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불교 신앙자 초왕(楚王) 영(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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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17-08-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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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6-15 02:12 조회 2,751회본문
중국 최초의 불교 신앙자 초왕(楚王) 영(英)
불교의 부처를 도교의 신선처럼 생각하여 중국의 민간 신앙인 도교와 순응하며 중국인들에게 불교가 수용되었다
전편에서 언급한 감몽구법설과는 별 도로 후한 명제 때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 었다는 불교(佛敎) 초전(初傳)의 자료가 있다. 그것은 후한서 실려 있는 내용으로 후 한(後漢) 명제의 부친인 광무제(光武帝)와 후궁 허씨 사이에 영(英)이라는 아들 즉 명제의 이복동생이 있었다. 그는 어머니 허씨와 함께 광무제의 총 애를 받지 못하여 변방인 초(楚) 지방의 왕으로 임명 되어 중앙에서 멀리 밀려났 다. 하지만 명제는 변방의 조그만 지방 초 (楚)의 왕이 된 초왕영(楚王英)을 태자시 절부터 아꼈다. 어느 날 사람 사귀기를 좋아해 많은 빈 객과 교류를 즐기던 초왕 영이 모반을 했 다고 무고를 당한다. 명제는 초왕 영을 살리려고 사형을 당 할 죄인도 비단을 바치면 속죄할 수 있다 는 칙령을 내린다.
이에 초왕 영은 명제의 속뜻을 알아차 리고 비단 30필을 바치고 사면을 받게 되 었다. 명제는 “초왕은 황노(黃老:황제와 노 자, 이들에 의해 도가(道家)가 창시되었다 고 함)의 미언(微言:뜻이 깊은 말)을 독송 하고, 부도(浮屠:불타)의 인사(仁詞)를 숭 상하며 결재(潔齋)를 3개월 동안 하고, 신 과 맹세하여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의심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연히 뉘우침이 있을 것이 다. 그 속(贖:벌금)을 돌려주니 이포새(伊 蒲塞:우바새)와 상문(桑門:사문)의 성찬 (盛饌)을 도우라.”(<<후한서>>권42, 초왕 영전)는 조칙을 내렸다. 이것에 의하면 초왕 영이 도교의 황제 (黃帝:온갖 귀신을 부리는 신비적인 존재 자)와 노자(老子) 그리고 부도(浮屠:불타) 를 동시에 숭상했던 것과 초왕 영이 어떠 한 불교의식을 행해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또한 명제가 초왕 영에게 우바새와 사 문에게 공양을 하라고 한 것은 후한(後漢) 의 조정이 국가의 상층 지배계급에게 유 교나 황노의 가르침과 함께 외래종교인 불교를 신앙하는 것을 공인했던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초왕 영이 사문에게 공양했다 는 것은 서역의 외국승이 이미 후한의 대 도시 장안과 낙양뿐만 아니라 초왕 영이 다스린 중국의 변방인 초(楚) 지방까지 와서 불교의 선교활동을 했다는 것을 나 타내는 것이다. 초왕 영이 황노와 부처를 함께 숭상한 것은 부처를 도교의 신선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불교가 당시 중국의 민간신앙인 도교와 융화하고 순 응하여 쉽게 중국인들에게 수용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석 달 동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 여 신과 맹세를 했다는 것은 초왕 영이 불타를 신으로 모시고 복을 바라는 현세 이익과 불로장수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종교로서 불교를 신봉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초왕 영의 불교신봉 형태를 비 추어 보면 중국불교 전래초기 중국인들 은 불교에 대해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었 다고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부처와 신선을 동일하게 생각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불교와 중국의 민간신앙 도교를 동 일시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부처를 신과 같이 생각하여, 부 처에게 기도하면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기 복신앙이다. 부처를 길흉화복을 주제하며 현세이 익과 불로장수를 줄 수 있는 주체로 생각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에 불교가 수용되는 최초의 신앙 내용인 현세이익을 위한 기복신앙은 이 후 중국불교사에서 일관하는 태도가 되 었고 중국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을 나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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