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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법계궁 관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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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7-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관음사 탐방 서브카테고리 김기자의 사원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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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4 16:45 조회 2,8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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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 법계궁 관음사
육자대명왕 진언으로 중생 구제의 대업을 이루다

관음사

1974년 7월 서면 선교부 개설

1975년 홍포서원당 개칭

1981년 1월 現 관음사 준공

주소:부산시 부산진구 당감2동 64-5

전화:051-896-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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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①-관세음보살 법계궁 부산 관음사 사진②-훈향정공하는 관음사 정인화 주교 사진③-진언수행 정진하는 관음사 보살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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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총지종 관음사 약도


총지종의 본존은 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이 다. 이 진언은 관세음보살의 가지력으로 중생을 구제 하고 재난을 소멸하며 소원을 성취하는 공덕이 있다. 경전에는 「육자진언을 염송하면 자기 있는 곳마 다 한량없는 불보살과 천룡팔부 다 모여, 무량한 삼매 법문이 구족해 칠대 종족이 다 해탈하고 뱃속 가운데 모든 벌레가 모두 보살의 위를 얻는다. 사람이 날마다 육바라밀의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무진변재와 청정 지혜를 얻고, 입 가운데 나는 기운이 다른 사람 몸에 닿으면 그 사람도 모든 진독을 여의고 보살의 위를 얻 는다. 만약 사천하 사람들이 모두 칠지보살의 위를 얻 더라도 그 보살이 소유한 공덕이 육자진언 한번 염송 하는 공덕보다 못하다. 육자진언은 곧 관세음보살의 미묘 본심이라 이 진언을 염송하면 그 사람은 ‘탐· 진·치’ 삼독에 염착하지 않는다. 이 진언을 몸에 지 니면 그 사람의 손이 닿는 곳과 눈으로 보는 곳의 일 체 유정이 속히 보살의 위를 얻어서 영원히 생로병사 의 고를 받지 아니한다.」 관세음보살 대명왕진언의 가지력은 중생의 근기로 는 알 수 없는 신묘한 세계이다. 총지종의 사원 중 관 세음보살 육자진언의 가지력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 는 법계궁이 바로 부산 관음사(주교 정인화)이다. 개 창과 함께 시작된 진언수행의 열기는 지금도 꺼질 줄 을 모르고 타오르고 있다. 




부산의 교통 중심에 우뚝 선 관음사의 창건 


총지종의 입교개종과 함께 일어난 정통밀교의 진 언염송 수행의 불길은 온천장 정각사를 중심으로 퍼 져 나갔다. 밀려드는 교도들은 정각사 계단에서, 복도 에서, 정각사 앞을 모두 채우고도 인근 일대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종단의 최고 어른 이자 총지종을 입교개종하신 원정대성사께서는 지역 별 사원 신축을 명하시고, 관음사, 성화사, 법성사 등 부산 지역 사원 확충에 나선다. 관음사는 입교개종 후 교화의 전진기지로 1974년 7월 25일 부산진구 부암동 124-27에 서면 선교부를 개설하고 초대 주교로 수행월 전수가 부임했다. 다음 해에 이름을 홍포서원당(弘布誓願堂)으로 바꿨다. 이 후 늘어가는 교도들의 수행공간 확보를 위해 1978년 당감동 62-3번지 대지 100평을 매입하고 본격적인 서 원당 신축 불사를 진행했다. 1981년 1월 13일 총지종 부산 관음도량 관음사가 그 위용을 드러내며 당감동 한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관음사는 2층 건물로 1 층에 요사, 2층은 서원당으로 사용중이다. 대중공양 처 건물은 별도로 1개동이 있다. 관음사는 부산의 지도를 펼쳐보면 가장 중심에 위 치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다. 당감동은 예로부터 서 부 경남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교통의 중심지인 서면 과 가깝다. 지명은 1914년 동래군 동평면의 당리(堂 里)와 감물리(甘物里) 두 마을을 합쳐 당감리(堂甘里) 라고 하면서 생긴 동명이다. 감물리는 현재의 당감천 을 옛날에는 감물내, 감물천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 며, 당리는 마을에 오래된 당집과 당산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감동에는 백양산 자락의 신라의 고찰인 선암사가 자리하고, 가까운 초읍동에는 천태 종 사찰인 삼광사가 있어 부산 불교의 중심이다. 1905년 일본의 경부철도주식회사가 부설한 경부선 철도가 당감동을 지나면서 이곳은 철도청 차량기지 와 미군 군수 물자기지가 오랫동안 있었다. 나라의 산 업화가 진행되던 1970년대 당감동은 진양고무 신발 공장과 미원간장공장이 있었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 든 많은 사람이 살던 서민들의 주거지였다. 지금은 아 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세상이지만 그때 는 한집에 여러 가구가 모여 살던 시절이라 서로 속사 정까지도 잘 알았다. 관음사 신도들은 그때의 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 다. 모두가 대문을 열어두고 살던 그 시절의 사람들처 럼 정이 넘친다. 대부분의 교도들은 초창기 정각원 스 승님의 인연공덕으로 40년 이상 진언염송 정진 중이 다. 




