써달라 논 부탁을 받았다. 난감했다. 어른이 부탁 하는 것이니 거절할 수도 없고, 어떤 이야 기를 써야 할지, 과연 내가 쓰는 글들에 관심이 있으실지 말이다.
처음부터 단순한 여행을 위한 것이 아 닌, 게다가 주변 상황을 고려하면 도저히 떠날 수 없던 상황에 힘들게 결심하여 공 부를 위해 떠났던 것이라, 천진의 항구에 도착하여 미엔디(퓨)라는 노란 택시를 타고 중앙선도 그려져 있지 않은 도로를 막무가내로 내달릴 때도, 러닝셔츠를 가슴 팍까지 둘둘 말아 올려 수박 한 덩이를 품 은 듯한 배를 길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 고 있는 중국인들을 볼 때도, 재미있다, 신기하다라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정신 바 짝 차리고 버텨내야 한다는, 익숙해져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뿐이었다. 그래도, 이야기를 풀어보려; 지난 ’얘의 시간을 되 돌리다 보니,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중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여기저기 귀동 냥으로 들은 얘기 중에, 중국인들에 대하 여,좋은 얘기보다는, 나쁜, 부정적인 이야 기틀이 훨씬 많았던 것이 단단히 한 몫을 한 듯하다. 게다가, 중국에 도착하여 만난 한국인들에게서 들은 중국인들의 행태는, 특히, 유학생들이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 는 집주인들의 파렴치하고, 뻔뻔한 행태는 나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집주인과 조금 다투게 되자, 세입자인 유학생이 없는 사이 집 현관 열쇠를 바꾸 어 버린 집주인, 벽에 못을 박았거나, 냉 장고 사용설명서를 잃어버렸다고 보증금 (중국에는 ‘전세’개념이 없고, 세입자들은 모두 ‘월세’ 를 살아야 하는데, 한 번에 3 개월, 또는 6개월 치 집세를 한꺼번에 선 불로 계산하며, 보통 대부분의 가전제품과 가구가 갖추어져 있기에, 이것이 훼손되거 나 고장 났을 경우의 배상, 또는 계약 위 반에 대비하여 월세 한 달치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받아둔다)을 못 내어 놓겠다며 막무가내인 집주인, 시도 때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집주인(비상시를 대비하여, 집주인이 여분의 열쇠를 가지고 있어야 하 는 것이 규정이다.) 등등.
뭐, 여기에 대응하는 한국인들의 보복 또한 만만치 않다. 이렇게 집주인과 좋지 않게 끝이 나게 된 한국인들 중에는 틈나 는 대로 예전 살던 집을 찾아가 몰래 현관 문 구멍에 씹던 껌을 집어넣어, 다시 바꿀 수밖에 없게 만든다던가, 방을 빼기 전 국 제 전화를 무지하게 사용해, 상상을 초월 하게 나오는 전화비로 집주인의 뒤통수를 친다던가, 실제로는 싸게 산 소파를 무지하게 비싼 거라고 속여 주인에게 되파는 등의 갖은 방법으로 보복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입자 라는 약자의 입장이기에 많은 한국인 들이 피해를 보는 건 어쩔 수없는 현실 이었다.
이제 갓 중국 생 활을 시작한 나에게 들리는 이야기들이 모두 다 이런 이야기들뿐 이니, 한동안 모든 중국 인들을 대할 때면, 전투 태세를 갖추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곧이 곧 대로 믿지 않고,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 경우는 무엇이 있고,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를 고민하곤 했으 며, 집주인과 만날 일이 있을 때면, 몇 시 간 전부터 긴장과 불안으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짧은 중국어에 그 들이 하는 이야기의 30%조차 이해하기에 도 벅찬 상황에서, 점점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은 늘어가는데, 설상가상으로 중 국에 도착한지, 한 달 만에 다시 이사를 하고, 집에 있던 냉장고가 고장이 나고, 화장실 변기가 막히는 등, 끊임없이 터지 는 일들을 겪다 보니, 그리고, 이러한 일 들을 다른 한국인들에게 의논할 때면 나오 는 갖은 의견들. 도저히 공부에 집중할 수 가 없었다.
이에 지친 나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믿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 그들 또한 같은 사람이기에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그들도 알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었기에, 무조건 웃는 얼굴로, 그리고 진심으로 대하자, 의 심하지 말고 무엇이든 먼저 주고, 상대방 을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거 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어 실력도 늘게 되어, 의사 전달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 면서, 언어로도 내 생각을,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자, 나를 보는 그들의 시선 또 한 달라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던 집주인 부부와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을 열게 되었 고, 집주인은 틈 날 때마다 나를 저녁에 초대하고, 가구도 바꾸어 주는 등, 처음의 깐깐했던 태도는 어느덧 사라지고, 항상 걱정해주고, 내가 한국에 잠시 들어간다고 하자 부모님께 드리라며 천진의 특산품을 선물하기도 하였고, 내가 북경으로 올라온 후에도 가끔은 전화번호가 바뀌 었다며 먼저 연락까지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 많 은 중국인들을 만나며 그들과 의 만남이 그 저 한 두 번의 가벼운 인연으 로 끝이 나거 나, 서로의 마 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그들 중에 평생 인연을 맺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 중국이라는 나라를, 중국인이라는 사람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 로, 온 몸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 면, 중국인에 대해 호의적으로 얘기하는 이들이 드물다. 무엇보다 이익을 우선시 하고, 속을 알 수 없는 그들의 천성 때문 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진 심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기에, 내가 먼저 진심으로 대하고, 마음을 나눌 자세 가 되어 있다면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깨달았고, 이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날 수많은 이들 에게 마음을 열고, 나를 먼저 보여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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