신묘한 관세음보살의 가지력 


관세음보살 육자진언의 가지력은 우리의 고난을 극복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교도 중 한 노보살님은 육자진언의 가지공덕 체험에 대해 “가난과 병마의 고통으로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때, 총지종은 저에게 추운겨울 따뜻한 햇살처럼 다가왔습니다. 희사와 진언염송은 삶의 고난을 이겨 나가는 방편이자 마지막 선택 이었습니다”며 관세 음보살 옴마니반메훔 진언 가지공덕으로 가난과 병 마를 이겨냈다고 한다. 교도들 중 사연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기독교 인이었던 어느 보살님은 “무속인집에 시집와 가정 은 돌보지 않고 술만 먹는 남편, 아이들을 키우기 위 해 시장에서 좌판을 열고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집근 처에 있던 관음사에서 진언염송 불공을 하고 즉시 남 편은 술을 끊고, 일을 하기 시작했고, 가정은 차츰 안 정되고 지금은 70이 넘은 나이에도 영감님이 뱃일을 할 정도로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며 진언염송 수행의 큰 힘을 받아 고난에서 기적적으 로 빠져 나왔다 한다. 그만큼 옴마니반메훔 진언 수행 법은 강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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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사진-즉신성불의 대도는 불공정진 뿐 5번사진-6월 월초불공 회향에 동참한 관음사 교도들


사려 깊은 스승과 함께 서로를 살피는 신정회 


관음사 신정회를 이끄는 김흥옥 회장은 총지종 신 정회의 젊은 리더이다. 시집와서 시어머니 손에 이끌 려 나온 관음사 서원당에서 시작한 신행은 벌써 30년 을 넘어섰다. 처음에는 옴마니반메훔이 뭔지도 모르 고, 눈을 감고 시어머니 하시는 데로 따라했다. 그런 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마치 어릴 적 엄마 품에서 새근 새근 잠이 들 때처럼 그리도 포근해 지는 것이다. 철없는 새댁은 엄마가 되고, 남편이 사업을 시작한 다고 할 때도 부처님이 계신데 걱정할 것 없다며 격려 하기도 했다. 지금은 남편의 사업도 안정적으로 운영 되고, 가정도 큰 갈등 없이 잘 지내는 것이 모두가 시 어머님이 가르치고 법을 이어가게 한 총지종의 진언 염송 덕이라 한다. 이제는 남을 위해 보시행을 실천한다는 마음으로 관음사의 대소사를 챙기는 신정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불공의 준비부터, 교도들의 집안 대소사까지 신 경을 쓴다. 30년을 한 서원당에서 수행하다 보니 모두 가 가족이고, 부처님이 이어주신 도반인 것이다. 지금은 정인화 전수가 주교로 봉직하고 있지만, 관 음사를 거쳐간 수행월 전수, 정정심 전수 등이 지금의 관음사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 관음사는 총지종 본존 육자대명왕진언의 실체인 관세음보살의 주석처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33 화신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관세음보살. 세상 모 든 중생들의 아픔을 모두 거두고 성불로 이끄는 그날 까지 현재의 우리와 같이 머물고 있다. 이제 모두가 아픔 가슴을 달래고 싶을 때, 관세음보살의 법계궁, 부산 당감동 관음사로 참배를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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